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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빼놓고는 『게임 연출』을 말할 수 없다 – 게임 연출 시리즈 1편

누가 뭐래도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캐릭터는 반드시 사람(인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봇이나 동물도 상관 없다. 이 블로그는 서브컬처 게임을 주제로 한 블로기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편의상 ‘모에 캐릭터’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캐릭터의 역할

캐릭터는 이야기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캐릭터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배경화면과 BGM이 있다고 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캐릭터는 이야기의 동적인 흐름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캐릭터가 이동함으로써, 비로소 배경이 바뀔 수 있다. 캐릭터의 감정 변화, 또는 캐릭터가 처한 환경의 변화 등을 통해, BGM이 바뀐다. 이를 그림으로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캐릭터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다가, 다른 연출 요소에도 직,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시나리오 연출에서도 캐릭터성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캐릭터성과 원화

캐릭터는 대표적으로 대사, 행동, 그리고 표정을 통해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난다. 특히 캐릭터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캐릭터의 원화라고 말할 수 있다.

원화(原畵)는 말 그대로 그 캐릭터의 그림이다. 캐릭터의 그림은, 캐릭터 혼자서 서 있는 포트레이트(Portrait)형 그림이나, 특정 맥락이 함께하는 일러스트(illust)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캐릭터성은 캐릭터의 그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활발한 캐릭터는 웃는 표정, 방방 뛰는 액션, 그리고 수다스럽거나 커다란 말풍선(및 글자의 크기) 등을 통해 개성이 드러나고, 침착한 캐릭터는 조금 딱딱한 표정, 정적인 액션, 그리고 조곤조곤한 말투 등으로 서로 구분된다. 이러한 캐릭터 특징은 특히 라이트 노벨 삽화나 만화책에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명일방주

캐릭터 원화는 게임의 전반적인 무드와도 큰 연관성이 있다. 활발한 캐릭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은, UI 컴포넌트 등에서도 밝은 톤의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에 어두운 색감을 채택한 게임의 경우, 마찬가지로 UI나 게임의 분위기도 어둡거나 진지한 편이다.

원화에서 캐릭터성을 구분하는 데 또 다른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 밀도(density)
  • 색감(tone)
  • 자세(pose)
  • 맥락(context)
  • 표정(expression)

캐릭터 원화의 색감, 밀도, 그리고 무드(감정표현)와 자세 등도 캐릭터의 개성을 다양화하는 대표적인 요소로 꼽을 수 있다. 캐릭터성은 여러모로 게임 전반의 느낌을 다르게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게임 개발자는 자신이 개발하는 시스템 또는 콘텐츠를 개발할 때 어떤 캐릭터성을 참고할지, 또는 반대로 캐릭터성을 잘 드러내게 하기 위해 어떤 방향의 개발을 할 지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캐릭터의 표정

캐릭터의 표정은 캐릭터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 연출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캐릭터의 표정에 대한 이해는 그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에서 어떤 연출을 할 수 있을지/없을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블루 아카이브의 세나는 대표적인 무표정 캐릭터 중의 한 명이다. 이 캐릭터는 언제나 무뚝뚝하고 쿨한 이미지를 유지한다. 또한 게임 내에서도 이 캐릭터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메모리얼 로비에서는 아주 잠깐 플레이어(선생님)을 향한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이것은 세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캐릭터성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연출이다.

게임 콘텐츠가 캐릭터에 의해 제약이 발생하는 경우

캐릭터는 보통 혼자만 등장하지 않고, 최소 두 명 이상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혹시 캐릭터가 혼자만 서 있는게 더 보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인게임에서 생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두 명 이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캐릭터가 혼자만 등장한다는 것은 캐릭터도 독백이나 속마음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릭터 혼자서 끊임 없이 떠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몇 명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은, 연출을 제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 혼자만 남아 있는 세계라면, 최소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해야 하는 연애의 이야기나, 세 명 이상이 등장하는 삼각관계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다. 즉, 캐릭터의 수는 연출을 제한할 수 있다.

‘학원 X 청춘 X 미소녀’를 표방하는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에는 ‘인연 시나리오’라고 하는 콘텐츠가 존재한다. 이 인연 시나리오는 플레이어의 자아를 나타내는 ‘선생님’이라는 존재와, 그 인연 시나리오의 주인공(히로인)격이 되는 한 명의 미소녀가 주인공이 된다. 간혹 불량배와 같은 조연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선생님과 학생(히로인)의 관계는 때로는 연인과 같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편한 친구와 같은 관계처럼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인연 시나리오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의 ‘갈등’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학생에게 호감을 갖고 있고, 학생 또한 선생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전 맥락(Promised Context)’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인연 시나리오는 선생님과 학생, 즉 두 명만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간의 우호적인 관계 및 상호작용을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사람간의 갈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이것은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신하게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인연 시나리오’ 콘텐츠는 등장인물이 플레이어와 히로인 1명, 즉 두 명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테마가 제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출은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의 테마가 두 사람 간의 ‘연애’나 ‘우정’ 또는 ‘신뢰’와 같은 테마로 제한되는 만큼, 연출 요소도 제한이 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밝은 무드 하에서, 가벼운 느낌으로 진행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연출에서도 심각한 연출을 넣기보다는, 우스꽝스럽거나 화기애애하거나, 또는 감성적인 무드를 넣는 것이 어울리게 된다.

반면에 캐릭터의 수가 아주 많거나,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게임 내 세계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위처럼 인연 시나리오라고 하는 개념의 콘텐츠는 아마 그 게임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 게임 내 캐릭터 중 몇몇이 파벌 또는 정치세력을 형성해 서로 견제하는 등의 콘텐츠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KOEI 사의 대표적인 게임인 삼국지는 수많은 장수 및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경우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캐릭터의 세력(Faction)의 이야기가 더 큰 이야기로써 흘러가게 된다. 다시 말해, 캐릭터의 수가 많아진다면, 그에 맞게 컨텐츠의 방향성도 다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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