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붕괴: 스타레일의 ‘아케론’이 불러일으킨 매출 소식이 화제다.
24년 4월, 붕괴 스타레일이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매출 3위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24년 3월 매출 기준, 붕괴: 스타레일의 매출이 원신의 매출의 더블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 기사도 있다.
그야말로 24년 봄 스타레일에서의 벚꽃 축제는 아케론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실 ‘호요버스’의 연타석 홈런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2016년 첫 선을 보인 ‘붕괴 3rd’를 비롯해, 2020년 출시한 ‘원신’, 2023년 출시한 ‘붕괴: 스타레일’과 2024년 출격 예정인 ‘젠레스 존 제로’까지, 호요버스가 현 시대의 미소녀 게임 서브컬처 시장을 말 그대로 견인하고 있다.
사명을 ‘호요버스(Mihoyo + Universe)’라고 바꿀만큼 OSMU와 IP 사업에 진심인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매번 성공을 할 수 있는 걸까?
정말로 ‘흥행’이라는 것에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도 ‘리니지라이크’라는 이름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흥행의 보증수표였지만, 이제는 그 찬란한 명성도 점차 역사의 한켠으로 저물어가며 그 자리를 미소녀 서브컬처 게임에 넘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서브컬처의 불모지였지만 이제는 한 달에 적어도 한 개의 ‘서브컬처 게임’이 출시되고 있는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유독 호요버스 게임이 돋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호요버스가 그동안 어떻게 ‘캐릭터 서사’를 빌드업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장기 흥행에 연결되었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IP 사업 전략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포스팅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호요의 IP 사업 전략에 관해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어서 첨부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2018년에 발표된 내용으로 아직 원신조차 시장에 나오지 않았을 때의 내용이지만, 이때 그들이 했던 고민이 어떻게 현재 시장에 효과적으로 워킹했는지 알아두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링크)
붕괴 3rd: 호요버스 스타 시스템의 영원한 ‘원전(Original)’
라이덴 메이라는 캐릭터
스타 시스템이란, 소위 말하는 ‘인기 스타 캐릭터’를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배우 ‘최수종’ 씨가 태조왕건에서는 ‘왕건’ 역을 맡았지만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강감찬’ 역을 맡아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
호요버스는 ‘스타 시스템’을 정말 잘 한다.
‘붕괴 3rd’에 등장한 캐릭터가 ‘원신’에 등장하기도 하고, 붕괴 3rd와 원신에서 어떠한 뚜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가 특정 요소가 재해석되어 ‘스타레일’에 등장하기도 한다.
붕괴 3rd의 ‘라이덴 메이’는 붕괴학원2에서 처음 등장해, 원신과 스타레일이라는 호요버스의 다른 작품에도 ‘개근’한 스타 캐릭터다.
긴 흑발 머리에 차분한 인상. 동방식 태도를 우아하게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이젠 붕괴 3rd 뿐만 아니라 호요버스를 상징하는 대표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라이덴 메이의 캐릭터의 외양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뭔가 독특한 캐릭터성을 지닌 개성넘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형적인 캐릭터의 느낌에 가깝다.
‘붕괴 3rd’의 키아나 카스라나, 브로냐 자이칙 등, 메이와 함께 다니는 다른 동료들의 캐릭터성이 더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J-서브컬처의 ‘현모양처상’ 성격과 외모를 지닌 라이덴 메이가 대체 무엇이 특별했길래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
전형성을 탈피하는 개성 요소 ‘GL’
라이덴 메이와 ‘키아나 카스라나’가 서로 끈끈한 ‘연인관계’라는 점은 시리즈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단순한 전우의 관계를 넘어서서,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한다.
두 여성 캐릭터가 서로 GL적으로 이끌린다는 사실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키아나보다는 얌전하고 차분한 메이에게 더욱 큰 갭이 느껴지게 만든다.
