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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의 최종 디테일, 「시네마토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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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저번 글에서 우리는 효과적인 미장센을 조성하기 위해, 피사체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어떤 움직임(카메라 워크)을 가져갈 수 있는가에 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았다.

우리에게 낯설었던 ‘미장센’이라는 용어가 슬슬 익숙해질 즈음, 이제 ‘시네마토그래피’라는 또다른 전문용어를 소개할 시간이 된 듯하다.

또다른 낯선 용어의 등장에 지레 겁먹지 마시라.

이번 글로 미장센, 그리고 영화학의 전문용어의 향연은 이제 끝을 낼 셈이니까.

시네마—- 그 쉼없이 돌아가는 영사기가 자아내는 낯설지만 익숙한 현대극의 향연이여,
@Published by La Rédac

필자가 이번 연재글을 쓰게 된 계기는 ‘영화학’ 그 자체를 공부하기위해서라기보다는 영화적 기법들이 게임에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영화학이라는 문법을 빌려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게임의 깊이를 한층 더 깊이있게 파고들기 위해 영화학 개념을 끌어다 쓰는 것임을 독자분들이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번 글로써 영상매체에서 ‘미장센’에 관해 공부해야할 것은 다 훑어보게 된다.

그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시네마토그래피’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시네마토그래피?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

시네마토그래피의 어원은 두 개의 그리스 단어에서 유래했다.

‘키네시스’라는 이름의 ‘움직임’을 의미하는 단어는 ‘시네마(Cinema)’의 어근이다.

‘그래포’라는 이름은 기록을 의미하는데, 빛을 뜻하는 ‘포스(phos)’라는 용어와 합쳐져 ‘촬영(photography)’라는 용어가 되었다.

키네시스, 포스, 그리고 그래포를 합치면 ‘움직이는 것을 빛으로 기록하는 것’.

그렇게 시네마토그래피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이 낯선 용어 속에 조그맣게 숨어있는 ‘시네마’라는 낱말을 캐치할 수 있다면, 이 용어가 영화와 관련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라는 용어가 주는 어감이 영화에 관한 어떤 것이라는 선입견을 자아낸다.

실제로 이 용어는 영화를 촬영한다는 의미로, ‘영화촬영술’이라는 번역어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의견이지만, 영화촬영술이라는 용어가 아우르는 범주는 굉장히 넓다.

앞서 필자가 소개한 ‘카메라 워크’도 시네마토그래피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필자처럼 별개의 것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다.

즉, ‘시네마토그래피(영화촬영술)’의 정의는 이 용어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미 필자는 앞서 미장센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 요소로 카메라 워크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시네마토그래피라는 주제에서는 중복된 주제는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그 결과 시네마토그래피라는 용어를 정의해야하는 건 필자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필자는 이 용어를 독자분들이 이해하기 쉬운 정의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아래와 같은 결론을 냈다.

시네마토그래피란, 하나의 씬을 결정짓는 카메라의 촬영 기법이다.

하나의 씬이란, 하나의 ‘목적’을 가진 장면의 집합을 말한다.

아시다시피, 샷(컷)이 모여 씬이 되고, 씬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카메라는 하나하나의 컷을 찍기는 하지만, 한 편의 씬에서 일관성 있게 촬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용어 정의를 바탕으로, 필자는 아래의 4가지 개념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 조명 및 조명 장치
  • 필름의 색과 톤
  • 렌즈의 종류
  •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

물론 위 목록에 있는 각 주제를 두고 각각을 한 편의 글로 작성해도 될 만큼 흥미로운 분야이다.

다만,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방향성과는 다소 궤가 다르므로 깊이 파고들지는 않을 생각이다.

필자는 위 용어가 지나치게 ‘영화적’인 나머지, 영화에 크게 관심 없는 독자분들이 내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고 섣불리 판단할지를 우려가 들었다.

따라서 위 4개의 주제를 3가지로 축소하고, 예시 이미지도 ‘게임’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필요에 따라 영화촬영술 그 자체의 이미지도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게임 디자이너’를 위한 글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시네마토그래피를 이루는 3대 요소

용산아이파크몰이 자랑하는,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용아맥’이라고 불리는 IMAX 상영관이 있다.

한 화를 상영할 때마다 6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입장할 수 있는 초대형 상영관이다.

당연히 다른 어떠한 상영관보다도 월등히 큰 스크린 크기와 상영관 크기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단지 스크린 크기 하나만으로 다른 디지털 영화의 두 배라는 가격을 받는 것일까?

