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요즘 업계 분위기가 묘하다.
게임 개발자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결국 화제는 AI 얘기로 연결된다. “일자리가 줄어들까 걱정된다”는 사람마저도 최소한의 LLM 정도는 사용하고 있었다. Claude Code나 Cursor처럼 본격적으로 실무에 AI를 활용하는 개발자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GDC 2026(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게임 업계 최대 행사)에서 그 온도 차이가 숫자로 딱 드러났다.
AI NPC 시연 영상은 관중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개발자의 절반 이상은 “생성형 AI가 싫다”고 답했다.
이번 주 위클리는 게임 개발자가 AI 기술을 바라보는 그 간극에서 시작한다.
유비소프트의 NEO NPC
스스로 대화 스크립트를 생성하는 AI NPC의 등장

GDC 2026에서 유비소프트(Ubisoft)가 공개한 NEO NPC 시연은 꽤 충격적이었다.
Snowdrop 엔진 상 실시간으로 구동되는 AI NPC가, 한 번도 사전에 입력된 적 없는 플레이어의 질문에 자신의 성격에 맞게 즉흥으로 답변했다. 라이터가 사전에 짜둔 대사가 아니었다. 미리 정해진 분기도 없었다.
구조를 뜯어보면 이렇다. NEO NPC는 Inworld의 LLM과 NVIDIA Audio2Face를 묶어, 플레이어 음성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얼굴 애니메이션까지 붙이는 파이프라인으로 설계되었다. 컨셉 기획자(작가)는 캐릭터의 배경 스토리, 성격, 대화 스타일을 먼저 설계해 모델에 주입했다. 흥미로운 건, 이 NPC가 이전 대화에서 플레이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나중에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점이다. NPC의 대사는 라이터가 미리 조건에 맞게 작성해둔 언어가 아니었다. 작가가 미리 입력한 ‘캐릭터성’에 기반해, AI가 플레이어의 발화에 맞게 실시간으로 스크립트를 생성하는 구조에 가깝다.
개발자의 절반 이상이 생성형 AI가 해롭다는 의견
이처럼 업계에서는 AI를 이용한 놀라운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같은 주에 발표된 설문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약 2,300명을 대상으로 한 GDC ‘State of the Game Industry’ 설문에서, 게임 개발자의 52%가 생성형 AI가 업계에 해롭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1년 전 30%, 2년 전 18%에서 가파르게 오른 수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거부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숫자 안에 있다. 응답자의 36%는 이미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고 있으면서도, 업계 전체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게 해롭다고 느끼고 있었다. 쓰면서도 찜찜한 것이다. 직군별로 보면 온도차가 더 뚜렷하다. 비주얼 아트 계열에서는 약 64%, 게임 디자인·내러티브 직군에서는 63%가 부정적으로 응답해, 콘텐츠 제작 쪽에서 거부감이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기술은 됐다. 문제는 신뢰다.
내러티브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 데모에서 더 눈길이 간 부분은 따로 있었다. 유비소프트 내러티브 팀은 NEO NPC 프로젝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캐릭터의 희노애락을 씬과 대사로 풀어냈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모델이 흉내 내도록 학습시키는 과정에 있다.” 내러티브 디자인의 무게중심이, 캐릭터의 배경·성격·말투를 텍스트로 정의하고 그걸 모델에 ‘주입(nurture)’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사를 쓰는 일에서,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더 엄밀하게 정의하는 일로. 방향은 이미 바뀌고 있다.
인사이트: AI 학습을 염두에 두고 기획서 써보기
캐릭터 시트를 만들 때, AI 학습을 염두에 두고 구조화해보자. 캐릭터의 성격, 말투, 가치관, 과거 경험, 타 캐릭터와의 관계 지도 등을 미리 텍스트로 정리해두면, 지금은 기획서로 사용하더라도 나중에는 AI 모델에 입력할 초안으로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내가 너무 도와줬나?” 스스로 판단하고 침묵하는 AI 디렉터
AI를 이용한 유동적 난이도 조절 기술의 등장
게임에서 ‘난이도’란 무엇인가. 적이 더 강해지는 것? 타이밍이 더 빡빡해지는 것?
난이도를 어떻게 정의하든,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하는 건 플레이어를 단순히 괴롭게 하려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플레이어의 재미와 몰입을 꾸준히 유지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미학에 해당한다.