키아나가 다른 여성의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얀데레적으로 분노하는 메이의 모습은, 메이가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 또한 ‘서브컬처적 면모를 가진 결점있는 캐릭터’로 느껴지게 한다.
NDC 2022에서 ‘양주영 블루 아카이브 시나리오 디렉터’가 말한 것처럼, 매력적이기만 한 캐릭터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캐릭터가 가진 어떠한 인간적인 ‘결점’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GL’이라는 설정이 왜 결점이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러한 독특한 ‘성적지향’은 사회통념상 일반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필요한 ‘어그로’를 끌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대중에게 공감받기 힘든 ‘특성’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결점’도, 매력적인 서사가 붙는다면 충분히 그 결점이 장점으로 승화되거나 묻힐 수도 있다.
붕괴3rd의 메인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 수록, 그녀들을 둘러싼 외부의 상황은 그녀들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들고 다가갈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메이와 키아나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기 때문에 서로의 결정을 막아야만 했던’ 갈등을 낳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붕괴 3rd의 ‘왕도적 서사’는 라이덴 메이가 어떻게 그녀가 안고 있던 ‘고통’이 주변 인물(키아나, 브로냐, 엘리시아 등)과의 관계를 통해 한꺼풀씩 벗겨져나가며, 종국에는 그녀가 각성에 이르게 되는지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녀의 이러한 ‘각성’과 ‘갈등’의 서사는 붕괴 3rd의 신규 캐릭터 업데이트(라이덴 메이:뇌전의 율자)와 단편 애니메이션(죄인의 만가)로 이어진다.
빌드업의 시작 – 스토리는 캐릭터의 ‘서사’와 함께 간다
메이가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키아나와의 관계가 파국에 치닫게 된 건 자신의 길, 자신의 존재에 대한 번뇌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준 키아나[의 생존]를 위해 기꺼이 메이는 자신이 ‘악역’을 맡기로 결심한다.
‘불을 쫓는 나방’이라는 조직에서 엘리시아를 비롯해 13명의 ‘영웅’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기 스스로 품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의문들은 하나씩 해소되며, 이제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게 된다.
붕괴 3rd의 메인 스토리는 각 캐릭터들이 스스로 품고 있는 고뇌와 번뇌,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과 오해, 나아가 그것들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떤 편에서는 키아나가, 그리고 그 다음은 메이나 브로냐가 자신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적(그리고 스스로)을 상대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마침내 6년의 메인 스토리의 대장정이 ‘1부 최종편’이라는 이름으로 마침표가 찍어졌다.
그리고 그 주역인 키아나 – 메이 – 브로냐라는 3명의 주인공의 서사에서 라이덴 메이라는 존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붕괴 3rd를 플레이한 사람은 ‘라이덴 메이’가 단순히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스스로 고뇌하고 번민하며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성장하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인간]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 나간다.
그 과정은 굉장히 어렵고 힘들다. 그건 게임 캐릭터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소결론 1
붕괴 3rd에서 알 수 있는 호요버스의 캐릭터 판매 전략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용한 스타 시스템
- 어쩌면 결점이 될 수 있는 ‘GL’이라는 캐릭터의 오리지날리티 부여
- 메인 스토리 진행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캐릭터의 내러티브
원신: 라이덴 쇼군과 영원에의 찬미
모노노아와레의 캐릭터 PV 서사 마케팅
지금은 다소 익숙한 광경이지만, 원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PV’ 마케팅은 당시 굉장히 신선했다.
이미 붕괴 3rd에서부터 ‘고퀄리티 캐릭터 PV’의 저력을 증명한 호요버스는 원신에서도 적극적으로 캐릭터 PV를 제작했다.
대부분의 게임이 캐릭터의 성능, 필살기 연출 등 인게임 연출을 캐릭터 PV에 포함시키는 것과 달리, 호요버스의 캐릭터 PV는 캐릭터 그 본연의 서사에 집중한다.
