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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026이 바라본 AI – 내러티브 디자인 인사이트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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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2026년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판교 넥슨 사옥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026이 열렸다.

이번 NDC 2026에는 총 9개 분야, 51개 세션 중 15개가 AI 관련 강연이었다. 숫자만 보면 ‘AI 컨퍼런스’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비중이다.

이번 NDC에서는 다가오는 AI시대에 맞춰 내러티브 기획자가 AI를 실무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하는 인사이트가 담긴 강연이 있었다.

최근 필자는 AI를 실무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업계인 분들도 AI가 내러티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 같아 자연히 눈길이 갔다.

이번 글에서는 ‘AI’, 그리고 ‘내러티브’ 영역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세션 세 개를 소개한다.


세션명: <AI는 스토리텔링의 꿈을 꾸는가?> 게임 내러티브 기획에서 생성형 AI 활용과 인간의 재미 판단

강연자: 이지영 (넥슨코리아)

연관태그: #생성형AI #게임기획

권장대상: 게임 시나리오, 퀘스트,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관심이 있는 내러티브 기획자

이번 세션을 맡은 연사는 넥슨코리아 EL 프로젝트에서 내러티브 기획을 담당하는 이지영 기획자다.

그녀의 세션명 ‘AI는 스토리텔링의 꿈을 꾸는가?’라는 세션 제목 자체가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따온 오마주다.

그녀는 주인공 릭 데커드의 대사 ‘아직 내 경력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인용했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앞으로 AI와 공존하는 미래와 개발자들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은 AI에 의해 찾아올 비관적 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AI를 실무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AI시대에도 내러티브 기획자가 활약할 영역이 분명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희망적인 미래’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기반 자료가 개연성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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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NDC 2026, ‘AI는 스토리텔링의 꿈을 꾸는가? – 게임 내러티브 기획에서 생성형 AI 활용과 인간의 재미 판단’ 중에서. 사진은 ⓒINVEN

그녀는 ‘지역 설정 기획서’ 작성의 사례를 들며, 약 179자 분량의 프롬프트를 입력해, 1만 2,000자 분량의 세계관 초안을 얻었고 그중 70% 정도는 실제로 쓸 만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수치만 보면 AI의 생산성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179자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13만 자 이상의 기반 자료, 5시간 이상의 팀 회의, 참여자 경력 합산 80년. 이지영 기획자는 이것을 ‘고맥락 자료’라고 표현했다. AI가 좋은 초안을 낸 게 아니라, 프롬프트 너머 숨겨진 수많은 맥락이 충분히 쌓여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실무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었는데, 그동안 회의록을 쓰면 다들 ‘아무도 읽지 않는데 이걸 왜 써야해요?’라며 싫어했다면, 이제는 회의록이야말로 그 회사의 가장 큰 맥락 자산이 된 셈이다. 이러한 맥락이 결여된 채로 AI에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AI는 ‘같은 프롬프트’임에도 대사나 기반 설정이 아예 잘못된 못 쓸 결과물을 내놓았다고 한다.이는 맥락의 축적과 기획자의 판단력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평균화의 한계: 재미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

이지영 기획자는 다음 사례로, 게임 시나리오 작성 과정에서 AI를 사용한 경험을 설명했다. 코미디 스크립트를 작성하려고 했고, 리처드 와이즈먼의 LaughLab 실험(4만 건 이상의 유머 샘플을 200만 명에게 평가받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웃긴 유머’ 데이터)을 프롬프트에 담으며 충분한 맥락을 쌓았다. 웃음의 공식을 넣었으니 웃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러나 놀랍게도 결과물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AI의 결과물은 그 구조적 특성 상 가장 ‘그럴듯한’ 답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의외성’이 결여된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다.

웃음 코드의 본질은 바로 그 ‘의외성’과 ‘부조화’에 있기에, AI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폭발적인 효율성을 자랑하는 AI일지라도, 결국은 인간이 개입할 영역이 분명하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퀘스트 자동화: AI 에이전트를 이용한 업무 효율화

AI의 활약이 가장 빛났던 영역은 바로 ‘퀘스트 설계’ 분야였다.

데이터 생성은 ‘AI 에이전트’를 이용해서 진행됐는데, NPC 분야, 아이템 분야 등 기획이 필요한 부분을 세밀하게 쪼개 각각 에이전트에게 할당한다.