그런데 난이도에 관한 색다른 접근법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Left 4 Dead의 AI 디렉터는 좀비 스폰 위치와 전투 강도를 플레이어의 현재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Alien: Isolation의 AI는 플레이어의 이동 패턴을 학습해 추적 방식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 이 계보의 다음 단계가 논의되고 있다. 힌트 개입 자체를 AI가 알아서 조정하는 구조다.
개념은 이렇다. 어떤 게임을 설계한다고 가정해보자. AI 디렉터가 플레이어를 지나치게 돕고 있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개입을 철회한다. 힌트를 제공한 직후에도 “이건 내가 너무 나섰다”고 판단하면 지원을 멈춰버린다. 기획 철학은 명확하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라야 클리어의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GDC 설문에 따르면, player-facing 기능 — 난이도 조절, NPC 대화 등 플레이어와 직접 맞닿는 AI 기능 — 에 생성형 AI를 쓰는 비율은 전체의 5% 수준에 머문다. 다른 생성형 AI 활용 대비 실험 단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향 자체는 이미 업계 담론 안에 있다.
필드 위 플레이어 경험을 설계하는 기획자라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한 번쯤 던져봤을 것이다. “힌트를 얼마나 줘야 하지? 너무 많으면 게임이 루즈해지고, 너무 없으면 높은 난이도 앞에서 좌절한 플레이어가 이탈하는데.” AI를 통한 유기적인 난이도 조절 여부와 무관하게, 이 판단 기준은 지금 당장 문서로 정의할 수 있다.
인사이트: 좌절 구간을 미리 정의해볼 것
작업했던 퀘스트 하나를 골라서, “플레이어가 막히는 포인트가 어디인가?”를 먼저 특정해보자. 그리고 그 포인트마다 개입 조건 → 개입 방식 → 개입 강도를 한 줄씩 정리해보자. 예를 들어 “같은 구간에서 3회 이상 실패 시 NPC가 짧은 힌트 제공 / 5회 이상이면 경로를 시각적으로 표시”처럼. AI가 없어도, 이 기준을 문서에 명시해두는 것만으로 퀘스트의 완성도 자체가 달라진다.
플레이어 맞춤형으로 전개되는 경험 설계
GDC 2026의 화두: 적응형 경험
조금 큰 그림 얘기를 해보자.
올해 GDC와 업계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적응형 경험(adaptive experience)이다. (링크)
쉽게 말하면 이렇다. 같은 게임을 두 명이 플레이해도, 그 경험이 달라진다.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에게는 전투 중심의 이벤트가, 탐색과 대화를 즐기는 유저에게는 NPC와의 분기가 더 풍성해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자.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GDC 설문에 따르면, player-facing 기능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개발사는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다수는 리서치·브레인스토밍(81%), 이메일·코드 같은 일상 업무 보조(47%), 에셋 생성(19%) 순으로 사용하고 있다. ‘적응형 경험’은 AAA 스튜디오에서도 실험 단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두는 이미 떠올랐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처럼 누구에게나 동일한 서사와 전투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과, 플레이 성향에 맞춰 경험이 조정되는 방식. 이 두 축이 앞으로 공존하며 긴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기획자가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건 그리 거창하지 않다. 퀘스트나 시나리오를 설계할 때, “이 플레이어는 어떤 행동 패턴을 가진 사람인가?”를 하나의 기획 변수로 넣어보는 것이다.
인사이트: 플레이어 성향 변수 기입하기
퀘스트를 설계할 때, 플레이어 유형을 2~3가지로 나눠보자. 전투형, 탐색형, 대화형처럼. 각 유형에 맞는 보상 경로가 하나씩이라도 있는지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 성향에 따른 분기점이 만들어진다. AI를 따로 쓰지 않더라도, 분기 설계 자체가 더 촘촘해진다.
글을 마치며
AI는 이미 게임 개발 현장 안에 들어와 있다. 개발자 절반 이상이 생성형 AI에 반대 의견을 밝혔고, 그 수치도 매년 증가하고 있음에도, 기술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기획자로서 지금 해야 할 일은 툴을 무조건 배우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쓰는 기획 문서와 설계 방식 안에서, AI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자리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다. AI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획서는 더 정교해질 것이고, AI가 본격화되는 시대가 오면 남들보다 더 빠르게 앞서나갈 수 있다.
당신의 기획서에는 그 자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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