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게이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나 – #셀프 인터뷰 1편

이 글은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나라는 이름의 셀프 인터뷰입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글이 아니므로 ‘구어체’로 작성하였습니다.

기준: 2024-06-02

Q. 왜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을 골랐나요?

제가 즐기는 일을 업으로 삼아 다른 게이머에게도 제가 느낀 재미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저는 RPG나 SLG, 리듬 게임, 레이싱 등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기왕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JRPG를 좋아했는데, 가장 수작으로 꼽는 건 일본 에로게의 명작, ‘란스 시리즈’예요.

캐릭터의 동기와 게임 디자인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는데다, 제가 대륙 전체를 건 싸움(세카이계)의 서사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rance 10 main title image
Rance X -결전-은 대전쟁의 재미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Q. 게임 디자이너로서 어떤 일을 해 왔나요?

대학 졸업 후 첫 회사에서 ‘퀘스트 디자이너’라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시나리오 관련 업무만 약 4~5년 정도를 했네요. 제가 거친 회사마다 직무명은 ‘시나리오 라이터’, ‘시나리오 기획자’, ‘내러티브 기획자’ 등 다양했죠.

명칭은 제각각이었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갈등을 짜고, 캐릭터의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그건 어느 회사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소위 말해 게임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의 최전선에서 일했습니다.

Figma Flow
Figma Flow를 이용해 PT를 할 수 있는 사람이자,
테이블의 구조를 짤 줄 아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테이블의 구조를 짤 줄 아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시나리오 라이팅뿐만 아니라, 유니티나 게임 디자인, RDBMS Query나 Google SpreadSheet 등 게임 디자이너로서 알아두면 좋을 지식도 함께 습득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컴퓨터활용능력 1급을 딴 것도, Coursera에서 Game Design 코스를 수료한 것이나 Google UX 디자인을 공부한 것도 게임 디자이너로서 게임 개발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싶어서였어요.

그 덕인지 이제는 회사에서 저를 두고 ‘작가’라고 부르는 분은 안 계시네요.

Q. 가장 자신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굳이 하나 가장 자신있는 한 가지만을 꼽자면 ‘설정 기획’이에요.

타로카드 여사제
The High Priestess or The Popess (II) in the Rider–Waite Tarot, depicted with the pillars of Boaz and Jachin

대학에서 ‘판타지’와 ‘SF’를 전공했고, 철학과 상징론,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는 걸 좋아했어요.

예를 들어, 위와 같은 ‘타로카드’를 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걸 좋아하죠.

Q. 어떤 성과를 이루었나요?

‘성과’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저는 그동안 함께 일한 고마운 동료분들 덕택에 소정의 업적 몇 가지를 남긴 게 있긴 합니다.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시나리오를 잘 썼다’고 평가받은 것과, ‘시나리오 연출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기억이 남네요.

디버스 오더 나무위키 호평
디버스 오더 나무위키 호평
한 편의 거대한 이야기를 ‘차질없이’ 마무리지은 일.

Q. 게임 디자이너로서 어디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인가요?

어떤 분은 제게 PD나 디렉터가 되고 싶은 건가를 묻는데, 아직은 직책에 크게 뜻을 두고 있지는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 직책이 필요하다면 그 일을 맡겠지만, 직책 때문에 직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내러티브 디자이너’로서, 게임에서 신선한 재미를 주는 일을 고민하는 일만 하면 충분해요.

K 20231124 225054616
‘공동’이라는 세계관적 공간을 WASD와 Z축을 이용해 탑 뷰에서 게임 플레이를 하게 만든 Z.Z.Z.
히로인의 불안정한 정신을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 내러티브를 잘 담아낸 '니디 걸 오버도즈'.
히로인의 불안정한 정신을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 내러티브를 잘 담아낸 ‘니디 걸 오버도즈’.

저는 게임 세계관이 게임 디자인 전반에 잘 녹여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호요버스가 잘 하는 것들이죠.

그러려면 다른 게임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는 한편, ‘~like(라이크)’ 소리를 듣지 않는 신선한 경험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나 다른 게임과 비슷한 게임만 만들 수는 없죠. 그러려고 업계에 온 것도 아니니까요.

나중에 더 경력을 쌓으면 업계인들 앞에서 지식 공유도 하고 싶어요. 물론 ‘공유’할 정도로 공부하는 게 먼저이겠지만요.

Q.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나요?

가장 중요한 건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자면 “감동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엔딩을 보고 나면 그때 그 장면, 대사, 그리고 BGM이 기억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눈을 감아도 특유의 표정이 생생히 그려지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함께 나오면 더 좋고요.

그런 ‘내러티브 설계’가 잘 된 게임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Q. 내러티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Image 22 1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인 스타레일에서 TV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저는 내러티브를 ‘스크립트 없이도 플레이어에게 전달되는 게임 고유의 서사’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가 면접을 보았던 회사 중에, 기억나는 질문을 하나 소개할게요.

‘스토리’, ‘시나리오’, ‘내러티브’, ‘퀘스트’ 각각의 용어를 설명하고, 그 차이점을 구분해보라는 질문이었죠.

