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게이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서브컬처는 당신이 아는 ‘그것’이 아니다

들어가는 글

“서브컬처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실 수 있나요?”

최근 필자가 면접을 볼 때 빼놓지않고 던지는 질문이다.

어떤 곤란한 질문에 부닥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획자는 진귀하다.

필자는 기획자에게 ‘자기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역량’을 요구한다.

‘서브컬처를 정의하라’는 질문만큼 생각할 줄 아는 힘을 가졌는가 읽어내기 좋은 질문도 없다.

스스로가 서브컬처 게임을 좋아하고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서브컬처라는 용어가 무엇일지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는 건 당연하다.

용어가 가진 오묘한 함의조차 고민해본 적 없이 다른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는 건, 다른 직군도 아닌 기획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둘러썬 ‘모순’을 진작 간파하고, 그것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보았을 기획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던진 난감한 질문을 이제 필자 스스로에게도 던지고 그 사유의 흔적을 지면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앞서 필자가 면접관으로서 면접자 분들께 던졌던 ‘난감한 질문’에,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자신만의 정의로 답을 내려준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드린다.


‘서브컬처’라는 말이 ‘주류’라는 표현과 한 문장 안에 동시에 쓰이는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도 되는 걸까?

화두, ‘서브컬처’는 더이상 ‘서브’ 컬처가 아니다

원신은 서브컬처인가? 맞약 맞다면/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브컬처’라는 용어가 오, 남용되고 있는 시대다.

서브(sub)라는 접두사가 가진 ‘주변인(alien-)’적인 어근의 뉘앙스가, 전세계에서 일 년에 수 조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에도 당당히 붙고 있다.

과연 어떤 문화콘텐츠가 이런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서브’라는 변두리로 취급된단 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백 만 개의 디스플레이에서 서브컬처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장르들이 반짝이는 한편, 일년에 한 권 읽을까말까 한 ‘시집’은 서브컬처로 분류되지 않는다.

서브컬처라는 용어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까 하여 필자가 먼저 화두를 던지겠다.

재패니메이션 풍의 아트로 묘사된 캐릭터 및 관련한 감성은
지금 시대에는 더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한때 서브컬처였던 ‘그것’은 이제 더이상 서브컬처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커졌다.

일식집에 원피스 피규어가 놓이고, 용산아이파크몰에 수십 대의 가챠(뽑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서브컬처라고 느껴지는가?

이 글은 기존에 서브컬처라는 용어에 씌워진 ‘오해’를 벗기기 위해 썼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진짜 ‘그것’을 정의하기 위해 어떤 표현을 써야할지 필자 나름의 고민을 담았다.

이 글에서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해체할 것이며, 기존에 서브컬처라고 불리던 문화를 전혀 다른 용어로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질문과 비판은 언제든 환영이다.

건설적인 토론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서브컬처’의 정의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귀중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라고 믿는다.

서브컬처를 해체하다

사전에 실린 ‘서브컬처’라는 용어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해체함에 앞서, 사전에 실린 ‘서브컬처’라는 용어의 정의를 인용해보자.


한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전체 문화(total culture)라 할 때, 그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를 하위문화(Subculture)라고 한다.

– 문학비평용어사전 ‘하위문화’ 中
(링크)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전체문화 내에 존재하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보이는 소집단의 문화를 서브컬처라고 정의한다.

현대의 시대에 범람하는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동떨어져있는 정의처럼 느껴진다.

쉽게 말해, 우리가 진짜로 궁금한 건 ‘원신도 서브컬처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신은 서브컬처일까? 아니면 더이상 서브컬처라고 부를 수 없을까.

이 화두에 답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은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 곁의 ‘서브컬처’라는 용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한 마디로, 사전에서 정의하는 서브컬처가 ‘랑그’라면, 우리 각자가 가진 서브컬처의 정의가 ‘빠롤’이다.

사전에서 서브컬처가 ‘독자적 소집단의 문화’라고 정의했지만 실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게임업계 주변 인물들에게 서브컬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대체로 그 대답은 아래와 같이 좁혀졌다.

  1. 서브컬처는 재패니메이션 문화(또는 오타쿠 문화)이다.
  2. 서브컬처는 ‘하위 문화’라는 용어이다.
  3. 서브컬처를 정의하는 건 무의미하다.
  4. 서브컬처라는 건 유동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지금의 서브컬처도 시간이 지나면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 생각하고 있는 관념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모든 수식어를 제외하고 주어와 서술어만 남겨 위와 같은 뼈대만 살펴본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서브컬처’도 위의 네 가지 중에 하나에 해당하는가?

