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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환락의 도시, ‘페나코니’와 5가지 상징적 메타포들 – 『붕괴: 스타레일』

페나코니 표지
아스다나 은하계에 위치한 축제의 별,「페나코니」
「화합」의 가문, ‘가족(The Family)’의 공식 초청장을 받고 은하열차는 환락과 화합의 도시 ‘페나코니’로 향하게 되는데…

들어가는 글


상징(symbol; icon): 어떠한 관념이나 사상 등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사물로 보여주는 것.

메타포(metaphor): 은유(隱喩).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

2023년 12월 8일

첫만남부터 친근하면서 또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이들이 있다.

「붕괴: 스타레일」(이하 스타레일)에서는 TGA 2023 참가 영상으로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이야기’라는 영상을 선보였다.

기존에도 유튜브 등 SNS를 통한 마케팅에 적극적이었던 호요버스였지만, 특히 이 영상은 다른 영상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었다.

스타레일의 오랜 ‘선주:나부’ 강점기가 마침내 끝나고, 대다수 스타레일 개척자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페나코니’가 처음 선보인 것.

몽환적인 배경과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색감은 기존의 나부가 보여주지 않은 또다른 ‘차별화된 매력’을 뽐내는 데 충분했다.

2024년 1월 26일

이날 업로드 된 영상, 「WHITE NIGHT」에서는 ‘재즈 시대’를 바탕으로 유쾌한 댄스곡과 함께 매력적인 신캐가 등장했다.

눈 밑의 세 개의 점과 날개가 달린 ‘로빈’, 그리고 여성향을 저격한 듯한 멋진 턱시도 복장을 한 ‘어벤츄린’.

그리고 양 손에 불꽃놀이를 하는 반디(firefly)와 ‘원신’에서 등장했던 ‘메이’의 또다른 퍼스널리티, 아케론까지.

그야말로 페나코니는 ‘축제의 별’이라는 이명 답게, 오랫동안 새로운 행성 업데이트를 기다려왔던 많은 개척자들에게 ‘축제의 기분’을 선보이는 데 충분했다.

꿈세계의 그 목소리가 웃으며 말합니다. ‘절 데려가 주세요’ 그러나 나는 내 손으로 잠을 죽이고 시간을 잊어버렸습니다. 레버리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페나코니의 성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후발주자들은 왜 페나코니가 성공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호요버스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펴야할 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러한 ‘비즈니스’적인 부분은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최근 ‘아티클’이나 ‘시스템 디자인’ 주제의 글을 연달아 올리다보니, 슬슬 필자가 자부하는 ‘내러티브 디자이너’로서의 색깔이 다소 옅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번 글에서는 앞서 써오던 글과는 방향성을 틀어, 스타레일의 페나코니에서만 볼 수 있는 컨셉 디자인적인 ‘상상력’을 엿보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게임이 재탕되는 이유 중 하나로, 우리 게임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기존의 클리셰적인 소재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연구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반성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까지 보기 드물었던 소재인 ‘재즈 시대’를 바탕으로 한 페나코니의 세계를 하나씩 살펴볼 생각이다.

페나코니의 컨셉과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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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Campbell,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년에 출간된 신화와 영웅, 원형 상징과 서사 등을 분석한 책.
최근에는 시나리오 라이터의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

필자는 앞서 [18+] ‘사이버펑크: 엣지러너’가 보여준 차세대 비주얼과 SF의 존재감라는 이름의 포스팅에서 SF적 소재에 관해 다룬 적이 있다.

요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와 ‘사이버펑크 2077’이라는 최신작이 여전히 20세기의 고전적 클리셰에 답답하게 갇혀있음이 아쉽다는 점이었다.

차세대적 비주얼을 보여준 것은 유의미한 성과였지만, 여전히 그 세계관의 소재가 ‘블레이드 러너’라는 고전이 보여준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링크)

필자는 SF적 상상력의 빈곤함은 2차창작, 내지는 그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의 메타적 서브컬처 문화(게임쇼, 애니쇼 등)를 즐기는 범주를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

‘위쳐 3’는 우리의 상상력의 저변을 넓혔지만, ‘사이버펑크 2077’은 우리의 상상력의 틀 안에서 모든 소재가 다뤄졌다.