원신에 대해 잘 몰라도 원신 캐릭터는 알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 바로 호요버스 IP의 저력이다.
‘영원’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이나즈마’라는 대륙의 모티프 국가에 해당하는 ‘일본’의 미적 정서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에는 모노노아와레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애수, 비애’라고 번역되는 이 표현은, 우리나라가 ‘한(恨)’의 정서를 가진 것처럼 일본의 중세시대(8세기~12세기;헤이안 시대)부터 내려져 온 일본인들의 내적 정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 말은 곧, 벚꽃도 그 만개한 아름다움이 결국 한때에 불과하여 빠르게 시들게 되는 것처럼, 이 세상만물 영원불멸이란 없고 결국 소멸의 운명을 맞이한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일심정토(一心淨土)’를 이뤄, 항구적인 불변과 영원을 이루려는 라이덴 쇼군의 ‘의지’는 어쩌면, 사물의 유한성의 비애를 노래하는 모노노아와레를 영원에 대한 찬미로 승화시키고자하는 일본인들의 내적 정서와 깊은 연관성을 이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의지’를 ‘내러티브 디자인’에 반영하는 원신
그러한 라이덴 쇼군의 ‘영원에의 추구’는 영원성을 위협할지도 모를 온갖 요인을 ‘차단’하는 쪽으로 발현된다.
‘쇄국정책’과 ‘안수령’은 라이덴 쇼군이 어떻게 이 세상을 인식하고 있으며 빌런으로서 여행자의 앞길을 막게 될 지 드러내는 대표적인 설정적 장치다.
‘쇄국정책’ 때문에 여행자는 이나즈마 본섬에 가기도 전에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그동안 ‘몬드’나 ‘리월’에서 자유롭게 마을을 오가던 것이 ‘통행의 제한’이 걸리게 된 것.
이 과정에서 여행자(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이나즈마의 통치자, 라이덴 쇼군이 ‘폭군’이며 ‘폭정’을 일삼고 있다는 것을 게임 시스템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안수령’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의 눈 압류’ 또한 라이덴 쇼군의 빌런 서사를 빌드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여행자(플레이어)는 이나즈마를 이끄는 세 가문(삼봉행) 중 하나인 ‘카미사토’ 가문의 조력자, 토마와 친분을 쌓는다.
그동안 길안내를 해주는 등 여러모로 자주 얼굴을 마주쳐왔던 토마는, 라이덴 쇼군의 100번째 안수령 대상자로 선정되며 체포되게 된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도와준 토마를 구하기 위해, ‘안수령’이나 ‘쇄국정책’ 등으로 폭정을 행하는 라이덴 쇼군을 대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이덴 쇼군의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 여행자는 목숨만 부지한 채 간신히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된다.
앞서 게임 내 스토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플레이어가 라이덴 쇼군을 뽑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탄탄한 서사 빌드업으로부터 연결되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1일. 원신의 2.1버전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다.
이때 업데이트된 스토리는 바로 ‘마신 임무(메인 스토리)’ 제2장 3막, 천수백안의 세상. 그리고 픽업 캐릭터로 ‘라이덴 쇼군’이 출격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서사(스토리텔링)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 호기심과 매력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빌드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라이덴 쇼군 출시 직후 매출 그래프가 이를 증명한다.
오픈 후 매출지표를 요동치게 만든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오픈빨 푸시를 받은 ‘클레’나, 뒤늦게 성능이 증명된 ‘벤티’를 제외하고도, 라이덴 쇼군의 매출은 전고점을 돌파하고 최고의 매출 지표를 경신하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수 차례 라이덴 쇼군이 기록한 매출을 갱신하는 캐릭터는 나오게 되지만, 위 그래프만으로도 라이덴 쇼군의 빌드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그래프가 직접 보여주고 있다.
