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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모션 기획 업무 – 2편


들어가는 글

게임 모션 기획의 두 번째 단계, 이번 글의 주제는 바로 ‘대사 기획’이다.

이전 글에서 필자는 ‘게임 모션 기획’ 업무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캐릭터 터치 시의 모션 변화 등에 간단히 언급했었다.

(혹시라도 못 보고 오신 분은 아래의 이전글 보기를 통해 보고 오시면 좋습니다.)

(이전글 보기)

‘게임 모션 기획’ 중에 갑자기 대사 기획을 다루다니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임 모션은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게임 모션에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터랙션 요소도 포함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창구에 해당하는 ‘대사(스크립트)’이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 대사 기획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대사 기획이 왜 필요할까?

캐릭터가 떠들어야하는 이유

캐릭터가 꿈틀대거나 춤을 추는 모든 행동도 중요하지만,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대사’다.

터치했을 때 그에 맞춰서 캐릭터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모래사장 위를 열심히 기어가는 개미를 건드리고 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을 걸었으면(터치를 했으면) 그에 따른 반응(피드백)을 해야한다.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사람이며, 게임 세상 내에서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성을 가진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도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 반응을 하는데 캐릭터(사람)도 당연히 좋은 티든 싫은 티든 내야 자연스럽다.

그러니 우리의 소중한 자식뻘(?) 캐릭터에게 그 녀석이 할 법한 개성 넘치는 대사들을 만들어주도록 하자.

구어체로 친근감있는 대사 작성해보기

대사 기획 - 붕괴 3rd 아웃게임 가이드 텍스트 예시
은근히 아웃게임에는 대사(보이스)를 넣을만한 구간이 많이 존재한다. – ‘붕괴 3rd’

앞서 캐릭터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잡았다면, 본격적으로 캐릭터의 대사 기획을 진행할 때다.

아직 캐릭터성이 다소 모호하다면 여기에서 캐릭터성을 다시 한번 잡아주고 넘어가도록 하자.

괜찮다. 캐릭터 기획은 캐릭터의 원화, 모델링이 나오고 나서도 바뀔 수 있다. (단, 바꿀 수 있는 폭이 점점 좁아질 뿐이다.)

캐릭터 대사는 ‘구어체’로 작성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인 스토리는 문어체로 작성해도 전혀 문제 없다.

반면에 캐릭터를 터치했을 때 나오는 대사는 문어체를 사용하게 되면 어색해진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터치’한다는 건 마치 그 캐릭터의 눈 앞에서 쿡쿡 찌르는 것과 다름 없다.

나는 친근감이 들어서 쿡쿡 찔렀는데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대답한다면 캐릭터와 쉽게 친해질 수 있을까?

캐릭터가 정말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면 마치 친구처럼, 동생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의 구어체가 유리하다.

구어체 VS 문어체

아침에 만난 후배가 인사를 하는 장면을 문체를 다르게 해서 한번 구성해보았다.

  • 구어체 예시: 선배, 안녕하세요! 와 날씨 진짜 좋지 않아요? 아참! 오실때 그 가게 갔었어요? 거기 토스트 대박 맛있지 않아요? 에헤헤.
  • 문어체 예시: 선배, 안녕하세요! 오늘도 날씨가 참 좋네요. 앗,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그 가게 들러 보셨어요? 가게에서 파는 토스트, 정말 맛있지 않으셨나요? 후후.

구어체는 문법이 매끄럽진 않지만 꽤 생동감이 느껴지는 반면에, 문어체는 말투는 정중하나 다소 딱딱하고 격식을 차리는 느낌이 든다.

문어체가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어느쪽이 더 실제 대화에 가깝게 느껴지느냐의 차이이다.

캐릭터 보이스 녹음하기

자금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면 보이스 녹음을 적극 검토해보자.

캐릭터 수집형 게임일수록 보이스의 존재가 그 캐릭터의 생동감을 크게 끌어올려주기 때문에 중요도가 높다.

기본적으로 보이스 녹음은 단가가 비싸고 스케줄링이 쉽지 않다. 막상 보이스 녹음을 진행하려고 해도 이러한 자금과 시간의 문제로 제약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이스 녹음을 할 때 가장 가성비가 좋은 선택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단순 전투 기합음이나 스킬 사운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아래에 더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캐릭터를 터치하거나 캐릭터가 혼잣말을 하는 등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는 곳에 사용하는 보이스는 효과가 크다.

