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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에셋 구입」에 관한 짧은 생각

들어가는 글

에셋 구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셋 구입 표지
역설적이게도 에셋 스토어의 할인은 언제나 반갑고, 에셋 구입은 언제나 망설여진다(?).

현업 게임 개발자라면 ‘에셋 스토어(AssetStore)’라는 이름을 최소 한번은 듣게 된다.

(언리얼 엔진 이용자의 경우에는 마켓플레이스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편의상 유니티 에셋 스토어로 통칭합니다.)

에셋 스토어에서는 게임 개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익한 애드온이나 리소스를 무료로 얻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다수의 게임 엔진 교육 서적에서도 에셋 스토어에 관해 빼놓지 않고 소개할 만큼, 에셋 스토어라는 존재는 게임 개발과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기존에 개발된 툴 위에 무언가를 얹는다는 건 매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필자가 거친 현업 게임 회사에서는 에셋 구입이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프로젝트 초기 세팅을 위해 구입한 몇 가지 에셋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개발 필요 기능은 프로그래머가 기획자의 기획서를 바탕으로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는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 기능이 에셋 스토어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흔해빠진 기능인데도 말이다.


아트도 마찬가지다.

3D 배경 제작에 사용할 조명 프랍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다.

고작 10달러도 하지 않는 그 에셋을 사기가 힘들어서 며칠에 걸쳐서 레퍼런스를 찾고 디자인을 기획하는데 최소 두 명의 소중한 시간이 쓰였다.

물론 직군마다 실제로 에셋을 필요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가령 2D 원화가가 에셋을 살 일이 얼마나 있을까 개인적으로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모든 직군이 에셋을 필요로하지 않는다면 에셋 스토어는 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하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나라 게임회사만 에셋 구매에 소극적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에셋 구입에 소극적인 이유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크게 세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아마도?) 에셋 구입에 소극적인 이유

  • 첫째, 회삿돈을 쓰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 에셋이 무료가 아니라면 에셋을 구매해야 한다. 에셋의 가격이 고작 1달러라고 해도, 에셋을 구입하는 건 한푼이라도 회삿돈을 사용해야 하므로 결재를 받아야한다. 번거로운 설득을 하느니 그냥 에셋을 구입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둘째, 자신의 실력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에셋을 필요로 하는 주체는 보통 ‘실무자’다. 그런데 에셋을 구입하는 사람은 보통 ‘관리자급’이다. 관리자급은 실무자가 에셋을 사자는 요청을 무한정 승인할 수 없다. 자신이 회삿돈을 까먹는 관리자라고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셋 구매가 필요한 이유에 관해 실무자에게 그 이유를 깐깐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실무자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에셋으로 대체해서 처리하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 셋째,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확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에셋 판매자가 ‘프리웨어’라고 해놓고, 상업적인 이용을 하는 경우는 문제를 삼는 경우가 있다. 에셋 구매 시점에서는 ‘프리웨어’였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상업적인 이용 시 로열티 지급’ 등의 내용을 계약서에 추가해놓을 수도 있다. 이런 까다로운 상황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직접 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필자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위와 같은 이유 정도만 떠올랐다.

또다른 이유로 에셋 구매를 주저할 만한 상황은 충분히 있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보자. 꼭 에셋을 구매해야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에셋을 구입해야하는 경우가 있다면 대표적으로 어떤 경우가 있을까?


우리 다음달까지 이거 다 개발해야돼요

에셋 구입해서 해결하면 안 될까요?

게임 개발 특성상 시간이, 인력이, 또는 전문 지식(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도저히 답이 없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고, 뾰족한 수가 없다면 흔히 ‘야근’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해서 일정을 맞추면 다행이지만, 보통 그런 일은 한 번만 일어나지 않는다.

‘만성화된 야근’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때 우리가 고민해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에셋 구입’이다.


기회? 아니면 위기 일발?

???: 이번 달까지 다이얼로그 시스템 필요 스펙 리스트 주세요.

기획자: 네? 제가요?

???: 님 말고 할 사람 없어요.

이번에 필자는 개발자로부터 다이얼로그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필요 스펙 리스트’ 전달을 요청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희비가 교차했다.

먼저 좋은 점을 먼저 말하자면, 다이얼로그 시스템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포스팅에서 다양한 다이얼로그 시스템 관련 포스팅을 이미 작성해 왔을 정도로 말이다.

(링크)

(링크)

(링크)

한편으로는 걱정이 뒤따랐다.

다이얼로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려면 상당히 많은 개발 공수가 들 게 분명한데, 그 기획서를 쓸 시간, 구현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소요될 시간, 그리고 그 동안 병행해서 진행해야 할 다른 일들이 눈에 선했다.

야근 없이는 일을 처리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현 회사에서 필자의 메인 업무가 ‘시스템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도 필자의 고민에 한 짐을 더했다.

물론 내러티브 디자인 중에서 아웃게임 퀄리티 업을 위해 시스템 관련 기획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허나 필자는 기본적으로 컨셉을 잡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입사했다.

가장 우려되는건, 시스템 파트가 따로 존재하는데 R&R 침범이 우려되었다.

원치 않는 정치적 역학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문제를 원인, 그리고 해결책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인은 뭐지? 바로 다이얼로그 시스템 개발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답은 뭐지?

여기서 내린 필자의 답은 아래와 같다.

