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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러너가 보여준 차세대 SF의 존재감

들어가는 글

사이버펑크는 진부하다. (Cyberpunk is a cliché.)

(링크)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이하 엣지러너)는 폴란드의 게임 개발사 ‘CD PROJEKT’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TRIGGER)’가 합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날 애니메이션이다.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용어는 바로 기념비적인 1980년대, 조지 오웰의 ‘1984’가 디스토피아 사회를 예견했던 시기에 탄생했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것처럼 강력한 독재자가 모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공포주의 사회가 도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발달한 과학 기술, 거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 그리고 온 인류가 연결되는 정보화 사회를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린 ‘사이버펑크’는 SF 장르에서 꾸준히 주목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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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를 상징하는 ‘전뇌’는 인간을 스마트폰 등 물리적 디바이스로부터 해방시킨다.

사이버펑크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은 바로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등이 있다.

극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선진화된 문명 사회에서, 끝도 없이 무섭게 하늘로 치솟은 빌딩숲 사이에서 인간은 마침내 완전한 ‘자유’에 다다른다.

섹스, 마약, 폭력, 청부살인 등, 수천 년동안 계승되어 온 온갖 도덕적 사회규범의 틀에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되었다.

일확천금과 출세, 무병장수와 불로불사, 무한한 쾌락과 권위를 위해서라면 이러한 ‘하찮은’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여기에서 해방된 건 비단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의 자유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그동안 인간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영혼이 갇혀있다’고 생각하며 육체와 영혼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어왔지만, 첨단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마침내 그 육신이라는 감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자유마저 낳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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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 블레이드 러너 中

그러나 1980년대 상상했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은 지금 와서는 꽤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준, 2019년에 찾아올 온 하늘을 뒤덮는 검은 스모그 구름 예언은 ‘다행히’ 빗나갔다.

일본이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하고 나아가 아시아가 전세계의 맹호가 될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공포[테크노오리엔탈리즘]심은 버블 경제의 종말과 함께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1980년 사이버펑크가 보여준 비전은, 지금 와서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결론이 났다.

‘이미 그것이 현실이 되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그렇게 될 일이 없거나.’

가령, 당시 사이버펑크가 예견했던 20xx년대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실현되기 요원한 기술이다.

상상해보자. 만약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생겨난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공중에서 충돌하는 자동차들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도 ‘도로’라고 하는 명확한 주행범위가 있음에도 사고가 나는데, 어떠한 물리적 장벽이 없는 공중에서의 운전은 완전한 판타지가 되어버렸다.

한편, 이미 현실이 되어버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기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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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의 한쪽 벽면을 완전히 장식하는 거대한 전광판은 사이버펑크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테헤란로’를 비롯한 서울과 세계 각지에서 이런 광고판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 미국이 극도로 경계했던 일본의 팽창적 성장을 상징하는 ‘오리엔탈리즘’은 마천루 벽면 전체를 장식하는 거대한 AR 전광판으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그 전광판에서 보게 된 건 ‘일본의 화려한 유녀’를 대표하는 일본문화 침략적 아이콘 대신 대신 어떤 한 기업을 대표하는 자본주의적 옥외 전광판으로 대체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로 대표되는 사이버펑크는 더 이상 끝임없이 ‘자가복제’되며 스스로의 틀에 갇힌 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펑크에서 예견한 기술은 현대인들이 보면 대부분 ‘실현되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거나’로 결론이 난다.

엣지러너와 동시대의 미디어믹스이자 CDPR에서 출시한 게임, ‘사이버펑크 2077’ 세계관에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도 우리에게 익숙한 ‘핵폭탄’이지 어떠한 우리의 상상력의 틀을 벗어나는 대단한 무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사이버펑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재미있는 상상력’을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오늘날, 사이버펑크는 진부하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는 죽지 않았다.

2020년 출시된 ‘사이버펑크 2077’은 2024년 초까지 DLC를 포함하여 2,500만 카피가 팔렸다.

도서와 코믹스를 비롯한 출판물도 출시되었으며 이번 글의 주제인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라는 애니메이션까지 미디어믹스가 활발히 전개되는 등, 사이버펑크의 위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숫자로 증명했다.