필자는 사이버펑크 2077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매력적인 캐릭터, 서사적 장치, 게임플레이의 재미 등)에는 공감하나, 이 작품이 SF적으로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겼는가에 관해서는 부정적이다.

SF게임은 SF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아쉬움을 풀어낸 것은 미래적 세계관 속에서 삶과 죽음의 철학을 논하는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오히려 싸구려 장르라는 비아냥을 듣던 ‘스페이스 오페라’ 계통의 작품이었다.

그렇다. 바로 호요버스의 게임, ‘스타레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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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 활극을 다루는 대표적인 작품은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역사는 그 고전의 반열에 ‘스타레일’을 포함시킬 것이다.

스타레일은 은하열차에 탄 ‘은하열차 멤버들’이 사명감을 띠고 각 행성의 월드를 모험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이다.

주인공(개척자 일행)은 이번에는 순서상으로는 3번째 행성이자 화합의 에이언즈(Aion)를 추종하는 자들의 별, 페나코니(penal + Colony)에 다다른다.

페나코니라는 이름은 설정적으로는 ‘처벌’과 ‘식민지’라는 이름의 결합으로 탄생했지만, 실제 거리의 모습은 ‘풍요’와 ‘환락’에 가깝다.

서브텍스트적 설정적 장치는 일단 차치하고, 이 별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까지 서브컬처 게임이 거의 보여준 적 없었던 ‘광란의 20년대’라는 미국의 황금기를 테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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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코니의 하나의 시간대인 ‘황금의 시대’를 한 장으로 보여주는 사진.

(페나코니 페이지 링크)

페나코니는 ‘축제의 별’이다.

페나코니라는 도시를 ‘축제의 별’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

총천연색의 메트로폴리스와 화려한 조명, 어지러운 인파의 그림자와 폭주하는 소비의 향연의 거리 페나코니가 ‘화합’보다는 ‘환락’의 거리임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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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수’와 ‘달콤한 디저트’, 고속도로는 도시생활 풍요를 은유한다.

12개의 시간대에 따라 다른 ‘시대’가 존재한다는 페나코니의 거리 중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대는 오로지 ‘황금의 시대’ 뿐.

하지만 이 황금의 시대 하나에서도 우리는 천의 얼굴과 아이콘을 목격할 수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황금기의 미국에 모여든 인간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듯이, ‘화합’과 ‘축제’라는 카니발리즘적 유희에 참가하고자하는 하이에나들은 그 신분과 입장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스테이크(지분;stake)를 차지하기 위해 이 별에 왔다.

갤럭시 레인저, 아케론.

스타피스 컴퍼니 전략투자부 소속, 어벤츄린.

파멸의 에이언즈를 추종하는 소멸파, 명화대공.

정체불명의 소녀, 반디까지.

이 아메리칸 드림[페나코니 드림]의 끝이 파국임을 우리(독자이자 플레이어)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 함께할 것이다.

그럼, 이 다양한 입장과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펼쳐내는 ‘축제의 장’으로 함께 들어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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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쇼크의 배경, ‘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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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레일 ‘페나코니’의 한 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전경

페나코니의 매력은 단순히 다양한 주조연 캐릭터의 매력, 서스펜스적 서사적 장치가 만들어낸 스토리의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페나코니’라는 이름을 ‘축제의 별’로 인도하는 내러티브적 장치는 사실 ‘배경(월드 컨셉)’과 ‘프랍(배경에 맞는 소품들)’에 있다.

스타레일의 배경은 ‘마천루 도시’라는 컨셉 테마가 베이스에 깔려 있는데, 푸르른 색감과 빌딩의 배치는 바이오쇼크의 ‘랩처’를 연상시킨다.