복잡한(다이얼로그) 시스템은 에셋을 사는 게 정답이다!

구현 vs 에셋 구입

서큐 하트의 한 장면. 위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기획이 필요할까?

다이얼로그 시스템은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아우르는 거대한 스펙이다.

당장 떠오르는 개발 필요 리스만 해도, 다이얼로그 출력 방식, 속도, 캐릭터 등장 연출, 캐릭터/배경 이펙트, 스크립트 작성 규칙, LQA, 로컬라이징, 디버깅 등등이다.

이를 최신 수집형 RPG 게임에 준하는 스펙으로 제대로 구현하려면 만만치 않은 물건이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프론트엔드를 만든다 해도 결국 문제는 백엔드(플레이어가 보지 못하는 뒷부분)에서 발생한다.

내러티브팀의 생산성은 내러티브 디자이너의 연출 디버깅 편의성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사 한 줄, 연출 한 개 바꿀 때마다 엔진을 리부트해야하는 환경과, 고작 버튼 한번 눌러서 바꿀 수 있는 환경은 시간이 갈수록 생산성에 큰 차이가 벌어진다.

다이얼로그 연출 제작에 직접 투입될 스크립터(최종사용자)에게 편리한 구조를 구축하려면 반드시 시니어 내러티브 및 시스템 디자이너가 많은 고민을 거쳐 툴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최종사용자 관점을 간과하고 기능을 개발했다간, 추후 불필요할만큼 추가 인력을 더 충원해야하거나 라이브 일정이 하드해지는 등 사이드 이펙트가 불거질 수 있다.

제대로 된 멤버가 모여 기능 하나하나를 다 만들면서 프로젝트 출시까지 하려면 필자 생각에는 기획에만 1달 이상, 구현에만 3달 이상이 걸린다고 본다.

제대로 된 QA와 프로세스 정립 과정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일정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천문학적인 맨파워와 비용을 투자할 만한 가성비가 나올까? 필자의 답은 No다.

아무리 저렴한 개발자라고 해도 한 사람이 8시간을 일하면 인건비만 100$ 이상이다.


에셋을 산다면 어떨까?

유니티 에셋 스토어 기준으로, 대표적인 다이얼로그 툴들과 그 가격은 아래와 같다.

  • Dialogue System for Unity: 85$ (할인가 42.5$)
  • Naninovel — Visual Novel Engine: 150$ (할인가 75$)
  • UTAGE4 for Unity Text Adventure Game Engine Version4: 90$ (할인가 45$)

이중에서 어떤 에셋을 선택해도 8시간만에 개발할 수 없을만큼 방대하고 검증된 기능을 제공한다.

뭐니뭐니해도, 기획서 쓸 시간, 구현할 시간, 그리고 설득할 시간을 모두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어쩌면 수백에서 수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 년간 개발된 에셋들인만큼 안정성을 담보하는데다, 에셋이 문제를 일으켜도 매뉴얼이 존재하니 프로그래머를 괴롭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에셋 구입은 직접 구현보다는 메리트가 많았다.

결론

Naninovel은 그야말로 비주얼 노벨식 다이얼로그 시스템의 All-in-One 에셋이다.

다이얼로그 시스템을 개발해야한다는 요청에 필자는 역으로 회사에 ‘에셋 구입’을 요청했다.

이때 필자가 고른 에셋은 바로 과거 필자의 지인이 추천해 준 ‘Naninovel(나니노벨)’이다.

비록 모든 매뉴얼이 영어로 되어 있고, 다른 에셋 대비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이 에셋이 가장 우리 프로젝트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필자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육성 비주얼 노벨 게임 중 하나인 ‘서큐 하트’에서도 Naninovel을 사용했다는 점이 이 에셋을 선택하게 만든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지스타 시연용 ‘서큐 하트’ 데모를 끝까지 플레이해본 적이 있다.

이 인디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낀 건, 이 인디 게임의 다이얼로그 시스템 정도라면 필자가 생각하는 내러티브 디자이너가 원하는 모든 기능을 다 활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그 게임에 사용된 다이얼로그 에셋이 바로 Naninovel임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게임 ‘서큐 하트’의 내부 파일을 찾아보면 Naninovel을 사용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인디 게임이지만 놀랐던 건 이런 메신저 시스템도 확실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에셋’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서는 굳이 에셋을 구매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3가지로 항목을 나눠 대답하지 않았을까.

  • 에셋 구입은 경제적입니다. 여러 사람이 몇 달 고민할 일을, 한 사람이 며칠 공부할 일로 줄여줍니다.
  • 에셋 구입은 안정적입니다. 개발하며 생기는 버그를 픽스할 필요 없이, 이미 수 년간 안정적으로 디버깅된 에셋을 임포트하기만 하면 됩니다.
  • 에셋 구입은 최종사용자 친화적입니다. 직접 다이얼로그를 사용해 무언가를 개발해야하는 최종사용자가 직접 선정한 만큼, 최종사용자가 만족할 만큼 충분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제 필자의 다음 목표는 바로 이 ‘Naninovel’을 열심히 번역하는 일이다.

그리고 회사 구성원 모두가 빠른 시일 내에 학습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서를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지식과 노하우가 모이고 쌓인다면 언젠가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수준도 전 세계 게임 업계를 이끌어가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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