그렇게 사이버펑크는 2020년대에 가장 핫한 게임(사이버펑크 2077)과 애니메이션(엣지러너)으로 이 시대를 강타했다.

사이버펑크는 진부하다. 그러나 여전히 끝내주게 멋있다.
(Cyberpunk is a classic, but it’s still awesome.)

우리는 사이버펑크를 기다려왔다.

그것은 우리가 2000년대 밀레니엄에 두고 온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디스토피아적 환상의 연상선이며, 로봇공학과 생명공학에 대한 로망이며, 르와르이며, 복고이자,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떤 멋진 무언가다.

우리는 마천루 사이를 질주하며 기업의 끄나풀과 무법자들의 머리를 화끈하게 터트리는 람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키로시 안구로 표적의 네트워크에 침투해, 적의 신경망을 해킹하고 자신의 머리를 터트리는 넷러너가 될 수 있다.

‘산데비스탄’이라는 사이버웨어로 마치 시간을 멈춘 듯 수 밀리초의 시간 동안 빠르게 이동하여 상대가 알아채기도 전에 목을 따 버리는 무시무시한 암살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

사이버펑크는 진부하다. 그러나 여전히 끝내주게 멋있다.

사이버펑크 2077에서 플레이어는 V가 되어 로큰롤 스타 조니 실버핸드와 함께 아라사카를 처부술 수 있다.

엣지러너에서 우리는 데이비드가 엣지러너로 거듭나는 영웅서사를 함께 따라가며 나이트 시티의 로망스에 흠뻑 빠져든다.

그렇게 ‘엣지러너’는 사실상 생명력이 고갈된 사이버펑크를 다시 한번 살려내게 된 것이다.

엣지러너의 작중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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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작중 배경은 ‘나이트 시티’라는 공간이다.

위 배경은 엣지러너와 사이버펑크 2077이 동일하게 공유한다. 즉, 엣지러너에 등장하는 장소는 사이버펑크 2077에서 직접 방문할 수 있다.

이 세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뒤의 미래사회로, 거리에는 끝을 모르고 하늘로 뻗어올라간 마천루가 즐비하고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전면 광고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시 풍경은 현대의 메트로폴리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도시 공간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트 시티의 상부 풍경이 아니라 실제 거리를 보게 되면 사뭇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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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쓰레기’다. 오직 아라사카만을 제외하고.

나이트시티의 거리는 패배한 기회주의자로 가득하다.

마천루에 가려져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우중충한 거리 위에 마약에 쩌든 하류인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회를 노리고 이 거리로 찾아왔지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오르다가 굴러 떨어진 자들의 수심깊은 얼굴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각 거리를 지배하는 무법자 ‘갱단’들, 그리고 이 거리를 지배하는 아라사카와 밀리테크와 같은 거대한 공룡들 사이에서 개개인의 인간의 가치는 길가의 쓰레기만큼 저평가된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낡은 신체를 교체할 자유를 얻었지만, 이 새장에서 날개를 펼 자유는 잃어버렸다.

페니스의 길이와 발기 강직도를 수 배로 늘려줄 수 있다는 포르노틱한 광고와 네온 사인의 간판 아래, 오늘도 못생긴 창녀들이 길가의 사람들을 홍등가로 유인한다.

이곳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모여든 곳이며, ‘대박’이라는 꿈을 위해 도전하다가 좌절을 맛본 인간쓰레기들이 모인 ‘정글’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트 시티 드림’이 노래하는 나이트 시티라는 정글의 실체다.

I don’t see Any American Dream i See an Amerian Nightmare
나는 어떠한 아메리칸 드림도 보지 못하고,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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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러너의 주인공, ‘데이비드’의 엄마, 글로리아 마르티네즈는 나이트 시티에 굴러 들어온 가난한 소시민이다.

자신은 시궁창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아들만큼은 어떻게든 명문(아라사카 아카데미)에 보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노력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당한 노동’이 아니다. 글로리아는 죽은 사람의 사이버웨어(부품)을 몰래 뽑아다가 거래하는, 일종의 ‘장기매매’를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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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어디에나 있다. 무기를 들었다고 무조건 악은 아니지만, 돈이 없는 건 나이트시티에서 ‘악’이다.