스타레일이 랩처를 오마주함으로써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랩처에 관해 소개해보자면, 랩처(Rapture)는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도시 전체가 바다에 가라앉아있는 해저도시다.

해저도시라는 지형적 특징, 청록색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지만, 바이오쇼크를 플레이한 사람은 페나코니가 어떤 배경을 오마주했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랩처의 뜻은 ‘황홀감’, ‘행복’, 그리고 ‘휴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신대륙(미국)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궁극적인 삶의 모습을 빗댄 상징이 바로 랩처가 아니었을까.

랩처를 연상시키는 페나코니의 푸르른 색감과 마천루의 오마주는 페나코니의 시대상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목적적 상징으로 강화(inforce)시킨다.

즉,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의 미국의 화려한 거리는 바이오쇼크의 ‘랩처’라는 상징적 공간을 거쳐 페나코니라는 현대에 재현(미메시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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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크박스와 칵테일, 콜라병과 네온사인 조명이 일궈내는 환상과 환락의 비주얼

관건은, 그동안 숱하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소재가 가진 왕도적 서사(파멸)를 어떻게 비트느냐에 대한 것이다.

영화나 기타 문학작품을 막론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노래하는 찬란한 영광의 순간은 보통 개인 또는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파괴로 귀결되었다.

랩처는 이미 해저에 잠겨있음으로써 ‘파괴된 결말’을 보여주었으나, 페나코니는 아직 그 환희의 순간이 채 시작도 하기 전의 배경을 다룬다.

이제 막 영화관에 앉아, ‘닉 캐러웨이’라는 인물의 2인칭 시점으로 영화 속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보기 시작한 셈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파멸의 서사’를 향해 질주하는 스포츠카에 올라타 있다.

즐길 준비는 되어 있는가?

바로 이 ‘축제의 별’, 페나코니에서.

천의 얼굴[가면]을 가진 영웅[또는 하찮은 존재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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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묘사된 뉴욕 타임스퀘어의 밤거리

미국의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도,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은 청소년 필독서로도 알려져있을 만큼 대단히 유명한 작품이다.

광란의 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광란’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 그 타락과 절망의 서사를 잘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정말로 ‘위대한’ 이유는 이 작품 안에는 우리 인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공감각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이 영화만큼 ‘꿈과 욕망, 사랑과 배신’을 서스펜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드물 거라고 장담한다.

어지러운 조명 아래를 질주하는 수많은 ‘부유한 자동차’들도 결국은 연료가 다 하면 멈추게 되듯이, 이 ‘광란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의 밤도 결국은 저물게 된다.

페나코니의 축제의 밤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테고, ‘화합’이 있다면 그 속에 ‘배신’이 있으리라.

위대한 개츠비는 스타레일의 ‘페나코니’에 오마주되어 다시금 그 생명력을 불태워 아름다운 제 2막을 이곳에 현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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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춤, 연주자가 없는 악기들. 짙은 화장과 디스코라이트.

광란의 20년대라는 표현이 다소 거칠기 때문에, 순화해서 ‘재즈 시대’라고 표현하도록 하자.

재즈라는 음악의 호불호를 떠나, 재즈 자체가 선사하는 경쾌함과 무규율성은 축제의 분위기에 알맞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중세)와 종교와 이념의 시대(근세)를 넘어서서, 이제는 인간찬가와 기술만능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인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이제 달로 사람을 보내거나(쥘 베른의 달 세계 여행),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돌리는 것(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도 시간 문제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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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 ‘부르주아 계급’을 상징하는 스포츠카의 모습.

유럽이 누린 벨 에포크 시대가 세계 1차대전을 거치는 동안 산산조각이 나면서, 상대급부로 미국의 국력은 유럽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풍요는 전기, 수도, 가스라는 기초 인프라를 넘어서서, 제조업의 발달, 라디오, TV, 광고판, 고층건물 건축기술 등 전방위적인 기술적 풍요로도 이어진다.

