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jin 아바타

서브컬처 게이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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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만 나오면 게임 시나리오는 다 만든 거 아닌가요?”

A: 그러면 검은 화면에 텍스트만 나올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스토리가 좋다’는 게임이 있다.

기승전결 탄탄하고, 캐릭터성 확실하고, 읽는 사람에게 여운을 남긴 스토리.

게임을 끄고 나서도 한참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바디감이 풍부한 스토리.

그렇다면 그 스토리를 쓴 작가는 모든 작품의 영광을 가져가게 될까?


시나리오는 스토리 + 연출이다

안타깝지만, 그 작가분께서 그 게임의 연출 제작까지 모두 혼자서 담당하신 게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건 어렵다. 하지만 시나리오 연출도 만만치 않게 까다롭다.

시나리오를 쓰는 건 인물, 대사, 그리고 지문만 고려하면 된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고스란히 글 위에 표현할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시나리오 연출을 한다는 것은 그 시나리오의 인물, 대사, 그리고 지문을 모두 이해한 채 서로 연결하는 통합의 작업이다. 시나리오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과정이다. 따라서 시나리오 연출의 완성도는 시나리오를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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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

연출은 가이드가 없다

나는 시나리오 연출 업무를 수 년을 해왔다. 정확히는 2D 미연시 스타일의 시나리오 연출이었다.

시나리오는 수많은 작법서가 있다. 게임 시나리오조차 어떻게 하면 좋은 게임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 안내하는 책이 여러 권 있다. 하지만 게임 시나리오 연출은 작법서가 없다.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임 시나리오 연출은 오로지 자신의 감을 믿고 진행해야 한다. 물론 영화 연출을 위한 작법 또한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문법일 뿐, 게임의 문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치 돼지의 심장을 인간의 심장에 이식하는 것처럼, 될 것 같으면서도 결국 실패한다. 게임의 문법은 영화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시나리오 연출은 그 누구의 가이드 없이 자신을 등불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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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 Stay Night

하지만 그나마 희소식이 있다. 미소녀 게임은 모두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고유의 ‘연출’이 있다. 즉 레퍼런스가 아주 많다! 특히 일본 서브컬처 게임은 ‘비주얼 노벨’에 아주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위 말하는 ‘미연시’들을 통해 연출 레퍼런스를 참고할 수 있다.

(특히 Type-moon 사의 ‘마법사의 밤’, ‘Fate Stay Night’는 지금 봐도 아주 훌륭한 연출 교재다’)


노하우를 쌓자

나는 게임 시나리오 연출을 하는게 즐거웠고,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연출을 망치면 아무리 재미 있는 시나리오라고 해도 시나리오를 읽는 맛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연출의 완성도가 괜찮다면, 아무리 따분한 시나리오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더 유저의 시선을 잡아놓을 수 있다. 물론 연출만으로 재미를 보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연출이 과하면 보는 사람이 지친다. 스토리와 연출, 두 요소가 서로 조화롭게 맞물려야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탄생하게 된다.

나는 게임 시나리오도 써 보았고 마찬가지로 게임 시나리오 연출도 해 보았다. 나는 좋아서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지만, 매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특히 좋은 레퍼런스를 찾기가 힘들었고, 어떤 것을 벤치마킹하면 좋을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헤메지 않도록 내가 그동안 업계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런 노하우가 계속 공개되고, 업계 전반에 축적되어야 비로소 우리 나라에서도 ‘원신’이든, ‘포켓몬’과 같은 강력한 IP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