필자가 놀랐던 건, 서브컬처라는 용어가 이처럼 다양한 개념(최소 4가지 이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면서도, 더 이상 분열되지 않고 비슷한 정의들끼리 그룹화가 된다는 점이었다.

이를 방증하는 건 1번이라고 답한 사람도, 2번이라고 답한 사람도, 3번과 4번이라고 답한 사람도 모두 최소 2명 이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즉, 각 관점은 최소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내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개념적 합의점에 도달한 시각으로 읽힌다.

쉽게 말해, 위 네 가지 모두 서브컬처라는 용어가 가진 특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공통점도 발견했다.

사람들은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정의내리기 난감해(어려워)했다는 점이다.

사전적 정의를 옮겨서 답한 유형은 2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번의 답을 한 사람이 가장 다수였으며, 필자의 질문을 듣고 몇몇 똑똑한 분들((필자가 묻는 서브컬처의 정의가 1번이나 2번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분들))은 나름의 고민 끝에 1번이나 2번에서 3번이나 4번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이 용어가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브컬처라는 용어는 영원히 이렇게 ‘파편화된 답’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일까?

우리는 3번 관점처럼 영원히 서브컬처에 대해 정의내리지 못한 채 무의미한 질문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서브컬처의 정의와 척도

앞서 필자가 던진 화두를 다시 한번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재패니메이션 풍의 아트로 묘사된 캐릭터 및 관련한 감성은
지금 시대에는 더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위 주장을 증명하기에 앞서, 우리는 서브컬처의 정의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전체 문화(total culture)라 할 때, 그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를 하위문화(Subculture)라고 한다.

– 문학비평용어사전 ‘하위문화’ 中
(링크)


당신이 서브컬처를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언어학적으로 정의한 ‘랑그’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게 아니라면, 랑그와 빠롤 사이의 개념적 격차를 먼저 좁혀보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위 용어적 정의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가, ‘재패니메이션 문화’도 해당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렇다면 ‘서브컬처’를 정의하는 위 문장에서 쓰인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은 뭘 의미할까?

필자는 그 용어를 쉽게 말하자면 ‘매니아성(maniac)’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브컬처의 1차 척도 – ‘매니아성(maniac)’

소위 말해 ‘~에 미쳐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매니아성은, 오타쿠 문화 1세대를 정의할 때는 상당히 ‘부합하는’ 용어였다.

가령, 건담에 미쳐 있어서 온갖 종류의 건담을 다 외우고 집에 프라모델 장식장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매니악’하다.

재패니메이션 문화 중 하나인 건담뿐만 아니라, 마블이나 DC코믹스같은 미국 문화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수십에서 수백 가지의 액션 피규어, 그리고 코믹스를 집에다가 수집하는 사람들 또한 건담 매니아들처럼 일반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매니악하다’고 보인다.

즉, 재패니메이션 여부는 매니악함 여부와는 충분히 독립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한발짝 더 나아가 보자.

수집과 무관한 매니악함은 없을까?

예를 들어 몸에 문신을 새기는 ‘타투’는 어떨까. 이레즈미나 올드 스쿨같은 타투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타투를 받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는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일부 사람들은 전신을 타투로 도배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도 어느 의미로 ‘매니악’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서브컬처적이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 즉 매니악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서브컬처의 2차 척도 – ‘소수의 문화(minor)’

한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전체 문화(total culture)라 할 때, 그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독자적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집단의 문화를 하위문화(Subculture)라고 한다.

– 문학비평용어사전 ‘하위문화’ 中
(링크)

서브컬처 용어 정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소집단의 문화’이다.

소집단이란, 말 그대로 집단의 규모나 성격 자체가 작은 공동체이다.

수백에서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행사를 두고 우리는 ‘소집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수천에서 수만 명이 합류한다고 해서 반드시 소집단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동호회적인 성격을 띠고 특정 재패니메이션 컬처 애호가들이 운영하던 카페가 있었다.

회원수 6만에 달하는 작지 않은 카페이지만, 사실상 이제는 유령카페화가 된 ‘귀차니즘 미연시 연방’ 네이버 카페.

예를 들어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카페’, ‘창세기전 카페’, ‘귀차니즘 미연시 연방 네이버 카페’ 등이 있다.

이러한 소집단(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 등)은 회원 수는 많을지라도, 그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실제로 만나서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모임(정모)를 가지는 사람들의 수는 그보다도 더 적었다.