특히 TV와 라디오의 발전은 대중음악, 스포츠 중계, 무성영화 등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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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는 의미상으로 ‘풍족하다’, ‘모자람이 없다’라는 의미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잉여생산물’, 즉 ‘가득 차 있거나’ ‘넘치거나’라는 과포화된 상태로써의 상징성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

‘낭비란 곧 죄악’이라고 여겨지던 오랜 인류의 문명사회에서 마침내 인류의 생산속도는 소비속도를 추월함으로써 풍요의 시대가 탄생했다.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생산된 모든 것은 생산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신성화된다’고, 현대의 물질사회를 비판했다.

컨베이어 벨트와 ‘포드 자동차’로 표현되는 물질적 풍요는 페나코니에서는 ‘넘칠듯한 샴페인’, 그리고 ‘터져나오는 콜라’로 표현된다.

그 외에도 이러한 ‘풍요로움’의 아이콘은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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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류가 우러러보는 신은 날개 달린 권좌에 앉아있는 유일신이 아니다. ‘광고판’이 유혹하는 미지의 물질이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 광고판’이 자본주의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떠한 ‘자본’의 광고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대량생산과 물질적 풍요의 예찬 아래, 홀리듯이 그들의 광고에 이끌린 우리는 결국 유리지갑의 바닥을 긁고야 만다.

페나코니에서 묘사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100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현대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야흐로 ‘소비의 시대’다.

당시 ‘재즈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 유명한 대공황이 찾아오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우리의 현대도, 그리고 페나코니의 어쩌면 곧 다가올 미래도 그러한 ‘파멸’의 순간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막간 #1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상징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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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d Eve
Ca. 1550. Oil on canvas.

세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는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먹은 사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과가 왜 특이한 걸까? 맛이라도 좋았던 걸까? 아니면 황금색으로 빛나기라도 했던 걸까?

상징의 해석 과정에서는 해석을 하려는 사물 자체의 물질적 속성을 간과하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 사물 자체의 속성보다는 사물을 어떠한 ‘맥락’과 연결되는지(상징하는지)를 중요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의 ‘사과’는 유혹, 금기, 자유, 원죄, 인간주의, 각성이라는 개념으로도 읽힌다.

물질적 속성으로써 사과는 단순히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과일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이러한 상징적 관념은 우리에게 사과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가 사실 이제는 ‘Apple Inc.’의 사과가 되었음을 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독자 분들께 질문.

‘Apple’사가 사명과 회사 로고를 사과로 지은 까닭은 단순히 물질적 속성으로써 먹기 위한 사과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사과가 상징하는 ‘인간주의의 예찬과 자유’라는 상징적 해석을 넣고자 했던 걸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것도 다 억지로 끼워맞춘 비논리적 결론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고.

방금 필자가 말한 ‘상징적 해석’이 그러한 논리로 귀결되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존재하냐고.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상징은 머리(논리)가 아니라 우리의 가슴(무의식 저편의 세상)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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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별, 수레바퀴, 삼각형, 눈, 왕관 등.
우리는 하나의 도상으로부터 많은 원형 상징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에서 비슷한 ‘공감대(예컨대 신비)’를 얻어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인류’라고 하는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kollektives Unbewusstes)’의 근원적 이해를 공유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학습되지 않은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문화인류학적 유산으로 공통적으로 ‘물질화’되어 표현된다.

우리는 경험하지도, 논리적으로 맞다고 증명할 수도 없는, 어떠한 무의식적 소산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

인류 어느 문화권에서도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 하나의 선구자(가령, 단일신)에게 배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명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불’이라는 소재가 서로 교류가 없었던 모든 문명권에서, 비슷비슷한 시기에 그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라고 하는 종의 ‘진화’가 비슷한 속도로 모든 문명권에서 일어나게 된 것을 암시하며, 또한 나아가 인류의 학습과 공감 또한 모든 문명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정선 아리랑이라는 음악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흑인의 소울 R&B가 ‘잡음’이 아니라 ‘음악’으로 들릴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무의식적 유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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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가지고 어느 문화권에 가더라도 ‘섹슈얼한 심볼’로 읽히지, 단순히 맛있는 과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위 그림이 ‘섹슈얼하다’고 배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 위 그림을 그렇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우리 인간은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의식(Conciousness)의 세계에서는 낯설지라도 무의식(Unconsciousness)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비유한 ‘사과’를 보고, 우리는 머리로는 먹는 과일임을 알지만, 그 무의식의 저편에서는 사과가 가진 상징적 의미에 대해 우리는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것이다.

