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jin 아바타

서브컬처 게이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image 20

게임 연출 필수 요소 – #2. 지문

시나리오의 재미는 어디서 올까? 나는 단언컨대 시나리오의 재미는 ‘지문’에서 온다고 믿는다.

지문이란, 씬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나 부연 설명, 씬의 장소나 밤낮 지정 등 시나리오의 무대 연출적 요소를 기록한 것을 의미한다. 나름 대사, 인물명과 함께 시나리오의 3대 요소를 담당하는 녀석이다. 게임 시나리오에서의 지문은 그보다는 조금 더 좁은 의미를 갖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지문을 시나리오 라이터의 ‘연출 의도’라고 정의하겠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인물명, 대사 작성과 함께 지문도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회사에서는 굳이 지문으로 작성하지 않기도 한다. 시나리오 툴을 가지고 있는 회사도 있고, 별도의 시나리오 시트를 마련해 두고 그곳에 모든 연출 요소를 함께 작성하게 하는 곳도 있다. 대부분의 퀘스트 디자이너, 컨셉 디자이너, 시나리오 라이터 등은 이런 환경에서 일하게 되거나 일하고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게임 시나리오를 만드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 회사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시나리오는 글을 쓰는 것일테니, 게임 시나리오 제작자도 글을 쓰는 사람일테고… 그렇다면 작가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게 틀린 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 스튜디오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물론 회사에 따라 예외는 있음을 미리 양해를 구하겠다.)

image 20
좋은 시나리오는 대사와 그 대사가 나오는 정황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오토의 최후 연출이 그러했듯이.
@붕괴3rd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대다수 회사에서는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가 게임 연출 제작도 함께 겸임한다. 그래서 나는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하더라도 ‘작가’라고 불리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시나리오 기획자나 시나리오 디자이너라고 불러야 그 사람의 업무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시나리오 라이터이든, 시나리오 기획자이든 이 글에서는 편의상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칭하겠다.

게임 시나리오 지문이란?

게임 시나리오는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와 다르다. 물론 공통점도 많지만, 게임 시나리오 지문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구조‘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게임 시나리오는 유저의 입력(터치 등)을 받아서 동작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단순히 일방향 진행의 게임이 있기도 하고, 전투의 승리/패배 여부에 따라서 스토리가 분기하는 ‘다분기서사(멀티 플롯)’ 형태도 존재한다. 조금 더 복잡하게 들어가자면, 선행 스토리를 보아야만 볼 수 있는 스토리도 있고, 플레이어가 과거 얻은 열쇠가 있어야만 문이 열리는 형태의 스토리도 있다. 게임 시나리오는 위처럼 게임 내 다양한 시스템에 의해 기존의 영상 매체의 문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즉, 게임 시나리오 지문은 이러한 게임 시스템적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시나리오 라이터가 작성한 대사 외 텍스트를 의미한다.

아래의 경우를 보자.

토모요 : 하암…. 안녕, 린 군. (졸린 이모티콘)

토모요 : 잠을 잘 못 잤냐고? 글쎄… 그랬던가.

토모요 : 아무래도 어젯밤 늦게까지 잡지를 보다가 자서 그런지, 평소보다 피곤하네. (토모요 흔들림 액션)

(토모요 왼쪽으로 퇴장. 그리고 화면이 암전하고, 군중이 와글와글하고 떠드는 SFX 재생.)

위 괄호로 된 부분이 보이는가? 이 부분이 바로 지문이다. 위 스크립트는 아마 캐릭터의 이모티콘과 캐릭터 액션을 지원하는 게임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이러한 지문을 넣어줌으로써 캐릭터의 대사와 맞는 특정 연출을 넣을 수 있다. 특히 프린세스 커넥트:리다이브, 그리고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최근의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러한 캐릭터 연출 요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image 22
위 화면에서는 캐릭터의 왼쪽에서 ‘반짝’ 이모티콘을, 그리고 캐릭터를 중심으로 ‘집중선’ 화면 이펙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도 연출이다.
@블루 아카이브

그렇다면 만약 이러한 지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캐릭터가 서서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대사만 변하는 단조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이러한 지문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시나리오의 길이가 길다거나, 시나리오의 내용이 난해하다고 느껴진다면, 더더욱 이러한 지문을 적극 활용해서 플레이어가 따분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나리오는 글이 길다고 무조건 재미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상품이라도,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시나리오라고 해도, ‘내 글을 읽어!’라는 듯이 화면에 빽빽하게 텍스트만 채워넣어버린다면 아마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를 읽다가 바로 폰을 던져버릴 것이다.

나스체에 이별을 고하다

image 24
@월희

과거 PC 게임이 주류이던 시절에는, 플레이어는 게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앉아있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길더라도 그것을 읽을 인내심이 충분했다. 시나리오만 재밌다는 보장만 있다면, 다소 지루한 구간으로 진입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읽어줄 만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는 다르다. 플레이어는 언제, 어디서 게임을 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렇기에 주의력이 분산되기 쉽다. 방금 읽은 텍스트도 까먹을 수 있고, 간단한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대사를 쓸 때는 시나리오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화면 가득하게 텍스트로 채우는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하면 더 플레이어들이 지루하지 않을지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치익!) 이라고 쓰기보다는, ‘치익…’하는 소리가 있는 게 좋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라고 쓰기보다는, BG를 Black으로 변경시키는 게 좋다.
감정 묘사를 위해 대사를 길게 나열하기보다는, 이모티콘이나 액션 연출을 함께 넣어주는 것이 좋다.

왜냐고? 지금 만드는 건 ‘소설’이 아니라 ‘게임’이니까.
나는 좋은 시나리오는 ‘상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물을 마셨다.’라는 대사가 있다면, 실제로 캐릭터는 물을 마시는 애니메이션을 해야 한다.
만약 캐릭터가 ‘쓰러졌다.’면, 실제로 그 캐릭터는 쓰러져 있거나 눈 앞에 보여서는 안 된다.
만약 캐릭터가 수영을 하고 있다면, 캐릭터가 수영을 하는 모션까지는 보여줄 수 없더라도 물이 튀는 시각적, 청각적 연출을 넣는 것이 좋다.

대사에서는 '그는 총에 맞았다.'라고 해놓고, 앞에서는 그냥 멀쩡히 서 있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건 시나리오 전달이 잘못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