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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 “마음은 시간을 초월하여 기적을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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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かがみの孤城, Lonely Castle in the Mirror)


개봉일: 2022년 12월 23일(日), 2023년 4월 12일(韓)

감독: 하라 케이이치(대표작: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장르: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

원작: 거울 속 외딴 성 소설(츠지무라 미즈키 씀)

제작사: A-1 Pictures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마음은 시간을 초월하여 기적을 이뤄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만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정말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국내 영화 상영 실적이 초토화되면서 자연히 영화매니아들의 관심은 해외 영화로 쏠리게 되었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과 ‘슬램 덩크’가 2023년 상반기 극장가를 책임졌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열기가 뜨거운 영화는 아니었다.

아직 개봉 이틀차, 아직 그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기 전 나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기 위해 비교적 한산한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애니메이션 영화이기 때문인지, 어떤 또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의 예고편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었다.

썩 괜찮은 그림체, 서정적인 음악, 그리고 환상문학적인 늑대 탈을 쓴 소녀까지. 딱 내 취향이었다.

그때 본 그 예고편이 바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개봉하고 조용히 사라질 운명의 비운의 애니메이션 영화.

오늘 소개할 작품. ‘거울 속 외딴 성’이다.


시놉시스

학교에서의 설 자리를 잃고 방에 틀어박혀 있던 중학생, 코코로(こころ).

어느 날 갑자기 방의 거울이 빛나고,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동화에 나올 법한 성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중학생 6명이 있었다.

거기에 ‘늑대님(オオカミさま)’이라고 불리는 늑대 탈을 쓴 여자아이가 나타나서,

「성에 숨겨진 열쇠를 찾으면,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 주마」라고 말한다.

주어진 기한은 약 1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열쇠를 찾으며 점차 함께 보낸 시간이 쌓여가면서 그 자리의 7명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슴 속에 품어 왔던 그들의 사정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점차 마음은 또 다른 마음으로 이어지고,

외딴 성이 그곳에 모인 7명에게 마음이 편한 장소가 되어갈 무렵, 어떤 사건이 그들의 일상을 덮친다.

과연 소원을 이뤄주는 열쇠는 찾을 수 있을까? 왜 이 7명이 모이게 되었을까?

각자가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소원>이란 무엇일까?


‘거울’, 그리고 ‘외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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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아니면 납치? 비일상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 7명의 중학생은 각자 자신의 방 또는 집에 있는 거울을 통해 ‘외딴 성‘이 있는 비일상으로 초대받게 된다.

“거울 속 외딴 성”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동안 이 평화로운 성 안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든 상관 없다. 게다가 성 안에 숨겨져 있는 열쇠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 열쇠를 발견한 사람은 무엇이든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다. 어떤 어른도 야단치고 잔소리하지 않는데다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환상적인 제안까지! 이 나이의 중학생들에게 이렇게 꿈만 같은 공간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공간에도 엄격한 규칙은 존재한다. 만약 5시까지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그날 성에 찾아온 모두는 무서운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내년 3월 30일까지, 이 비일상의 세계에서 7명의 초면인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에 대해 조심씩 알아간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 ‘이지메’의 그림자

주인공 ‘코코로’는 학교에 가기 전 배가 아파 엄마에게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학교를 쉬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코코로가 내심 마뜩잖지만, 결국 오늘도 학교에 코코로의 결석 전화를 건다. 코코로는 학교에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라고 혼잣말하지만, 소심한 그녀의 목소리는 엄마에게까지 닿지 못한다.

코코로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어떤 학교의 쉬는 시간. 왁자지껄 대화 소재가 끊이지 않는 한 중학교의 교실 안. 웃고 떠드는 소리가 교실을 넘어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공간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빈 자리를 비춘다. 그 빈 자리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바로 ‘이지메(일본의 왕따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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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처음에 코코로의 마음 상담을 진행하는 선생님. 이지메에 도가 텄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어른이다.

