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게이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게임 연출가가 「미장센」을 공부해야하는 까닭ㆍ영화 연출 기법 시리즈 #1

‘미장센’이라는 용어

미장센이 가장 훌륭한 작품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작품 – 공각기동대(1995)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프랑스어 표현 중에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세럼이나 헤어 오일 등 뷰티 관련 제품을 파는 브랜드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성분들은 특히 잘 아실 듯하다.)

그런데 ‘영화’나 ‘연출’ 쪽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미장센이라는 용어가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만큼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중의 기본’과도 같은 용어다.

드라마 스테이지
필자는 드라마(drama)라는 말을 ‘극’과 동일시한다.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와는 상관 없다.

미장센을 모르고도 영화를 감상하거나 영화 해석에 아무런 지장은 없다.

미장센을 알고 보게 되면 영화나 기타 극(drama)으로부터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어, 사람에 따라서는 더욱 깊고 풍성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낯선 프랑스어가 대체 어떤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길래, 굳이 우리가 이 생소한 용어를 알아야하는 걸까?

미장센이라는 용어를 정의하자면 아래와 같다.

미장센

사전적 정의: Mise-en-Scène;Putting on Stage;무대 배치

의미 1. 장면의 의미를 이루게 하는 사물의 총체

의미 2. 이미지 안에 녹아들어 있는, ‘아티스트’가 의도한 표현적 내용의 총체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미장센은 ‘무대 배치’라는 뜻이다.

무대 배치는 말 그대로 무대(stage)에 어떤 존재(things)를 배치한다는 의미이다.

미장센_조커_2
이어지는 두 컷에서 감독의 ‘다분히 의도적인’ 미장센을 엿볼 수 있다. – 조커(2019)
미장센_조커_1

가령 사물의 배치는 A – B – C라는 순서대로 배치했을 때와 C – B – A 라는 순서대로 배치했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감독 입장에서) 무대(stage)에 배치할 수 있는 건 배우와 사물, 그밖에도 조명이라든지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

극(drama)의 진행에 있어, 무대 배치는 극중 인물들이나 사건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상수’와 ‘변수’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무대의 바닥은 상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무대의 조명은 변수다. 어떠한 분위기를 낼 때, 장면 전환을 암시할 때 암전하기 위해서는 조명은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재료다.

연출가는(또는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기 전달하기 위한 미장센의 재료들(‘상수’와 ‘변수’)를 고민하게 된다.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부터 미장센의 해석은 관람가의 몫이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품은 연속된 미장센으로터 해석되며,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관객들은 감독의 미장센을 가슴 속으로 이해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관람객들은 영화나 공연의 완성도를 ‘미장센’을 기준으로 판가름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장센이라는 용어를 몰라도 감상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잘 만들었다’거나 ‘별로다’라는 감상을 남길 뿐이다. 하지만 사실 그 속뜻에는 감독의 미장센이 얼마나 잘 배치되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느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

미장센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 작품이 과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명제는 마치 “철근 빠진 건물이 과연 지진을 견딜 수 있을까?” 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하다.

영화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

게임 연출은 영화나 공연,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와 같은 대중적인 극(drama)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상호작용성(interactive) 이야기기법(storytelling)의 결합.

즉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다.

글자를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게임에서의 상호작용성(interactive)이란, 게임은 단순히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play)를 하여 게임 속 환경변수를 조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 ‘오펜하이머 인용’

가령, 심시티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도시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만보는 게 아니라, 게임에서 ‘시장’이라는 역할(role)을 맡아서 도시가 잘 운영(simulation)되도록 직접 가꾸어나간다.(playing)

만약 심시티라는 게임이 동일한 이름의 영화로 나왔더라면 3막구조나 기승전결이 준비된 어떠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야기기법(storytelling)이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바로 인물 간의 대화나 독백, 텍스트를 이용한 직접적인 소통이다.

이 ‘1차원적인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스토리텔러의 몫이다.

예를 들어, ‘감사합니다.’라는 하나의 대사를 두고도, 효과음을 어떻게 붙일지, 색깔이나 폰트는 어떻게 할지, 대사 출력 타이밍을 ‘감사/합니다’로 끊든지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낼지 등등 온갖 연출 방법이 존재한다.

영화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영화는 도중에 영화의 폰트 크기가 작아지거나 폰트가 색깔이나 크기가 바뀌지 않는다.

아마 실험영화는 그런 시도도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만약 그런 영화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공포영화’ 정도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조차도 필자가 이야기한 ‘상호작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어릴 적부터 게임을 플레이해온 게이머들은 누군가에게 배울 필요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만 있으면 그 게임의 룰을 금세 습득할 수 있다.

가령, 게이머(플레이어)는 자신의 아바타를 조작하거나 마우스를 사용해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의도를 지시(command)하게 된다.

매 순간의 지시는 플레이어의 의지를 반영한다.

가장 간단한 조작(공격을 위한 z 버튼)부터, 선택지 A, B 중에 꽤 고민되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도 모두 플레이어의 몫이다.

‘고민되는 선택’이란, 가령 이런 예를 들 수 있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장면을 한번 살펴보자.

영화 매트릭스(1999) 中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건네며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할 때, 영화는 오직 한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실제로 시청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주인공은 어느 한쪽의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만약 게임이었다면 두 가지 다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게임 연출가가 의도하기만 한다면 제3, 제4의 선택지도 존재할 수도 있다.