저는 위와 같이 답을 했는데, 그 회사에 합격한 걸 보니 대답을 잘 했었나봐요. (웃음)

잘 만든 내러티브란, 한마디로 ‘대사 한 줄 없이도 플레이어에게 감동을 주는’ 거죠.

저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미연시나 JRPG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으로부터 감동을 느낄 때가 참 많았어요.

미연시의 경우 번역은 일본어를 기계번역해 형편없었고 이름조차 틀린 경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감동은 생생하게 전해졌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개쩌는 필력’이 아니라, 그 스토리를 잘 포장하는 주변요소(내러티브)가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나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는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공부의 노선을 틀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게임 개발자이니까요.

Q. 만든 게임에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나요?

Image 22
리버스 1999의 ‘폴터가이스트’.
그동안 못 보던 ‘미소녀(?)’에 필자는 열광했다. 바로 이거야, 어린왕자!

제가 주도하는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다른 게임에서 본 적 없는 룩앤필(Look and Feel)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요.

‘와! 얘네는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지?’같은 소리를 듣고 싶어요.

뭐가 됐든 좋아요. 배경 설정이 됐든, 캐릭터성이 됐든, 스토리가 됐든, 아니면 신선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도 좋죠.

저는 싱글 플레이 게임을 선호해요. 그래서 이런 ‘내러티브’에 무게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요.

길드나 연합 등,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임도 재밌긴 하지만, 경쟁으로 가는 건 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협동 콘텐츠의 경우에도, 내가 못하면 괜히 미안해지니까 선호하지 않고요.

그런 의미에서 ‘원신’처럼 내가 여행자가 되어 페이몬과 함께 세계 곳곳을 탐험하는 게임은 제게도 너무 잘 맞는 게임이었어요.

다른 사람 눈치볼 것 없이, 풍경을 감상하거나 보물탐험을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해도 되니까요.

Q. 존경하는 개발자가 있나요?

Mikmopfexfciauyuogkzlll2ete37pmlmq9iotkedfzpbztze0wz7gpbgaruiuhfuykdlgaszbtwxhlpbreaiatmrbz6pznihr N Assjf9sjxpvdqbemddre2abpjd Xv0g0bco5imd Kwfmg5pg
‘직접!’ 아저씨. 이와타 사토루.
그래. 인생은 내가 ‘직접’ 선택한 대로 살아야지.

게임 개발자로는 닌텐도의 개발자, ‘이와타 사토루’ 씨를 존경해요.

아래의 명언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On my business card, I am a corporate president.
In my mind, I am a game developer.
But in my heart, I am a gamer.
명함 속의 저는 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제 머릿속의 저는 게임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의 저는 게이머입니다.

岩田聡(이와타 사토루), 2005 GDC Keynote Speech

사실 위 사토루 씨의 ‘게이머’라는 표현이 바로 제 블로그 이름에 게이머가 붙은 이유예요.

게이머라는 표현만큼 게임 플레이어를 ‘폄훼’하지 않는 중립적인 표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타쿠나 매니아라는 용어는 그 자체가 다소 Geek을 지칭하는듯한 뉘앙스가 있으니까요.

‘유저’라는 표현은 가급적 쓰지 않아요. 게임은 ‘플레이’하는거지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Q. 게임 개발자 외에도 멘토가 있나요?

9791160507621
존 손메즈’ 씨의 커리어 스킬이 아니었다면…

게임 개발자는 아닌 사람 중에서는 프로그래머 ‘존 손메즈’ 씨를 존경해요.

동종 업계 개발자로서, 이 태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일깨워주신 분이에요.

사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이 블로그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위 책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모두 ‘블로그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니까요.

그 밖에도 ‘연봉협상 하는 법’, ‘이직하는 법’, ‘커리어 쌓는 법’, 그리고 ‘잘 적응하는 법’ 등을 소개하는 책이에요.

말 그대로 ‘커리어 스킬’인거죠.

사실 최근에도 면접을 보기 전, 아니면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 마주치면 이 책부터 찾게 되더라고요.

두꺼운 책이지만 단숨에 다 읽을 만큼 재밌게 봤어요.

게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IT 업계 분이라면 그 누구든 위 책을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Q. 다른 부서나 개인과의 협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당연히 어려움은 있죠.

게임 디자이너는 항상 서로 으르렁대다가 다른데서 얻어터지는 직무이니까요. (물론 농담입니다.)

저는 상대방과 싸우거나 충돌한 경험은 아직은 없었어요. 그리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시스템’이에요. 제가 불편한 사람도 결국 시스템때문에 제게 그렇게 대하는 걸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회사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어요.

예를 들어, 게임 회사에 다니면서 ‘야근’을 하지 않고 개발할 수는 없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곤 했죠.

한때 저는 야근이 그 사람의 퍼포먼스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시스템’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그 사람이 싫어지는 경우도 물론 있어요. 나도 상대도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함께 일 할수는 있어요. 같이 일할 수만 있다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회사에 있는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원팀’이니까요.

연관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