즉, 캐릭터의 개성이 잘 드러나(게 하)는 보이스를 녹음해야 한다.

대사 기획 1단계: 주제 선정하기

대사 기획 업무는 주제 선정의 자유도가 높다.

스토리 기획할 때는 스토리의 기승전결, 앞뒤 스토리와의 연결, 어떤 캐릭터(또는 빌런)을 등장시킬 것인가의 판단 등이 필요하다.

대사 기획은 그런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점은 굉장히 편리하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공통 주제’를 가질 것인가에 관해서는 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캐릭터가 반드시 같은 주제를 가질 필요는 없다.

대사 주제가 캐릭터마다 들쭉날쭉이면 대사 퀄리티가 균등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으니 공통적인 프레임은 필요한 정도다.

흔히 사용되는 대표적인 주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자기 소개
  • 자신의 취미
  • 자신의 특기
  • 자신의 생각(특정 인물이나 사물, 현상에 관해)
  • 자신의 친구
  • 자신의 컴플렉스

대사 중에서는 혼잣말에 더 어울리는 대사도 있다.

다음의 주제는 혼잣말에 사용해도 괜찮은 주제들이다. (대화 상황에 사용해도 문제 없다.)

  • 자신의 목표
  • 자신의 이상향
  • 자신의 무기
  • 자신의 기술(스킬이나 마법)

이때의 대사는 진솔한 대화에서 할 법한 내용보다는, 잡담에 가까운 시시콜콜한 내용이 더 적절하다.

진솔한 대사는 스토리로 풀어주고, 여기서는 캐릭터의 성격, 개성에 관해 보여주는데 더 신경쓰도록 하자.

대사 기획 도중에도 이처럼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고민도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

캐릭터마다 가진 개성을 어디서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전적으로 내러티브 디자이너의 손에 달려 있다.


대사 기획 2단계: 대사 사용처 정하기

캐릭터 대사 보거나 들을 공간 마련하기

대사를 작성하기에 앞서 중요한 건 이 대사를 ‘어디서’ 사용할 것인지 정하는 것도 대사 기획 업무 중에 할 일이다.

모션에 연계된 대사의 경우, 캐릭터를 터치했을 때 출력하게 할지, 아니면 캐릭터가 딴짓을 하다가 출력하게 할지 정하자.

특히 터치했을 때 대사는 플레이어(나)와 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 대사를 쓰는 게 좋다.

터치했다는 건 내가 말을 걸었다는 메타적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딴짓 대사는 혼잣말이 더 잘 어울린다. (내가 딴짓을 하고 있다는 메타적 맥락이므로, 캐릭터도 혼잣말로 딴짓을 한다는 상황)

물론 각각 반대로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니 너무 조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대사를 들을 곳만 정해지면 된다. 조건은 그 다음의 문제다.

대사가 어울리는 공간

대표적인 사용처는 아래와 같다.

  • 온보딩(로그인) 화면
  • 메인 로비 화면
  • 캐릭터 가챠 결과 화면
  • 캐릭터 정보 화면
  • 캐릭터 장비 화면
  • 캐릭터 스킬 화면
  • 콘텐츠 입장 로비 화면
  • 이벤트 콘텐츠 입장 로비 화면

대사 기획 3단계: 분량 정하기

퀄리티와 효율의 황금비율을 찾아서

대사의 개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대사의 길이도 길면 길수록 좋을까?

물론 대사의 가짓수가 다양하고 분량도 충분히 길다면 그렇지 못한 게임에 비해 유리하다.

게임을 할 때 대사 한 가지만 볼 수 있다면 캐릭터가 바보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주제마다 대사가 10벌씩 있다면 어떨까?

만약 10개의 주제에 관해 대사를 작성하기로 했다면, 무려 100벌의 대사를 작성해야 한다.

심지어,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 모든 대사를 다 열람할 플레이어가 거의 없을 거라는 현실이다.

보이스 녹음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녹음 스펙이 커지는 데에 따른 비용도 함께 증가한다.

대사 기획 업무도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연스럽지 못하다.