물론 사운드나 기타 경험 요소의 차이도 있겠지만, 단순히 몇 가지 요소가 ‘업그레이드’된 상영관이라고 해서 선뜻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수용하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도 선뜻 결정하기 힘든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용아맥’은 IMAX 상영관 중에서도 매진이 연중 행사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 있는 IMAX 상영관이다.

심지어 그밖에도 IMAX 상영관의 수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비싼 돈을 줘 가면서 IMAX를 보는 것일까?

그 물음에 관한 답변은 잠시 미뤄두고, 당장은 화면 비율에 대한 이야기에 먼저 집중해보자.

먼저, IMAX와 비 IMAX 상영관의 차이를 알기 위해, IMAX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두면 좋다.

IMAX란, (I)mage (MAX)imum이라는 두 단어에서 각각 앞 글자를 따온 약자의 조합이다.

Image Maximum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IMAX 상영관의 스크린은 위 아래 여백(레터박스)을 최소화하고 상영관 스크린을 거의 100% 활용한다.

상영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고 해서 IMAX이다.

IMAX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다양한 차이점 중,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바로 ‘화면 비율’이다.

스크린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영화 촬영 단계에서부터 세로로 더 길게 찍을 수 있는 IMAX 전용 카메라를 사용해야 한다.

IMAX 영화의 비율은 1.43:1로, 일반 영화가 1.85:1 또는 2.39:1로 촬영한 비율보다 ‘세로로’ 길다.

세로로 길어진 화면 비율은 영화관 상영패널에 말 그대로 ‘꽉 찬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21:9 비율로 보던 영화를 아이패드에서 4:3으로 보는 셈이다.

이러한 화면 비율은 ‘듄’이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웅장한 스케일의 영화를 볼 때 진가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아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IMAX 영화가 다른 일반 디지털 영화와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함에도, 영화 감상 환경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선뜻 두 배가 넘는 표값을 내고 IMAX를 찾는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이 구입하는 건 ‘영화표’가 아니라 IMAX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이다.

단순히 ‘그 영화 봤어’라는 팩트가 필요한 관람객은 집에서 폰으로 영화를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약 나는 ‘남들과는 다른 스크린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IMAX는 그 수요층을 정확히 노린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 촬영 단계에서부터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한 스크린은 모든 관람객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IMAX 영화관에서 웅장한 비주얼과 함께 사운드가 시너지를 일으킬 때, 비로소 영화는 ‘작품’에서 ‘경험’으로 격이 상승한다.

바로 이 역할을 다른 무엇도 아닌 시네마토그래피가 담당한다.

IMAX는 단순히 화면 비율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 상영관보다 더욱 ‘균등한’ 사운드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IMAX 상영관이 ‘돈 값 한다’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데 추가로 일조한다.

모든 줄거리와 쿠키까지 똑같은 영화를, 그것도 일부 화면만 1.43:1 스케일을 지원하는 ‘불완전한’ 영화를 두고, 더 비싼 ‘영화표’를 구입한다고 생각하면 이건 꽤 어리석은 행동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똑같은 영화, 똑같은 완성도라고 할 지라도 그 감상 경험이 일반 영화와 ‘경험적 차이’가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돈을 내고 IMAX를 찾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IMAX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사람은,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 IMAX 여부를 따지게 될 정도로 영화의 관람 경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영화가 IMAX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지 않는 걸까?

물론 자본의 이유도 있겠지만, 필자는 감독이 추구하는 미학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영화가 IMAX로 제작되어야 최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가?

필자는 시네마토그래피란 그런 ‘일반화된 퀄리티의 의미부여’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고춧가루’가 아무리 훌륭한 향신료라고 해서, 모든 음식에 고춧가루가 어울린다고 말하는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IMAX에 어울리는 영화는 따로 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영화 감독(프로듀서)의 의지에 담겨 있다.

그렇다. IMAX는 처음부터 감독에 의해 ‘계획된 채 제작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상영관에 걸리는 IMAX 영화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소위 말해 ‘메인스트림(관람 주류층)’ 영화 관람객을 겨냥한 ‘액션’이나 ‘서스펜스’, ‘판타지’, ‘SF’ 등의 작품이 걸린다.

이들 장르는 대체로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 웅장한 스케일을 뽐내는 것이야말로 감독이 의도한 시네마토그래피의 문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비가 오는 풍경을 굳이 IMAX로 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감성을 건드리는’ 장면은 오히려 더 가로로 ‘길쭉할 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로맨스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 잔잔하거나 서정시적인 감각을 중요시하는 영화는 IMAX가 과한 선택지일 수 있다.