이렇듯 나이트 시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어떤 의미로 뒤틀려 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악’에 물든다. 하지만 물론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누구는 아라사카 타워 꼭대기에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야욕을 꿈꾸지만, 또다른 누구는 고작 자신의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데도 벅차다. 자신의 꿈은 이미 오래 전 포기한 지 오래다.

‘나이트 시티 드림’조차 버거워하던 그녀는 갱단의 총기난사 사고에 휘말려 중태에 빠진다. 이때 현장에 빠르게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지만 마르티네즈가 보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그냥 내버려두고 간다.

그리고 그녀는 싸구려 병원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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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처럼 덜커덩하며 한 인간의 유해가 납골함 캡슐에 담겨버리는 모습은, 나이트 시티에서의 인간의 죽음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정한지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한 명의 인간의 존엄성이 그렇게 찌그러진 캔커피처럼 사라짐으로써, 밀린 집세를 감당해야하는 미성년자 아들에게는 의지할 곳이 단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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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존재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자신이 ‘로봇’이 되겠다는 말과 상통한다.

엣지러너의 메인 스토리는 작중 주인공 ‘데이비드’가 자신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산데비스탄’이라는 사이버웨어를 얻으면서 시작된다.

사이버웨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육체가 가진 한계를 마침내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체의 노후화된 장기를 교체하거나, 더 강한 힘과 속도를 내기 위해 팔과 다리를 교체하는 식이다.

심지어 자신의 신경계를 직접 네트워크에 연결해 스마트폰 없이 직접 자신의 신체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인간의 수명을 무한하게 늘려주었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게 하였으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강인한 신체를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작중 최종보스격으로 등장하는 ‘아담 스매셔’는 자신의 신체 중 96%가 사이버웨어로 이루어졌을 정도로 사실상 ‘로봇’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그렇게 되기 전에 미쳐버린다.

‘사이버 사이코시스’라고 부르는 부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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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사이버사이코를 보면 눈동자가 여러 개로 겹쳐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건 실제로 눈이 여러개인 게 아니라, ‘사이버 사이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사이버웨어를 장착하게 되면 신체에서는 일종의 ‘거부반응’이 일어나는데, 사이버웨어 시술을 과도하게 받거나 사이버웨어를 가진 사람이 강력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면 ‘정신을 놔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강력한 ‘사이버웨어’로 무차별적으로 주위를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작중에서는 이들을 ‘사이버 사이코’라고 부른다.

사이버 사이코가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주위에 있는 죄없는 사람들은 수십 명도 가볍게 죽어 나갈 정도로 사이버 사이코시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현상이다.

엣지러너의 데이비드도 ‘나는 특별한 존재야’라는 믿음으로 끝없이 자신의 신체를 개조한 결과, 점차 인간으로서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평범하게 학교에 가고,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했던 마르티네즈 가족은 나이트 시티의 환락(꿈)으로부터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엣지러너의 캐릭터 비주얼


만약 당신에게 5분의 여유가 있다면 아래의 영상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래 영상에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 사샤 야코블레바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

아쉽게도 엣지러너 및 사이버펑크 2077 본편에서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영상에서 볼 수 있다.)

Cyberpunk: Edgerunners — Ending Theme | Let You Down by Dawid Podsiadło |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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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이버펑크는 비주얼적 한계가 명확한 장르다.

여전히 80년대에 상상한 2000년대의 촌스러운 자유주의가 범람하고 있고, 특히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간판은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엣지러너에 등장하는 사샤를 비롯한 일부 캐릭터는 ‘사이버펑크’가 갇혀 있던 미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실험적 의지를 보여준다.

네온 사인의 강렬한 채도를 상징하는 듯한 강렬한 역광의 색채와, 고양이상의 큰 눈동자와 신비로운 동공. 그리고 페이스 사이버웨어에 의한 얼굴의 기묘한 장식이 캐릭터를 한껏 모에하게 보이게 한다.