그렇기에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는 다양한 추측과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다수의 공감을 얻으면 귀납적 결론(정의;definition)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상징의 해석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이 상징의 해석 과정이니, 한번 마음을 열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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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통이 쓰레기통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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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 누구보다 똑똑한 쓰레기통이지만, 결국 본질은 쓰레기통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

왜 스타레일에서는 가장 똑똑한 존재들(소위 말하는 똑똑이들)을 쓰레기통으로 자주 출현시킬까?

쓰레기통과도 같은 외양적으로 볼품없는 존재가 사실은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지성을 갖고 말을 건다는 유쾌한 반전을 노린 해석일까?

아니면 누구보다 똑똑하다는 지성의 전당이 사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아무 쓸모 없이 버려진다는 비참한 해석일까? (철학과에 가면 굶는다는 소문!)

이 이후의 상상의 여지는 독자 분들께 맡긴다.

원형 상징(archetype icon)과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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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커다란 조개껍질같이 보이는 곳은 현실과 꿈을 잇는 ‘요람’이자,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가르는 침잠의 성궤다.

우리는 매일 매일 잠에 들면서 언젠가 찾아올 영구적인 죽음을 ‘준비’한다.

일시적인 죽음(잠)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위안은, 그 너머에 모든 행동이 자유로운 세계(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꾼다. 지금의 삶이 끝나면 천국 또는 지옥으로 향한다는 꿈을.

아니면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는 꿈을.

아니면 같은 생을 무한히 반복한다는 꿈을.

그것이 어떤 형태의 꿈이든간에, 우리는 매일매일 잠에 들며 우리의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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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오가는 과정에서 ‘물에 잠기는 연출’이 사용되는 건 과연 우연일까?

우리는 ‘침대’, 또는 어떠한 푹신한 바닥의 위에서 잠에 들지만, 사실 우리가 처음부터 잠들어있던 곳은 ‘자궁’이라는 이름의 요람이다.

모든 인간, 그리고 포유류를 비롯한 대다수의 동물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난다.

자궁은 우리가 처음부터 잠들어 있던 ‘모태 바다’이자,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자, 우리의 자아의식의 존재를 강제로 억압하는 ‘감옥’이다.

모태 바다에서 우리는 무한히 헤엄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모태 바다의 생명성은 근본적으로 ‘유한’하며, 출산과 함께 모태 바다의 생명력은 고갈된다.

양수라는 이름의 물로 가득 차 있는 자궁 안에서 우리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받지만, 반대로 우리의 자아는 외부에 향해 소리를 칠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다.

그래서 출산은 ‘어머니의 의지’가 아니라 실제로는 그 감옥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자아’의 의지가 발현됨으로써 비로소 이뤄지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그래서 인간은 출산(모태 바다를 빠져나가겠다는)의 의지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자아가 처음 실현되었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9달이 넘었음에도 뱃속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이를 잉태한 산모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된다.

그래서 산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거나 또는 최악의 경우 죽여야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자식 살해’는 도덕적 관점에서는 지탄받을 일이나, 실은 인류문화학적으로도 그리고 세계 각지의 소규모 문명에서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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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충격적인 로빈의 사망 장면.
하지만 죽임을 당한 장소가 ‘요람’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처럼 요람은 물로 가득 차 있는데, 물은 생명을 순환시키기도 하지만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진다.

물이 담긴 요람에 누워있다는 것은 살아있음, 또는 죽어있음을 동시에 암시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표현의 메타포와도 연결된다.