빌드업을 종결짓는 최종 보스의 서사
라이덴 쇼군 픽업이 있었던 2021년 9월 이후, 약 6개월만에 2.5 22년 3월 업데이트에서 라이덴 쇼군의 복각이 결정됐다.
어쩌면 수십 명의 캐릭터 중에서 유독 매출이 잘 나온 ‘라이덴’의 복각.
1년도 채 되지 않은 픽업 캐릭터가 복각된다는 점에서 다소 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아무런 맥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이번 2.5 업데이트에서 라이덴 쇼군의 ‘전설 임무’가 추가되는 시점이자, 이나즈마의 새로운 보스 마가츠 미타케 나루카미노 미코토가 추가되기 때문이었다.
원신에서 말하는 ‘전설 임무’란, ‘마신 임무’라고 불리는 사실상 메인 스토리 다음가는 중요도를 지닌 ‘캐릭터 스토리’를 말한다.
라이덴 쇼군의 전설 임무를 진행하며 메인 스토리에서 엿볼 수 없었던 그녀의 내면의 갈등과, 그녀가 진정 마주해야하는 적을 다시 한번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우인단 집행관 서열 8위, ‘시뇨라’를 단칼에 베어버린 라이덴 쇼군의 위풍당당한 위용을 이제 본격적으로 직접 ‘공략’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된 것이다.
라이덴 쇼군의 압도적인 강함을 내러티브에서 느끼게 된 플레이어는 라이덴 쇼군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이래도 안뽑아?’라고 목에 칼을 들이대는 수준의 라이덴 쇼군에의 푸시와 매력 앞에서, 결국 원신의 매출은 전고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이나즈마 스토리의 완성도와 완결성은 둘째치고, ‘라이덴 쇼군’ 개인의 매출에만 집중하자면, 이번 업데이트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복각 매출이 픽업 매출을 뛰어넘는 ‘진풍경’이 벌어지면서 라이덴 쇼군이 그야말로 흥행의 보증수표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소결론 2
원신에서 알 수 있는 호요버스의 캐릭터 판매 전략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캐릭터성의 이해를 돕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PV 제작
- 게임 시스템과 내러티브의 연결 – ‘안수령’과 ‘쇄국정책’으로 빌런 서사의 강화
- 최종보스 서사의 완결과 ‘픽업 캐릭터’ 복각 시점을 맞춰 캐릭터 매출 극대화
[막간] ‘붕괴학원 2’의 라이덴 메이
흑발흑안에 보라색 리본을 단, 검을 든 소녀의 등장. 그리고 그 이후.
미호요에서 2014년 출시한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 ‘붕괴학원 2’에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라이덴 메이’가 등장한다.
이 캐릭터는 앞서 소개한 ‘붕괴 3rd’의 ‘라이덴 메이’와 동일한 인물일까, 아니면 이름만 같은 별개의 퍼스널리티일까.
필자는 아쉽게도 ‘붕괴학원 2’를 해보지 못해서 그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다.
미호요 개발자들은 ‘붕괴학원 2’, ‘붕괴 3rd’, ‘원신’, 그리고 ‘붕괴: 스타레일’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미호요의 모든 ‘남성향 작품’에 라이덴 메이를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이것이야말로 게임 개발자가 하나의 캐릭터를 향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애정’이자 ‘사랑’의 증거가 아닐까.
그 어떠한 백 마디 사랑의 표현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들[덕후]의 로맨스는, 스타레일의 아케론을 넘어서 또 다른 호요버스의 IP 작품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젠레스 존 제로(Z.Z.Z.)에서는 과연…?
스타레일: 환락의 도시 페나코니와 미혹의 여인 ‘아케론’
‘수상쩍은 모습의 아케론’으로 수렴하는 PV와 내러티브
이제 2022년에서 시간을 돌려 현 시점인 2024년, 시점은 다시 스타레일로 돌아오도록 하자.