라이브 서비스를 목표로 한 게임이라면 적절한 분량을 정하는 건 앞으로의 업데이트 계획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1개만 필요한 대사 VS 다다익선 대사

1개만 있어도 충분한(=문제 없는) 대사가 있는 반면, 많으면 많을수록 빛을 발하는 대사가 있다.

특히 1개만 필요한 대사를 먼저 정해 두면, 그 대사는 1개만 작성해 두고 다른 대사의 퀄리티를 더 신경쓸 수 있어서 좋다.

대표적인 1개만 필요한 대사는 아래와 같다.

  • 온보딩
  • 자기 소개
  • 가챠 소환 결과 대사

온보딩 대사란, 게임에 접속하기 직전 화면에서 들을 수 있는 대사를 말한다.

여기서 ‘들을 수 있는 대사’라는 표현을 썼는데, 온보딩 대사는 대사 말풍선이 필요 없고 오직 보이스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성우)가 그 게임의 제목을 부르는 대사를 말한다.

  • 블루 아카이브!
  • 프린세스 커넥트 리다이브!

이런 대사는 굳이 여러 배리에이션이 필요 없으므로 1개만 있어도 충분하다.

자기 소개 대사는 캐릭터가 자기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대사도 좋고 캐릭터 스스로를 어필하는 캐릭터성이 듬뿍 담긴 대사도 좋다.

자기 소개 또한 굳이 여러 번 할 필요는 없으므로 1회면 충분하다. 가챠 소환 결과 대사에서 자기 소개 대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대사는 뭐가 있을까?

  • 캐릭터 강화 대사
  • 캐릭터 행동 대사
  • 캐릭터 공격 대사
  • 캐릭터 터치 대사

일반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행위와 연관된 대사들이 좋다.

예를 들어, 특정 캐릭터를 강화한다면 강화 버튼을 많게는 수십 번 눌러야할 수도 있다.

이때 대사가 없거나 1개만 준비된 경우 대사가 금세 따분해질 수 있다. 적어도 2~3개는 있다면 이러한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

터치 대사도 많을수록 좋다. 예전부터 같은 캐릭터에 여러 번 말을 거는 플레이어들은 항상 있어왔기 때문에, 이런 플레이어들은 대사가 많을수록 좋아할 것이다.

그밖에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행위가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자.

대사 기획을 잘 하려면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인터랙션’의 가짓수를 빠삭하게 파악해두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우리 게임이 흔해빠진 장르와 흔하디 흔한 시스템 구조를 채택했다면 그저 다른 게임을 베껴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반면 다른 게임에 비해 캐릭터성도 중요하고 아이덴티티가 돋보이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 게임의 장점에 초점을 맞춰 보이스 스펙을 정해보자.

분명 이런 디테일을 좋아해주는 플레이어가 있을 것이다.

더 고민해보면 좋을 지점

대사 기획자는 기본적으로 ‘우리’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숙제 콘텐츠를 하기 위해 특정 씬을 들락날락하거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거나, 적을 처치하는 등의 상황 또한 대사가 많을수록 좋다.

플레이어가 자주 ‘인터랙션’ 하는 화면일수록 그 지점에서 대사나 보이스가 나오면 체감이 크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대사 사용을 희망한다면 해당 콘텐츠나 시스템 기획자 등과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대사 말풍선을 보여줄 것인지, 보이스를 사용할 것인지, 출력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처리도 함께 생각해두는 게 좋다.


대사 기획 4단계: 대사 1개씩 작성해보기

샘플 대사의 필요성

이제 본격적으로 대사를 작성할 차례다.

앞서 1, 2, 3단계를 정상적으로 밟아왔다면 우리에게는 대사를 작성하기 위한 적절한 ‘규칙’이 생겼을 것이다.

어떤 주제에 맞춰서(what), 사용처는 어떻게 할지(where), 그리고 분량은 얼마나 길게 할지(how) 정했다.

그렇다면 이 규칙이 실제로 작동(working)하는지 검증은 어떻게 할까?

그래서 바로 지금 작성하는 게 바로 이 ‘샘플 대사’다.

‘샘플’이라고 해서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샘플은 무의미한 테스트용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각 주제가 적절한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작성하는 대표 모범 문장에 가깝다.

1주제 = 1대사

대사 기획에서 가장 작은 단위는 바로 ‘대사’다.