출산을 하면 살아있는 것이요, 출산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가 꺾이면 그것은 죽어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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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4–1486)
그러한 요람의 이미지를 ‘비너스의 조개’로 표현한 스타레일의 메타포는 훌륭한 상징성을 그 자체가 내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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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세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부유체’를 볼 수 있다.

넘실거리는 고래와 비눗방울, 물질적 풍요의 무게조차도 한없이 그 존재 의미가 가볍다는 것을 비웃듯이 떠다니는 조명들.

그리고 모태 바다를 방황하며 헤엄치는 우리 스스로의 에고(ego)와 다른 존재들과 서로 교차되는 편린들.

이러한 물질적 아이콘은 그 자체가 물질로써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관념의 투영체로써 표현된 환상(illusion)들이다.

가령, 위 화면의 조명은 ‘빛을 비춘다’는 기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중력을 거스르는 물체로써 꿈 속 세계라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암시하게 한다.

같은 맥락으로, 위 화면에서 비눗방울과 고래가 떠다니는 것은 위 장면이 ‘바다 속 한가운데’여서가 아니라,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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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쏟아진다’. 아직 그것을 붙들어놓는 어떠한 의지가 있을 뿐.

이러한 메타포 중에서도 가장 흔히 등장하는 것은 바로 ‘4원소’, 즉 메르쿠리우스다.

태양, 달, 별, 흙, 공기, 물, 그리고 불은 각각의 사물의 근원물질이자 서로 결합 또는 분해됨으로써 사물의 성질을 뒤바꾸는 연금술적 질료이다.

여기에서 물은 비눗방울이나 고래, 아니면 푸르른 색채, 우울감, 흐름, 순환, 성배 속 기적, 눈물 등으로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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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어진 시간의 주전자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멈춰있는 물’과 부유하는 물잔과 돌고래.

말 그대로 ‘부유하는 메르쿠리우스’는 스타레일의 꿈 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기호이자 상징이다.

우리는 이러한 심볼로부터 물이 가진 어떠한 가능성과 메르쿠리우스적 변환의 가능성을 느낀다.

꿈 속의 시계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멈춰진 시계’라는 주전자에서 쏟아져나오는 물도 완연한 곡선을 그린 채 멈춰 있다.

멈춰있는 물은 물 자체가 가진 ‘순환’과 ‘흐름’, 그리고 ‘유한함’의 이미지가 반전된다.

즉, 비순환과 무한함. 이 순간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징으로 읽힌다.

하지만 으레 모든 사물이 그 자체가 가진 본질적 성질이 있으므로, ‘언젠가 시계는 다시 초침이 움직일 것이며 물은 다시 흘러내릴 것이다.’

아직은 그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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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레일에서 하나의 심볼 안에 가장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물건.

앞서 물이 가득 찬 요람(자궁)으로부터 현실에서 꿈 세계로 이동한 우리는, 곧 이내 위와 같은 ‘강력한 상징성을 가진 물건’을 마주한다.

위 액자 속에 담긴 그림을 보면 9개의 손이 어떠한 틈새를 향해 뻗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정교한 액자 안에 완전한 완성품인 채로 담겨 있다.

액자는 그릇이자, 용기이자, 가슴이자, 자궁이자, 여성이자, 이 세계를 나타낸다.

수비학적으로 숫자 9는 완성과 종결을 의미하는 신성한 숫자다.

즉, 위 그림은 숫자 9의 손의 숫자를 통해 이미 완성된 그림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색채적 대비는 사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메르쿠리우스의 색채와 닮아 있다.

잘 살펴보면 3개의 손은 푸른 색으로, 3개의 손은 검은 색으로, 그리고 나머지 3개의 손은 하얀색이다.

가령 검은 색은 사물이 불에 의해 ‘잿더미’가 되면서 생겨나는 색채다. 하얀색은 햇빛 또는 불이 사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뿜어져나오는 성질적 색채다.