2024년 2월 6일, 스타레일에서는 2.0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행성 ‘페나코니’를 선보였다.
1920년 초중반 미국의 ‘광란의 20년대’를 상징하는 이곳은 그 유명한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온 것만 같은 화려한 마천루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풍자적으로 은유하는 이곳에서, 수많은 캐릭터[인물]들의 운명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네 명 있다.
바로 스타피스 컴퍼니의 미친 도박사 ‘어벤츄린’, 환락의 트릭스터 ‘스파클’, 사실상 개척자의 정실의 포지션을 꿰찬 ‘반디(파이어플라이)’,
그리고 이번 글의 주인공인 ‘아케론’이다.
성우 네타와 ‘J-Culture’를 계승한 ‘라이덴’ ‘메이’의 등장
아케론이 앞서 소개한 ‘붕괴 3rd’의 라이덴 메이, 그리고 ‘원신’의 ‘라이덴 쇼군’의 스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세 번째 캐릭터라는 점은 모두가 이견이 없을 것이다.
‘라이덴 쇼군’과 동일한 성우인 것부터 성우 네타(성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캐릭터가 곧 성우를 결정짓는 서브컬처적 밈)로 화제몰이를 하기에 충분했다.
전형적인 ‘일본녀’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외양과 컨셉은 붕괴 3rd의 ‘현모양처상’을 지닌 라이덴 메이나 원신의 이나즈마라는 ‘일본을 대체한 도시’를 통치하는 어떤 신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닮았다.
물론 아케론의 외양이 그동안 붕괴 3rd와 원신의 또다른 ‘라이덴’이나 ‘메이’들과 비교해서 완전히 닮아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케론의 외양에서 느껴지는 스타레일의 ‘서벌’과도 같은 자유로운 복장, 그리고 원신의 ‘야에 미코’와 어울릴 것 같은 오이란들을 암시하는 붉은 양산은 호요버스의 스타 시스템이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스타 시스템은 오로지 하나의 ‘퍼스널리티’로부터 캐릭터를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상과 그 게임의 세계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스타 시스템을 차용한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가 흥행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케론은 대체 무엇 때문에 스타레일 ‘최고의 매출’에 기여한 ‘떠오르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케론의 비밀’로 수렴하는 메인 스토리와 PV 내러티브
‘환락의 도시’ 페나코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개척자(플레이어)가 페나코니로 워프하며 처음 맞이하는 광경은 오히려 ‘비어있음’에 가까운 상태이다.
푸른 어둠이 깔린 몽롱한 풍경과 미혹의 안개 속에서, 개척자는 한 명의 신비로운 여인을 맞이한다.
아직 날 기억해?
아케론이 개척자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
아케론의 첫 등장은 그야말로 ‘수수께끼’다.
심지어 아케론의 대사 중에는 ‘빨간 색 글씨’로 표현되는 텍스트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비주얼 노벨에서도 거의 시도되지 않은 낯선 방식의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어떤 개척자는 아케론의 이 ‘붉은 대사’가 아무렇게나 들어간 텍스트가 아니라 개발자가 어떤 의도로 출력시키는 텍스트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존재부터 화법까지 모두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는 이 아케론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그녀에 대한 의문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페나코니의 광란의 밤은 화려하게 밤하늘을 비추며 개척자를 환락의 세계로 안내한다.
아케론이라는 신비스러운 인물의 존재감은 이어지는 반디와 블랙 스완, 스파클 등의 개성 넘치는 인물의 등장으로 잠깐 동안은 잊게 되지만 ‘아케론 마케팅’은 이미 시작된 뒤였다.
24년 3월 19일. 2.1버전 업데이트를 약 1주일 앞둔 시점.
스타레일 공식 유튜브에서는 아케론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 영겁의 춤’이라는 영상을 선보였다.
아마 개척자가 페나코니에 오기 전, ‘블랙 스완’과 아케론의 만남과 춤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은 아케론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약육강식과 먹이사슬의 메타포를 ‘광적으로’ 묘사했다.