하나의 주제에 따라서 대사가 3개가 될 수도 있고, 5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개가 적절한지는 적용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정말 경험이 많은 기획자라고 해도 테스트는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주제에 각각 한 개씩 대사를 작성해보면 사용처, 분량, 그리고 개수가 적절한지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따라서 1주제 = 1대사를 작성해보자.

만약 주제의 수가 30개라면 대사를 30개만 작성해보자.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렇게 작성한 샘플 대사가 게임 내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만약 이미 팀 내에서 정해놓은 작성 기조가 있다면 이런 절차는 건너뛰어도 된다. 팀에서 정한 기조가 우선이니 그에 맞춰 따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자신이 작성한 텍스트가 의도대로 올바르게 나오는지 검증하는 건 필요하다.

겉으로는 문제 없어보이는 내용과 구성도, 실제 게임에서는 개행이 어색하다든지 말풍선을 뚫고 대사가 나온다든지 예상 외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빨리 발견할수록 조치가 빠르고 간단하다. 만약 이런 이슈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넘어가면, 나중에는 작성한 모든 대사의 전수검사를 해야할 수도 있다.

샘플 대사가 의도대로 잘 연결되었는지도 확인하자.

터치 대사를 의도했는데 Idle 모션에서 나온다든지, 아니면 캐릭터 가챠 화면에서 대사(또는 보이스)가 누락되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하자.

이렇게 연결했을 때 문제가 없다면 그 이후에는 테스트에 그렇게 큰 공수를 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 대사나 보이스를 반복해서 확인해보자.

대사(보이스)의 내용은 적절할까?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까? 아니면 몇 개 더 있으면 좋을까?


대사 기획 5단계: 스펙 확정하고 주제에 따른 대사 쓰기

대사 스펙 확정하기

샘플 대사가 의도대로 나왔는지 테스트까지 마쳤다.

(즉, 각 대사가 각 주제나 사용처, 그리고 분량상의 문제 등이 없이 의도대로 나왔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제 각 대사의 배리에이션 대사를 작성할 때다.

위에서 검증한 결과를 바탕으로 배리에이션의 개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자.

예를 들어 배리에이션 5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 일단 3~4개로 책정하자.

그리고 회의를 통해 개수가 적절한지 논의 후 확정하자.

처음부터 너무 많은 개수를 책정하면 회의 결과 작성 수량이 ‘늘어나는’ 결론이 났을 때 문제가 생긴다.

작성 공수는 얼마나 될지, 작성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잘 기억해두고 어필하자.

작성하는데 필요한 일정을 보수적으로 책정하자. 나는 언제나 슈퍼맨이 될 수 없다.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는 일정을 제시하자.

어차피 조율 결과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약간은’ 타이트하게 결정될 것이다.

보이스 스펙 확정하기

만약 보이스를 넣기로 했다면 보이스 스펙도 확정하자.

이 경우, 보이스를 무한정 녹음할 수는 없을테니 보이스 녹음 스케줄에 따라 분량이 조절될 수도 있다.

보이스 스케줄은 30분 단위, 1시간 단위 등으로 자르는데, 예를 들어 대사 1줄만 녹음하는 데 성우를 30분 대여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사 1개만 녹음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빈둥빈둥 버리는 시간이 된다.

최대한 많은 보이스를 준비하자. 성우 녹음을 위해 책정된 시간이 30분이면, 최소 40분 어치 분량을 준비한다.

그리고 나서 중요도에 따라서 보이스 녹음 순서를 결정하자.

중요한 건 최소 하나의 주제에는 하나의 대사는 녹음이 되어야 한다.

가령, 터치 대사 5개를 녹음하느냐고, 가챠 대사 1개가 누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터치 대사 2개만 녹음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챠 대사 1개는 반드시 녹음이 되어야 한다.

즉, 배리에이션에 해당하는 녹음 대사는 중요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하고, ‘샘플 대사’에 해당하는 대사들은 최우선 녹음을 하도록 한다.


대사 기획 6단계: 재활용 가능 보이스 선별하기

대사 기획 - 원신 스토리 대사 샘플
스토리에서 보이스가 붙은 대사는 보통 1회성이다. 그래서 ‘비싸다’.

보이스 리소스는 기본적으로 가성비가 나쁘다.

한번 듣고 1회성으로 버려지는 보이스가 정말 너무나도 많다.