우리는 소집단이 ‘규모만 작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소집단을 이루는 구성원 대다수가 ‘뷰어(viewer)’라면, 뷰어를 제외한 열성유저들이 만든 문화를 보고, 그들이야말로 그 소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존재라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단순히 ‘열성유저의 비율’이 적은 곳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집단일까? 그렇지는 않다.

‘중고나라’, ‘여성시대’와 같은 수백 만에서 수천 만에 이르는 거대한 카페도 마찬가지로 소집단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다.

각자가 머리에 그리는 ‘소집단’의 규모는 다를 수 있다. 필자는 그 척도를 ‘열성유저의 비율’과 ‘경향성’, 그리고 그 집단 자체의 ‘크기’에 두었다.

이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규모의 척도가 다를 수 있기에, 소집단이라는 정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정의라고 생각한다.


소결론 1 – 서브컬처의 척도는 2개로 충분한가?

우리는 서브컬처의 명시적 정의를 해체하는 시도를 했고, 이로부터 서브컬처의 척도 2가지를 유추해냈다.

바로 ‘매니아성’과 ‘소수문화’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척도가 우리가 인식하는 서브컬처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지 한번 정리해 보자.

아래의 문장을 보며 각 문장에 들어가는 개념 내지는 작품이 당신이 생각하는 서브컬처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보라.

서브컬처의 척도 2개로 살펴보는 서브컬처 여부 – [소수의 문화 / 매니아성]

  • 다키마쿠라 수집은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매니아성]
  • 미연시는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매니아성]
  • 타투는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매니아성]
  • 애니메이션은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게임은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모에는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원신은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젠레스 존 제로는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오타쿠 문화는 서브컬처이다. [매니아성]
  • 시 감상 취미는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소극장 공연은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동성애는 서브컬처이다. [소수의 문화]
  • 섹슈얼한 소재는 서브컬처이다. [?]
  • 이슬람교를 믿는 건 서브컬처이다. [?]

필자가 위에서 제시간 14개의 문장을 위의 두 개의 척도로 구분하면 위와 같이 구분이 된다.

특정 문화들(다키마쿠라 수집, 미연시, 타투)은 소수의 문화 및 매니아성 양쪽에 부합한다.

어떤 문화는 ‘매니아성’만 만족시키며, 또다른 문화는 ‘소수의 문화’라는 마이너함에만 부합한다.

그리고 또다른 개념들, 가령 ‘섹슈얼한 소재’와 ‘특정 종교’는 우리가 가진 두 가지 척도로는 가치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심지어, 다키마쿠라 수집과 미연시, 그리고 타투가 매니아성과 소수의 문화라는 두 가지 척도를 만족시킴으로써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는 것도 찝찝한 느낌이 든다.

다키마쿠라 수집과 미연시 애호는 소비자층이 비슷할 것으로 충분히 유추가 되지만, 타투는 전혀 다른 문화임에도 서브컬처의 두 가지 척도에 부합한다.

바로 이 ‘타투’야말로, 재패니메이션 문화 소비와 ‘서브컬처’가 반드시 상관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핵심 반증이 된다.

이제 우리는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정의함에 있어, ‘타투’가 정말로 서브컬처가 맞는가에 대해서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서게 된 것이다.

즉, 서브컬처를 정의하는 데 있어 ‘소수의 문화’ 여부와 ‘매니아성 여부’라는 두 가지 척도만으로는 서브컬처라는 용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서브컬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랑그’가 명시한 정의만이 서브컬처를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소결론을 내리자면 아래와 같다.

  • 서브컬처의 ‘명시적 정의’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두 가지 척도는 아래와 같다.
    • 매니아성
    • 소수의 문화
  • 단, 위의 두 가지 척도만으로는 세상의 모든 문화(및 콘텐츠)가 서브컬처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정리하는 글

서두에서 던진 화두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에서만 550만 명이 극장에서 관람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대표적인 재패니메이션 문화콘텐츠다.
그렇다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서브컬처인가? 아니면 메인스트림(서브컬처의 반대 개념)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재패니메이션 풍의 아트로 묘사된 캐릭터 및 관련한 감성은 지금 시대에는 더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위 말의 ‘대우 명제’는 바로 ‘서브컬처는 재패니메이션 풍 아트로 묘사된 캐릭터 및 관련한 감성이다.’라는 문장이 된다.

우리는 이 글에서 대우 명제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음을 찾아냈으며, 그 대표적인 반증이 바로 ‘타투’라는 점을 발견했다.

다음 글에서는 ‘타투’가 정말로 서브컬처인지 탐구하고, 서브컬처를 정의하는 데 있어 우리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탐구해보도록 하자.

아직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여로는 이제 막 걸음마단계에 들어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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