이 아름다운 광기와 긴장감 넘치는 살육의 카니발에서, 영상 초반에서 내내 여유로웠던 블랙 스완은 아케론이라는 존재에 그야말로 잠식된다.
그 사냥과 ‘섭취’의 순간이 끝날 때까지 흑백과 빨강의 대조되는 색채의 영상에서 우리는 눈을 뗄 수 없다.
붕괴 3rd와 원신에서 이미 증명한 캐릭터 PV의 강렬한 인상이, 여기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PV를 통해 마침내 아케론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감추고 있던 어떠한 미혹의 조각들이 조금씩 해방되기 시작한다.
아케론에 대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영겁의 춤’의 뜨거운 반응이 미처 식기도 전인 3월 22일.
스타레일에서는 캐릭터 서사를 풀어주는 일명 ‘별무리 기행 PV’에서 다시 한번 아케론의 영상을 선보였다.
타카마가하라는 아득하네. 마치 이즈모처럼. 그곳은 원래 모든 것이 조화로운 극락정토. 하늘과 땅이 변하고, 검은 태양이 일으킨 조수는 마치 밀어닥치는 신들처럼 거세구나. 팔백만 재앙신이 나타나 무자비한 도륙을 행하다가, 도리어 무상의 권능을 빼앗길 것이라 어찌 예측했겠는가?
별무리 기행 PV: 「허담•단칼에 끊어낸 부세」 中
4분에 달하는 긴 영상의 길이 중에서 유독 신경쓰이는 표현이 있다. 바로 ‘극락정토’다.
앞서 원신에서 소개한 아공간의 이름을 일심정토라고 한 바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극락정토’라는 표현 또한 원신의 라이덴 쇼군과의 연결고리처럼 느껴지는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읽힌다.
또한 ‘팔백만 재앙신이 나타나 무자비한 도륙을 행한다’라는 표현과, ‘도리어 권능을 빼앗긴다’라는 내용은 붕괴 3rd의 세계관적 배경과 유사점하게 볼 만한 부분이 많다.
스타레일에서 다른 호요버스 IP의 설정적 맥락으로 읽힐만한 요소들이 있는 것들이 단순히 우연에 불과한 일일까?
뫼비우스의 띠[우로보로스의 뱀]처럼 맞물리는 미호요 유니버스의 설정들
널 보니까 옛 친구가 떠올라.
희미한 기억 속, 그녀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어…
마치 이 기묘하고도 화려한 꿈세계처럼, 코앞에 있는데도 닿을 수 없지.
아케론, 개척 임무 제3장 제1막 ‘음향과 분노’ 중에서…
우리 덕후들은 또 다른 어떤 세계에서는 지휘관이자, 선생님이자, 용사이자, 세계를 구하는 구원자이기도 하다.
붕괴: 스타레일의 개척자(플레이어)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붕괴3rd’의 함장님이었거나, ‘원신’에서의 ‘여행자’였을 것이다.
아케론의 위 대사는 마치 아케론이 눈 앞에 있는 개척자가 아니라 제4의 벽을 넘어서서 플레이어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 같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그런 ‘메타발언’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위 발언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붕괴 3rd’의 함장이었던 나는 ‘라이덴 메이’가 키아나와 브로냐와 같은 소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장에서 싸운 장면에 함께한다. 아니, 어쩌면 직접 싸우는 대신에 옆에서 목격하거나 지휘하였을 수도 있다. 아케론은 개척자(플레이어)를 보고 어떠한 기시감(데자뷰)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케론은 ‘원신’의 여행자였던 내가 ‘라이덴 쇼군’의 친구로서, 나루카미 다이샤 밑 동굴와 이어지는 ‘마코토의 의식 공간’에서 ‘에이(影)[라이덴 쇼군의 본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라이덴 쇼군[에이가 만들어낸 또다른 자아]를 마주하고 있었던 장면을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아케론은 플레이어가 활약할 미래의 어떤 세계에서의 경험을 두고 현재의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한히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붕괴 3rd와 원신, 스타레일의 세계관 설정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소결론 3
스타레일에서 알 수 있는 호요버스의 캐릭터 판매 전략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다른 미호요 유니버스 IP의 세계관과 설정, 서사가 스타레일의 세계관과 설정, 서사를 강화시키는 것.