선택지가 많다고 무조건 유의미하고 선진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다변수서사’는 게임 이전의 매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방식이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기존의 작가들은 선택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세이브’나 ‘로드’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특정 트리거를 발동시킨 뒤에 이전과 전혀 다른 플레이를 하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울프릭 스톰클락과의 교감 때문에 스톰클락군에 섰다가, 울프릭이 위처럼 ‘거만하게 변해버린’ 장면을 보고 제국군 진영을 다시 선택해서 울프릭을 처단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도 게임만이 가진 묘미가 아닐까? – 스카이림

게임은 그 자체로 ‘다중우주’적이다. 내가 택한 어떤 선택은 무수히 많은 결과의 갈래로 나뉘나 결국 하나의 결과(어떠한 엔딩)로 수렴된다.

마치, 양자역학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세이브’나 ‘로드’ 버튼이 가진 다중우주(multi-universe)이자 서브텍스트적 세계관은, 그 자체가 가진 철학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기성 작가들로부터는 고민된 적이 없었을 정도로 괴리감이 큰 존재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이야기란 당연히 ‘일방향’으로 진행될 테니까.

그저 작가는 쓸 뿐이고, 독자(시청자)는 읽고 해석할 뿐이었으니까.

미장센이 게임과 만나는 순간

퀀틱 드림 3부작 – 헤비 레인, 비욘드 투 소울즈,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프랑스의 게임 개발사, ‘퀀틱 드림’은 영화같은 게임, 게임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임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퀀틱 드림’ 3부작은 말 그대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그 자체다.

스토리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은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플레이해보았을 위의 게임들은 게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영화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매 순간 매 컷이 마치 영화와도 같은 ‘컷신’으로 이루어져있다.

영화와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면, 매 순간순간 나는 선택을 하고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무의미한 선택지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인물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 인물이 화면에 놓인 장면, 즉 무대 배치(미장센)는 게임 연출가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게임 연출은 영화 연출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영화 연출이 가진 ‘체계성’이 접목되는 순간 훨씬 품격이 높아진다.

위 이미지상 가운데의 인물, ‘코너’가 두 클로즈업 된 인물 사이에 어색하게 서 있는 장면을 보라.

코너는 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전문가이지만 현장에 있는 인물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위 한 장의 컷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만약 위 장면을 대사로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글로써 위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읽은 독자는 위 장면만을 보고 상상한 것보다 ‘코너’라는 인물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장면을 떠올리기도, 그리고 위 장면으로부터 전해지는 그 어색한 ‘감성’까지 느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독자에게 필요한 건 머리속에 그려지는 한 장의 이미지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은 ‘대사’ 한 줄 없이 한 장의 이미지로도 강렬한 스토리를 전달한다.

이게 바로 미장센의 힘이다.

모바일 게임에서도 시나리오 연출이 ‘훌륭하다’, ‘감동적이다’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주신 이정희 님.
(링크)

어떤 독자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콘솔 게임이나 PC 게임에서나 위와 같은 ‘미장센’을 챙길 수 있다고.

지금 시대는 ‘모바일게임’의 시대인데, 시대에 부적절한 논의가 아니냐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같은 게임은 오히려 매출 성적이 나빴지 않았느냐고.

그렇다. 게임 산업을 이끌어가는 엔진은 콘솔과 PC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게임업계 구직 사이트 ‘게임잡’에서도 대다수의 게임들이 ‘모바일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인력을 채용하고 있으며, 그나마 PC나 콘솔 게임을 개발하려는 회사는 완전히 ‘대기업’이거나 반대로 스타트업인 경우가 많다.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소’, ‘중견’ 기업은 대다수가 모바일 게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게임 연출 전문가가 필요할까? 더군다나 ‘미장센’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시장의 부정적인 시선을 깬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국내외를 불문하고 서브컬처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 ‘블루 아카이브’다.

‘대책위원회 편’, ‘에덴조약 편’ 등,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유명해진 시나리오의 연출의 미장센은 모두 이 분이 설계하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는가.

블루아카이브 김실장 후기 발표회 영상 이미지

‘중년게이머 김실장’을 비롯해 많은 게임 업계 전문가들과 유튜버들이 블루 아카이브의 성공 공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거나 NDC 강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단연 당해년도의 가장 많은 시청자수를 기록했던 건 바로 블루 아카이브 ‘시나리오’와 그 다음으로 ‘시나리오 연출’이었다.

미장센 대표 표지
마찬가지로 미장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 작품. – 마법사의 밤(2012)

필자는 ‘내러티브 (게임) 디자인’이라는 영역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분야를 ‘공부’가 아니라 ‘연구’를 해야하는 까닭은, 아직 이 분야가 어떠한 체계적으로 잘 닦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점에 가서 ‘내러티브 디자인’이라는 책을 사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편한 길따윈 없다.

그래서 필자가 택한 길은,

  1. 현재 업계 트렌드의 게임들 중 내러티브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게임을 연구한다.
  2. 비주얼 노벨이나 인터랙티브 무비 등, 내러티브 특화 게임의 특징을 연구한다.
  3. 영화 등 다른 업계의 기반 지식을 습득하고 게임에 응용 가능한지 연구한다.

로 요약할 수 있다.

게임 업계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업계의 지식을 흡수하는 것도 이 업계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과거 NDC 2014에서 김용하 PD가 ‘진화심리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모에론’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느꼈던 그 신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필자 또한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또는 누군가가 가다가 포기한 길을 걸어가보고자 한다.

필자가 앞서 헤쳐나간 미개척의 영역을, 나중에 누군가가 뒤따라와 뒤에 누군가가 더 잘 따라올 수 있게 반질반질하게 닦아주기를 바란다.

필자가 ‘내러티브 게임디자인’의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해본 또다른 연구의 흔적.
JUN DONG LI

‘미장센’은 내러티브 디자인이라는 장대한 여정에 이제 막 발을 뗀 히치하이커가 볼 그 첫 번째 이정표에 지나지 않는다.

연관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