이제 모에는 ‘사이버펑크’라는 거대한 장르에마저 침투하게 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에’를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은 사이버펑크뿐만 아니라 SF 장르 전반에 대한 미적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미 SF 세계관을 채택한 일부 서브컬처 게임 – ‘니어 오토마타’나 ‘승리의 여신: 니케’, ‘라스트 오리진’ 등 – 에서 일반 인간의 신체 규격을 벗어난 섹스어필이 확실한 돌(doll)들이 등장하는 것만해도 이러한 변화는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지금부터는 사이버펑크에 등장하는, 기존의 클리셰적인 외양이 아닌 독특한 캐릭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시 시점은 학생 데이비드로 돌아온다.

삽시간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르티네즈에게는 집주인의 ‘퇴거 명령’이 내려온다. 자신의 집도 이제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데이비드는 행선지도 정해놓지 않고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던 중 자신의 샤드를 훔치려던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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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루시나 쿠시나다. 작품 내에서는 ‘루시’라고 불린다.

폴란드-일본의 혼혈 태생 미국인이라는 설정으로, 엣지러너라는 작품을 상징하는 메인 히로인이다.

루시의 외양은 디즈니, 넷플릭스 등 미디어 공룡들이 지향하는 PC적인 여성의 외양과는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재패니메이션의 미소녀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모에 속성과 트리거의 독창적인 색감이 한데 아우러져,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인 외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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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얼굴을 가진 쿠사나기 모토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이야말로 가장 그녀를 잘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공각기동대’를 본 사람이라면 그녀를 보고 자연스럽게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짧은 단발과 날카로운 눈매, 신비로움과 공허함을 동시에 풍기는 무표정한 인상과 사이버웨어를 장착할 수 있는 목 뒤의 슬롯은 쿠사나기 모토코의 아이덴티티이기 때문.

심지어 루시의 풀네임이 ‘루시나 쿠시나다’인 것과 ‘쿠사나기 모토코’라는 이름이 꽤 유사하게 느껴지는 것도 두 캐릭터의 유사성을 더욱 확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담이지만, 루시나 쿠시나다라는 이름은 CDPR의 총괄 프로듀서 라파우 야키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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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꿈은 바로 ‘달’에 가는 것.

루시의 방 벽면에는 달 여행을 광고하는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져 있을 만큼 루시의 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포스터를 보고 ‘촌스럽다’고 비웃었을 때 루시는 지금까지의 활발한 목소리를 죽이고 ‘불만있어?’라며 정색한다.

2070년대에는 달로 여행하는 상품이 나와있을 만큼 달에 가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트 시티’의 소시민인 루시에게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돈(자유)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루시가 ‘나이트 시티’에 한탕 벌기 위해 모여든 인간군상 중 하나가 아니라, 나이트 시티에서 그녀에게 가져다줄 수 없는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나이트 시티에서 가장 이질적인 그녀가, 엣지러너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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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입이 험하고 가장 광폭한 사람을 꼽자면 단연 ‘레베카’다.

작중에서 적들의 머리를 가장 잘 터트리는(?) 놀라운 사격솜씨를 자랑하는 그녀는, 입은 험해도 동료애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레베카의 민트색 머리칼과 레드오렌지색 눈동자, 그리고 몸에 있는 캐주얼한 문신은 온전히 ‘트리거’의 작품이다.

‘엣지러너’를 제작하기 위해 CDPR과 트리거는 약 2년동안 각본과 방향성 등에서 옥신각신했다. 그런데 레베카는 온전히 트리거가 제안해서 탄생한 캐릭터이고, CDPR도 레베카처럼 즐거운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는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레베카는 전형적인 ‘미인상’의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악동을 연상시키는 뭔가 우스꽝스러운 요소가 결합된 외양을 가지고 있다. 작은 키와 빈유를 자랑하는 주제에 높은 신체 노출과 어설픈 타투는 캐릭터 자체가 꼼꼼하기보다는 ‘내 꼴리는 대로 살 거야!’라는 인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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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워낙 일그러지는 표정을 많이 짓는 그녀이지만, 얌전한 인상 또한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다. 허벅지에 있는 분홍색 타투의 글자는 SF의 거장 ‘필립 K 딕’을 오마주하기 위한 글자로 보인다.

레베카의 성미는 누구도 말릴 수 없지만, 그녀는 단순히 폭주하는 기관차가 아니다. 해피 트리거로서 총기를 난사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총은 오직 그녀가 지켜주고 싶고 아끼는 동료를 위해서만 쓰인다.