- 다른 미호요 유니버스 IP와 그것을 즐기는 플레이어를 진심으로 오마쥬하고 존경하며 존중하는 것.
결론: 호요버스가 파는 것[상품]의 정체
우리가 구매하는 건 ‘성능’인가, ‘캐릭터[서사]’인가, 아니면 양쪽 ‘다’인가
지금까지 줄곧 빼놓고 이야기를 한 것이 있다. 바로 ‘성능’이다.
아무리 훌륭한 서사를 가진 캐릭터라고 해도 형편없는 성능으로 출시되었다면 이만큼 주목받는 매출을 낼 수 있었을까라는 예상되는 반론에, 필자는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없다.
결국 캐릭터[상품]를 소유하게 되는 건 그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 “성능” – 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붕괴 3rd의 라이덴 메이를 비롯해, 원신의 라이덴 쇼군과 스타레일의 아케론 모두, 웬만한 성능캐 저리가라 할 필수 보유 캐릭터에 포함될 정도로 훌륭한 성능을 자랑한다.
앞서 구구절절 ‘서사 빌드업의 중요성’을 논해봤자, 인게임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성능으로 출시된다면 의미가 없다.
‘설정 기획자’와 ‘전투 기획자’, 그리고 멋진 아트를 만들어주시는 ‘캐릭터 원화가’, ‘캐릭터 모델러’, ‘이펙터’ 등등 모든 개발자의 사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의 작품[마스터피스]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훌륭한 성능을 보유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인기 캐릭터와 견줄 때 충분히 압도할 만한 성능을 가졌다면, 비인기 캐릭터도 얼마든지 훌륭한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묻고싶다.
과연 그 캐릭터가 ‘지속가능하면서도 다양한 작품에서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미래의 매출을 견인할 수 있을까?’
붕괴 3rd의 라이덴 메이를 사랑하던 내가 망설임 없이 ‘라이덴 쇼군’을 뽑고, 이어서 스타레일의 ‘아케론’에 아낌없이 재화를 퍼부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매력적인 외양과 그 캐릭터의 성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라이덴 쇼군과 아케론의 경우 성능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미리 파악하지 않은 채 그저 캐릭터가 ‘좋아서’ 뽑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캐릭터를 획득하자마자 필자의 ‘소유욕’은 해소되었다.
물론 필자처럼 그저 캐릭터가 좋아서 획득하고 싶은 경우는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하고, ‘성능’ 때문에 아케론을 소유하고자하는 다른 플레이어의 수가 훨씬 많을수도 있다.
솔직히, 필자는 어느쪽이 다수이고 소수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브컬처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리고 캐릭터라는 이름의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왜’ 기꺼이 그 캐릭터를 소유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지 알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아케론의 매출 고공 행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는 붕괴 3rd부터 쌓여온 빌드업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고,그 속에 담긴 호요버스 개발자들의 캐릭터 ‘사랑’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개발자가 먼저 그들[캐릭터]을 사랑하면, 그들[고객] 또한 우리의 아들딸[캐릭터]들을 사랑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리니지라이크를 만들며 쉽고 편하며 이미 누군가가 증명한 길을 걷고자함이 아니라 고되고 어려우며 항상 도전에 부딪히지만 서브컬처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로 살아가기로 삶을 택한 이유일 것이다.
최소한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고, 앞으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와 세계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줄 수도 있기에.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