굳이 1:43이라는 비율을 만들어서까지 보여줘야 할 장면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관객의 의도에 맞게 관람객들이 따라와줄지에 대해서도 대단한 모험이 될 수 있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퀄리티만큼이나 고민해야하는 건, ‘내 작품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전달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이미 영화를 완성해서 상영관에서 상영하기만 하면 되는 상태라면, 감독은 내 영화가 IMAX에 걸릴지, OTT에 걸릴지 선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플랫폼을 고를 수 없는 감독이라면, 이 작품의 장르와 무드, 대상 관객과 자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작품이 가장 빛날 수 있는 환경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게임 PD나 드라마 PD 등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해야만 할 것이다.

시네마토그래피란 그런 고민까지 함께 묻어나는 디테일이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 빛이 어떤 물체를 비추는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선집중의 기교는 오직 ‘빛의 유무’라는 변수 하나만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관점을 돌려, 심문실의 한 풍경으로 돌아가보도록 하자.

앞서 말한 조건에서 이번에는 두 명의 사람이 추가로 등장한다.

한 명은 이번 일에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며, 그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은 그가 진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관해 탐문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은 주위가 어두컴컴한 배경에서 오직 등 하나에 의지한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만약 이 방의 조명이 천장이 환하게 비칠 정도로 밝은 형광등이었거나, 촛불 하나처럼 오히려 조도가 낮아졌다면 어떻게 느껴질까?

전자의 경우에는 이 시공간에 부여된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테고,

후자의 경우에는 심문이라기보다는 공포영화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느쪽이든 만약 ‘심문실에 있는 두 사람’이라는 장면을 감독이 의도했다면 이는 조명이라는 변수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크게 어긋나버릴 수 있다.

모든 심문실이 이런 ‘클리셰적인 풍경’으로 그려져야한다는 얘기를 하고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이런 기본적인 클리셰조차 모르고 장면을 구성했다가는 감독이 의도한 장면과 관객이 느끼는 장면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심문실이 갖는 이미지는 ‘폐쇄감’이다. 이는 어둠으로 묘사되며, 이 폐쇄감이 유일하게 해방된 곳(대화가 허락된 곳)이 바로 침침한 조명이 비추는 조그마한 공간이다.

Cinematic photography, Movie color palette, Film photography tips

영화가 비추는 물체가 어떤 색채로 표현되느냐에 따라서도 특유의 장르감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감독은 카메라에 필터를 씌우면서까지 자신의 작품의 색채를 덜어내기도 한다.

이 또한 시네마토그래피의 일종이다.

독자 여러분이 ‘흑백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흑백영화 특유의 ‘느와르함’을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흑백영화가 ‘컬러기술’이 보편화되기 전 기술적 한계가 낳은 산물처럼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다.

필자는 흑백영화는 흑백영화로써 스스로가 갖는 독특한 분위기(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느와르 물이라고 해도, 흑백영화가 주는 특유의 와일드함(남성적인 분위기)은 이 영화 전체의 무드를 지배한다.

뿐만 아니라, 컬러가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색채의 대비로부터 동세나 행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비록 최근 영화에서는 흑백영화를 거의 볼 일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흑백영화가 주는 고유한 분위기는 여전히 지금 2020년대에도 매력적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카메라 렌즈의 필터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게임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추억에 잠기거나 과거를 회상할 때 사용되는 노스탤직한 세피아톤의 카메라 필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비주얼노벨 게임에서 흔히 쓰였다.

흑백 필터를 사용한 게임은 찾기는 어렵지만, 흑백 대비가 풍기는 고유의 강렬한 인상감을 채택한 게임도 있을 정도다.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시각이 비록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세계라고 할 지라도, 영화 등 영상매체에서 보여주는 세계가 다소 그 인식과 왜곡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세계니까 성립되는 분위기와 무드가 충분히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일 때, 우리는 그것을 ‘영화’나 ‘게임’이 아닌 ‘작품’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조명과 필터는 어떤 작품을 소위 말하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위 이미지를 보고 포탈 2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지 알아맞출 수 있을까?

스포트라이트를 비롯한 강렬한 빛의 집중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빛을 쬐는 것 말고도, 카메라의 초점도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원하는 대상’에 옮기면 우리의 시선은 자연히 그리로 이동한다.

반대로, ‘가리고 싶은 대상’의 초점을 흐리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시선이 그로부터 멀어진다.