특히 스토리에서 쓰이는 보이스가 이에 해당되는데, 똑같은 스토리를 재탕할 일이 없으니 보이스 대부분이 1회성에 그치는 것이다.

바로 이 1회성에 그치는 보이스 리소스를 최대한 다양한 상황에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는 게 바로 ‘재활용’이다.

대사 기획 업무에서는 이 재활용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사실이 은근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게이머라면 그 누구도 스토리에서 들었던 보이스를 전투라든지 캐릭터를 터치했을 때 듣고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갑 사정이 궁핍한 개발사나 인디 개발자라면, 보이스 재활용은 한번쯤 고민해볼 법하다.

솔직히, 아예 녹음을 못해서 다 빼버리느니 재탕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재활용 가능 보이스의 비율은 기본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전략을 잘만 세운다면 성우 한 번 부를 돈을 굳힐 수도 있으니 한번 아래의 내용도 고려해보는건 어떨까?

범용적인 내용의 대사 녹음하기

대사 중에서도 무드나 내용이 너무 뾰족한 친구들은 일회성으로 쓸 수밖에 없다.

적당히 무난한 대사는 스토리에서도 쓸 수 있고 전투에서도 쓸 수도 있다. 운만 좋다면 터치 대사로 재활용도 가능하다.

스토리에서 사용하기로 전제하고 작성한 아래의 두 대사를 비교해보자.

  • 뾰족한 대사: 너, 너… 이 자식 가만 안 둬! 죽여버릴 거야!
  • 무난한 대사: 제가 나설 차례가 됐군요. 맡겨만 주시죠. 모두 처리할 테니.

뾰족한 대사는 ‘이 자식’, ‘죽여버릴 거야’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대사를 보면 발화자(캐릭터)의 큰 분노가 느껴지며 한 문장 자체가 통째로 의미를 담고 있어서 대사 중 어느 지점을 잘라서 쓰기에도 애매하다.

이런 대사는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대사를 적을 공격할 때 쓰거나, 캐릭터를 터치할 때 쓸 수는 없다.

무난한 대사는 어떨까? 대사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 차분한 편이다. 그리고 임의로 대사를 잘라서 써도 앞뒤로 내용이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무난한 대사를 가져와서 인게임 또는 아웃게임에 붙여보고, 크게 어색하지 않다면 그렇게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녹음하기 전부터 무난한 대사를 많이 섞어두면 재활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녹음 스크립트 작성 단계에서부터 이런 요소를 모두 고려하면서 작성하기는 어렵다.

대사 기획이 모두 끝나고, 작성 완료 후 적당히 ‘무난한’ 문장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긴 녹음 잘라서 쓰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긴 녹음 파일은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스튜디오 내에 ‘사운드 디자이너’가 있다면 한번 부탁해보자.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런 보이스 파일 튜닝이나 SFX 제작, BGM 조율 등 전반의 이슈를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이다.

스튜디오 내에 사운드 디자이너가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아쉬운대로 담당 기획자가 나서서 사운드 파일을 편집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운드 파일은 대부분 .wav, .ogg, .mp3 확장자 파일이다. 이런 파일들은 특정 프로그램 없이 웹사이트에서 자르기 기능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으니 알아보도록 하자.

아래의 웹사이트는 사운드 파일 커팅을 무료로 진행 가능한 사이트다.


(링크)

(링크)

버려진 스펙의 보이스 다시 한번 검토하기

녹음하는 보이스 중에서는 채택되는 보이스도 있지만 버려지는 보이스도 있다.

예를 들어, 실제로 녹음을 해보았더니 어울리지 않는다든지 기획의도와 어긋난 결과물이 나왔다든지 등의 이슈로 기껏 녹음한 보이스가 제외되기도 한다.

실무에서는 은근히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된 리소스들이 아카이브에 쌓이게 되는데, 여기서 뜻밖의 노다지를 발굴할 수도 있다.

성우가 변경되었다든지, 아니면 캐릭터성이 달라지는 등의 커다란 변경이 발생한 게 아니라면 이런 버려진 보이스 사용도 한번 재검토해 보도록 하자.

물론 검토 결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 들어볼 가치는 있다.

대사 기획 업무는 이런 리소스 확인 및 마무리 정리까지 깔끔하게 끝내고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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