푸른색은 음식이 상해서 푸른 곰팡이가 피는 등 사물의 부패로도 읽히지만, 물에 의해 더러운 것이 씻겨나간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여기에서 9개의 손은 남성적 심볼에 해당하는 남근(penis)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근은 생명의 잉태이자, 강렬한 의지이자, 우주이다.

이러한 각각의 손이 여성의 질구(vagina)와 비슷한 형태의 밝은 틈새를 향해 폭력적인 손짓을 하는 것은 그만큼 강렬한 어떠한 ‘의지’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음순에 해당하는 밝게 빛나는 영역은 마치 곧 다가올 손을 베어삼킬 것처럼 날카롭게 번쩍인다.

거미가 친 거미줄에 어떠한 욕망을 갖고 방황하던 동물이 결국 붙잡히게 되듯이, ‘이빨 달린 질(toothed vagina)’은 그 예리함으로 다가오는 폭력적 의지를 냉정하게 베어낸다.

한 거미가 친 거미줄(이빨달린 질)에, 우리의 욕망(남은)은 곧 거세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섬뜩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위 그림의 상징은 곧, 페나코니에 모여든 벌레들이 곧 어떠한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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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시계는 악몽을 노래하고, 멈춰있는 시침과 분침은 악몽이 끝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현생에 ‘갇혀있다.’

매 주 월요일이 되면 학교나 직장으로 나가야 하고, 정해진 시간동안 자유와 자아의 실현을 억압받은 채 남들이 살기를 바라는 인생을 산다.

우리가 자유를 되찾는 것은 바로 해가 지고 달이 뜬 어둠의 시간이다.

어둠은 우리에게 자유, 그리고 달에 미치는 감성(lunatic)을 부여한다. 그래서 밤에 미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실수를 하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감옥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획득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우리가 매번 ‘죽음의 예행연습’을 하는 꿈 속에서다.

그러나 모든 인생이 지옥이 아닌 것처럼 모든 꿈이 자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꾸는 악몽이 끝나지 않는 미로처럼 이어지는 것은 우리의 삶 또한 그러다는 것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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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시계

우리는 일주일에 168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 시간 중에서 약 50시간에서 60시간을 수면으로 보낸다.

인생의 약 1/3이 수면시간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잠드는 생활을 반복해 왔고, 이러한 삶의 수레바퀴는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는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존재(가령 인간)의 반복되는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치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머리와 꼬리가 서로 물고 있는 완전한 원형의 삶은 우리가 어떠한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궤도가 벗어나는 것을 안정적으로 방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되는 궤도는 언제까지나 영원히 같은 자리에서 돌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노화한다. 배움을 통해 성장하며, 반복되는 삶 속에서 경험과 통찰을 통해 지혜를 습득한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는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 멈춰버린 시계마저도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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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코니의 상징.

시간은 반복된다. 그리고 어쩌면 ‘또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무한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유한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운명은 언젠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우리는 다가올 운명 앞에서 단순히 순응할 수도 있지만, 아브락사스의 알을 깨고 ‘각성’하며 운명에 저항할 수도 있다.

그 몫은 언제나 우리의 손 위에 달려 있다.

페나코니의 축제도 곧 시작될 것이며,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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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전당.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포근함’은 사실 가족 구성원이 아닌 자에게는 한없이 ‘차가울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족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어떤 대우를 받게 될까?

반대로,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함부로 들어와 마치 우리 가족처럼 행세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 내부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하지만,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없이 매서운 눈초리로 외부를 경계해야한다.

그렇기에 가족은 언제나 내부로 단결되어 있어야 하며 외부를 향해 노려보는 독수리의 눈과도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권위, 힘이 필요한 것이다.