엣지러너의 시대에는 무법자들만큼 용병들이 즐비하다.

나이트 시티에서 제대로 한몫 챙기기 위해서는 큰 물에서 노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용병에게 큰 물에서 노는 기회를 주고 개인이나 기업에게는 깨끗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픽서다.

패러데이는 ‘애프터라이프’라는 이름의 용병과 픽서들 사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야심가다.

오른쪽의 세 개 달린 눈이 인상적인데, 이러한 눈의 개수는 마치 사이버 사이코 연출에서 눈알이 여러개가 되어 흔들리는 연출을 연상시킨다.

패러데이는 사이버 사이코는 아니지만, 엣지러너의 세계에서는 어쩌면 미친 사람보다도 더 미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는 ‘괴물’이다. 그래서 그의 눈동자가 세 개인 이유는 그가 미쳐있지 않음에도 가장 미쳐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런 외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캐릭터의 외양이 작중 어떠한 연출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도 엣지러너가 기존의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보여준 장르적 틀을 벗어나려는 비주얼적 시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엣지러너와 신세기 SF의 지평


우리는 SF를 왜 소비할까.

그건 SF가 단순히 재밌어서, 무언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SF 작품을 보고 어떠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SF 영화 ‘마션’은 우리 인간이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SF 영화 ‘코어’는 멈춰버린 지구의 ‘외핵’을 깨우기 위해 마리아나 해구보다도 더 깊은 심연을 탐사하는 모험을 보여준다.

‘메이드 인 어비스’에서 등장하는 ‘심연(abyss)’라는 소재는 우주 탐험만큼이나 우리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이다.

한편, 이제는 미래 도시에 대한 상상력이 거의 고갈되어버린 ‘사이버펑크’ 장르가 앞으로도 계속 외연을 넓혀나갈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사이버펑크’를 배경으로 한 ‘엣지러너’에서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외양’과 ‘배경’은 차세대 그래픽이나 디자인, 기획의 아이디어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비주얼은 어쩌면 앞으로 ‘사이버펑크’를 계승할 또 다른 장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아래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이다.

네온색으로 반짝이는 강렬한 색채를 뽐내는 여체의 아름다움과 느와르풍의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시의 색채가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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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는 글: 모에 최적화 진행중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표지

엣지러너는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우는 서구의 동양적 시선을 오히려 일본인의 시각에서 매력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그동안의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묘사된 아시아인의 모습이 ‘유녀’를 비롯한 일본 전통 문화에 가까웠다면, 이제 그 자리는 일본의 재패니메이션 서브컬처가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이버펑크 2077에도 J-Pop 아이돌 ‘어스 크랙스’가 깜찍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등, 과거 사이버펑크 장르가 아시아인을 묘사하던 인상보다 사뭇 긴장감이 많이 내려간 모습이다.

오히려 해당 게임에 등장하는 ‘가부키 스트리트’라는 이름이나 ‘아라사카’ 등의 기업이 작중 세계관에서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개발자들이 일종의 ‘와패니즘’을 갖고 있는 게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필자는 사이버펑크 2077도 재미있게 플레이했지만, ‘엣지러너’를 보며 게임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트리거’가 자랑하는, 엣지러너 전반의 강렬한 액션도 인상깊지만 개인적으로는 ‘엣지러너’가 자랑하는 독특한 색채감이 기존의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잘 녹아드는 점이 좋았다.

그 과정에서 ‘모에화’되는 사이버펑크의 인상도 전혀 나쁘지 않다고 느껴졌다.

사실 몇 년 전,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라는 이름으로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서브컬처 게임이 출시된 적이 있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질 스팅레이’이라는 한 여성 바텐더가 되어 술집에 찾아오는 각양각색의 손님을 상대한다.

이 게임이 특별한 점은 끝내주는 스토리텔링과 나쁘지 않은 게임 디자인도 있지만,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들도 한 몫 한다.

이미 필자는 이때부터 모에화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사이버펑크 장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아쉽게도 위 게임의 후속작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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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이버펑크는 더 이상 진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에한 캐릭터와 함께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비주얼’과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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