이처럼 영화 촬영 그 자체는 어쩌면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러한 예술을 기교로 승화시킬 줄 아는 영화감독은 (또는 게임 디자이너는) 시청각 자극을 수용하는 시청자(또는 플레이어)의 감각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횟수동안 감독이 의도한 쪽으로 시선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뒤 내리기 전까지는, 롤러코스터 코스 설계자가 짠 코스를 모두 통과하기 전까지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릴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빌려준 감각은 고스란히 ‘즐거움’이라든지 그밖의 어떠한 감각을 싣고 되돌아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위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 직관과 가장 닮아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메이가 가장 또렷히 보이고, 가장 멀리에 있는 불길한 개체가 흐릿하게 보인다.

우리는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때 원근법이라는 개념을 학교에서 배운다.

원근법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가까이있는 물체가 크고 또렷하게 보이고, 멀리있는 물체는 작고 흐릿하게 보인다.

원근법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개념 자체가 어떠한 추상적인 개념을 논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받아들이는 자극(상이 맺힘)을 글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당장에 원근법을 이용해 어떤 사물을 묘사할 필요가 없다면 원근법에 관해서는 이 정도만 알아도 좋다.

그런데 영화나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우리가 의도한 어떠한 장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쯤은 알 필요가 있다.

브라운더스트 2의 한 장면.
화면 연출을 위해 캐릭터 뒷모습까지 새로 그린 정성이 돋보인다.

사실 위 장면은 초점이 왜곡된 상태이다.

두 명의 인물이 서로 앞 뒤로 서 있어 가까운 쪽 인물이 더 선명하게 보여야하지만, 두 명 모두 초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초점을 맞춰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위 장면의 초점이 어느 정도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반면, 뒤에 있는 배경은 꽤 흐릿하게 묘사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위 장면에서 중요한 건 캐릭터이니 캐릭터에 시선을 집중할 수 있게 배경을 전부 흐릿하게 처리한 것이다.

이번에는 배경 좌측에 보이는 양초, 그리고 빛이 새어들어오는 벽 틈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배경에서도 두 개체가 서로 원근법에 의하면 초점이 다르게 보여야함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흐릿하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즉 위 이미지는 인물, 그리고 배경 모두 초점이 원근법에 맞지 않게 제각각 적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원근법, 빛의 산란, 카메라 렌즈, 그리고 색채감.
그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위와 같은 장면이 만들어진다.

혹여나 어떤 독자는 위 필자의 설명이 위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싶은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필자의 의도는 정 반대다. 필자는 위와 같은 초점 연출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전제는,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대상은 ‘또렷하게’ 보여주고, 그밖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대전제에 위 이미지는 확실하게 들어맞는 훌륭한 예시이다.

대부분의 비주얼 노벨은 이러한 원근법에 따른 초점의 이동을 ‘경험 디자인’ 사항에 고려하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이 맞고 틀리다를 논하는 게 아니다.

영화든 게임이든 상관없이, 영상매체를 통해 화면을 연출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간혹 원근법이 무너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초점을 흐리면 보통은 앞이 또렷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면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혹 뒤에 있는 사물이 앞에 있는 사물보다 큰 나머지, 원근법 상 착시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SF나 판타지, 공포 영화나 스릴러 장르에서는 이런 착시가 서스펜스를 빚어내는 훌륭한 기제로 작용한다.

감독이 택한 방법은 간단하다.

오직 카메라의 렌즈의 초점을 조금 ‘조정’했을 뿐이다.

의도적으로 카메라가 피사체를 ‘제한적’으로 보여주게 해, 가려진 부분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

‘망원경'(또는 쌍안경)은 멀리 있는 대상을 확대해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신, 쌍안경을 바라보는 동안 가려진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정보도 전해주지 않는다.

즉,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시야가 카메라 렌즈가 보여주는 곳 외에는 ‘가려지는’ 셈이다.

카메라를 이렇게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장르에서 효과적인 연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각 독자 분들의 몫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정리하는 글

이번 시네마토그래피 편을 마지막으로 ‘미장센 시리즈’ 3부작을 완결을 짓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지금 후련하다기보다는 다소 분한 심정이 든다.

게임업계의 역사가 그리 짧은 것이 아님에도, 여전히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영화나 다른 미디어의 지식을 빌려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언어는 발화자와 청자의 사고를 그 언어의 문화권에 맞게 지배한다.

필자는 이번 시네마토그래피라는 글을 쓰면서 마치 필자 스스로가 영화광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필자의 자기정체성은 언제까지나 게이머이자 게임을 만드는 한 명의 디자이너이다. 그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추호도 없다.

게임이 영화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게임은 영화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다.

‘시네마토그래피’라는 용어도 언젠가는 ‘게이미피케이션’과 같은 어떠한 게임적인 용어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 『미장센 시리즈』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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