페나코니의 ‘가족’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 그 내부에서는 ‘배신자’에 의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그래서 가족의 대표격에 해당하는 ‘선데이’는 찾아오는 모든 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단 하나, 자신의 ‘진정한’ 가족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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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테이블은 단란하다. 하지만 그 테이블의 크기와 넓이,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완벽한 수비학적 배치는 가족 사이의 위계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암시한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사물의 배치로부터 우리는 가족 구성원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가족의 화합을 ‘가장’하는 권위의 전당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원형의 테이블은 원형 그 자체가 주는 ‘순환’과 ‘부드러움’의 메타포로도 읽히지만, 원형이 가진 ‘불완전함’, 그에 말미암은 ‘순환함’의 의미도 담겨 있다.

원형은 불완전하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이야기의 흐름 또한 그러한 ‘불완전함’으로부터 ‘불안전’, 나아가 ‘순환함’의 흐름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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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메르쿠리우스는 수비학적 조화와 맞물려 그 공간을 상징적인 배경으로 탈바꿈시킨다.

원형은 육각형의 아름다운 기하학적 도형과 함께 그 성질이 보완되기도 한다.

6이라는 숫자는 구조, 작용, 그리고 질서를 나타낸다.

구조는 단단하고 견고한 이미지이고, 작용은 그러한 구조가 서로 맞물리거나 연결됨으로써 만들어지는 어떠한 결속체를 뜻한다.

이 공간이 ‘가족’이 머무르는 방이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육각형의 허니컴(벌집)과도 같은 구조는 가족의 단단한 결속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단단한 구조는 서로 맞물리는 동안 견고한 질서를 낳는다. 질서는 안정을 낳고, 안정은 영속성으로 연결된다.

태평성대한 시기가 언제까지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가족의 의지는 건축가의 손에 의해 천장에서도 구현되었다.

가족의 공간은 성스럽고 또한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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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nnnova, ‘선데이’

이러한 성역(sanctuary)에 스타피스 컴퍼니의 미친 도박사, 어벤츄린이 발걸음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데이가 분노한 것이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도박’이라는 불확실성은 영속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스파클’이라는 환락의 사도(Trickster) 또한 이 게임이 앞으로 어떤 변수에 의해 흘러가게 될지 전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한다.

치밀한 상호이익의 관계 속에서 마침내 로빈의 죽음이 가족의 분노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축제의 별 페나코니는 이제 그 영속성이 깨진 채 한치앞도 모르는 미지의 화합으로 질주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막간 #2 – 반딧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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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도시는 푸른 스모그에 잠겨 있고 일부 빌딩의 불이 명멸하며 도시가 아직 살아있음을 암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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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뭇별이 지평선 너머로 향하는 장면은 도시의 차가운 인상을 단번에 반전시키는 환희의 순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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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소녀가 그 자리에 함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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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못할 기억을 위해 ‘사진’ 속에 너와 나의 모습을 담는다.

영속성은 깨어질 지언정, 사진이 담은 그 시간과 공간,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사진이 빛바랜다해도, 그때 우리 두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글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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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레일의 악몽 속 복도의 모습은 사뭇 차갑지만, 저기 보이는 문 너머로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불러일으킨다.

스타레일의 심오한 세계관을 분석하는 일을 하다보니 실제로 스타레일을 플레이하는 시간을 줄여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바빠졌다.

미호요의 게임, 특히 원신과 스타레일은 세계 곳곳에 소위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배경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세계관 설정이 훨씬 더 체감이 잘 되게 만든다.

필자는 스토리를 쓰는 일보다, 이런 ‘맥락(context)’을 게임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더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작가’가 아니라 ‘게임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내러티브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필력이 뛰어난 재밌는 글이 있다고 할지라도 게임플레이와 무관한 전개로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게임을 위한 글인지는 필자는 확신할 수가 없다.

반대로, 글 자체의 재미는 다소 떨어질지라도(미호요는 예전부터 그래왔다), 그 세계관이나 배경이 보여주는 곳이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떠한 판타지적, SF적 장소라면 필자는 기꺼이 그 스토리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호요버스, 아니 미호요의 세계관을 구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진정한 게임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이번 ‘페나코니’를 만든 주역들이 등장하는 재밌는 영상을 준비했으니 함께 보고 가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