코코로는 같은 반의 한 여자애들 집단에게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코코로의 소중한 친구를 빼앗아 가고, 코코로를 몇 번이고 바보 취급한다. 심지어 전혀 상관 없는 남자애를 시켜 코코로에게 대놓고 망신을 준다.

코코로는 그녀들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가해자 중의 리더는 반에서 높은 인기를 구사하며 학급 반장을 맡고 있었다. 다소 장난끼가 있지만 활발한 성격을 가졌다는 담임 교사의 긍정적인 평가로 그녀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이지메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개인 대 집단의 문제이다.

가해자가 반드시 여러명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해자는 여러 명이 될 수 있지만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단체(소속 반)의 극히 일부다.

이지메가 성립될 수 있는 건 그 반의 그 누구도 이지메를 막지 않고(못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모습을 방조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에는 무관심한 교사도 포함된다. 교사가 직접 피해자를 괴롭히는 건 아니지만, 가해자의 든든한 원군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해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학생들 간의 관계를 그저 철없는 아이들 간의 문제로 치부하는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의 SOS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가해자 학생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는 교사들. “학생들은 서로 화해하고 사이 좋게 지내세요-” 라는 무책임한 태도까지.

이지메는 그렇게 푸릇한 마음을 밟아 죽인다.


외딴 성이라는 비일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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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외부 세계와 아이들을 단절하고, 절벽 위의 고고한 성과 그 성벽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호한다.

코코로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은 자의와는 무관하게 외딴 성에 끌려온다.

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는 마음을 다친 아이들이다.

하지만 ‘외딴 성’에 가게 된 뒤로는, 이들끼리는 서로 마음을 열고 편한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이 아이들도 알고 있다. 자신과 함께 이 공간에 있는 아이들이 각자 어떠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자신처럼 학교에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학교에 가지 않는 삶이 잘못된 것일까?

이 비일상 속에서 이들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우며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다.

서로 성격도, 생각도 모두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 간의 거리를 지키며 선을 넘지 않는다.

이 외딴 성(비일상)은 모험, 도전, 그리고 경쟁이나 쟁취와는 완전히 무관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평화가 존재한다.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그 가혹한 현실에서 싸워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삶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비일상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이 아브락사스의 알을 깨고 부화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 평화로운 (비)일상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차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점차 마음 속에 떠올린다. 이 외딴 성에서 최대한 오래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늑대 탈을 쓴 소녀, 그리고 ‘7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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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소녀는 떠올렸다. 자신이 그곳에 두고 온 한 가지 소원을.

7명의 중학생이 모여 외딴 성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늑대 님(늑대 탈을 쓴 소녀)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늑대 님은 늑대 탈을 절대 벗지 않는다. 그래서 정체를 알 수 없다. 그저 그 날카로운 눈동자로 자신이 끌고 온 학생들을 어디선가 지켜볼 뿐이다.

늑대 님은 왜 이 공간에 학생들을 데려온 걸까?

왜 이 소녀는 늑대 탈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소녀는 열쇠를 찾아오라고 했으며, 열쇠를 찾아온 학생에게는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약속한 것일까?


글을 마무리하며

일본의 이지메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주 잘 알려진 일본의 악(惡)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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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서로 지탱하는 건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나이자, 너이자, 우리이자, 그리고 또 다른 나(거울)이다.

하지만 일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이러한 자신의 나라의 치부와도 같은 소재를 선정해서, 사회 폭로적 작품을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신카이 마토코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 등을 통해 정부의 무력한 대응을 간접적으로 꼬집었다.

그리고 이 작품 “거울 속 외딴 성”의 감독을 맡은 하라 케이이치 씨도 일본의 이지메 문화를 소름돋을 만큼 날카롭게 그려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나는 이 작품이 스즈메의 문단속보다 단연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느꼈다.

‘이지메’, ‘그림 형제의 동화’, 그리고’ 7명의 학생’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일본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작품을 보며 몇 번이고 눈시울이 붉어졌을 만큼 내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었기에, 이 감독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간만에 정말 좋은 수작 애니메이션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