이러한 전문영역을 구분한 뒤, 기획자가 트리트먼트를 써서 AI 에이전트에게 건네면 AI가 이어받아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식이다.

즉, 기획서만 입력해도 AI 에이전트는 언리얼 맵에 실데이터와 시퀀스를 자동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사실상 플레이 가능한 수준으로 데이터를 고도화하는 데까지 성공했다고 한다. 약 2주 간의 구축 작업 덕택에 이후 개발 공정에서 기획자가 재미와 완성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인사이트: AI를 쓰기 전에 맥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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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NDC 2026, ‘AI는 스토리텔링의 꿈을 꾸는가? – 게임 내러티브 기획에서 생성형 AI 활용과 인간의 재미 판단’ 중에서. 사진은 ⓒINVEN

이지영 기획자의 발표를 하나로 요약하자면, ‘AI를 잘 쓰려면 맥락부터’ 챙기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AI는 수행의 도구이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면서,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스킬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기획자에게도 요구되던 ‘통찰력’, ‘판단력’, ‘상상력’, 그리고 ‘표현력’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재미’를 만들기 위해서도 AI가 아니라 인간이 결국 개입해야했다는 실험 사례를 통해, 여전히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반드시 활약해야 할 영역이 있음을 보여주는 세션이었다.


세션명: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 스킵해 버렸네 – 숏폼 시대의 <마비노기 모바일> 메인 퀘스트 제작기

강연자: 김혜진 (데브캣 내러티브제작팀 팀장), 조설빈 (데브캣 스토리팀 팀장)

연관태그: #게임기획, #퀘스트, #스토리

권장대상: 숏폼 시대 모바일 스토리와 IP 재해석, 몰입 설계 및 정보 전달법을 찾는 분, 텍스트 서사를 실제 플레이 경험(퀘스트)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분.

이번 세션은 제목부터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유머러스함과 위트가 느껴졌다.

NDC 2026 둘째 날, 두 명의 내러티브/스토리 분야의 전문가 분들이 맡은 이 세션은, 지금 모바일 MMORPG 내러티브 기획자가 맞닥뜨린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배경: 47초의 집중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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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설빈, 김혜진, NDC 2026,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 스킵해 버렸네 – 숏폼 시대의 <마비노기 모바일> 메인 퀘스트 제작기’ 중에서. 사진은 ⓒ게임동아

국내 숏폼 이용률 약 77%, 유튜브 쇼츠 시청자 비율 82.7%, 평균 집중 시간 47초.

사람들의 집중 시간이 20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통계가 세션 서두에서 제시된다.

조설빈 팀장은 “이제는 숏폼을 보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과거 게임산업에서는 자사 게임의 경쟁자는 옆 건물 경쟁사의 게임이었던 시기가 지나, 이제는 ‘숏폼’이라고 하는 강력한 외부의 경쟁자가 등장한 셈이다.

숏폼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긴 호흡과 플레이 타임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플레이어가 텍스트를 읽고 서사를 따라가게 만들어야 하는 ‘내러티브 기획자’에게 가장 큰 위기 요소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러한 숏폼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마비노기 모바일은 기존의 문법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택했다.

스킵 버튼을 없애는 건 선택지가 아니다. 숏폼의 시대에도 스킵하지 않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해결책 1: 쉽고, 짧으면서도 내용이 전달되게

그들이 가장 먼저 실행한 솔루션은 읽어야 하는 텍스트의 양을 줄이는 작업이었다.

말풍선의 경우, NPC 대화는 두 줄을 넘지 않도록 하여 읽는 부담감을 줄이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핵심 정보’는 포함하게 하여, 단순히 짧게 쓰는 게 아니라 짧아도 내용이 전달되게 했다.

핵심 정보를 직관적인 용어로 바꿔 ‘쉽게 읽히도록’ 하는 작업도 병행되었다.

플레이어가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 정보는 직관적인 용어로 대체했는데, 가령 ‘포워르’라는 고유명사를 ‘마족’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정보량 통제’는 이탈률이 높고 화면이 작아 긴 설명이 어려운 모바일 플랫폼 환경에 최적화된 솔루션이었다. 정보를 이해하는 난이도는 낮추고, 빠르게 내용을 진행시킴으로써 ‘스킵하고 싶어지는’ 플레이어의 학습 피로를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즉,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먼저 이야기를 덜어내야 한다.

해결책 2: 텍스트가 아니라 플레이로 경험하게

요점은,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직접 플레이하게 하여 스킵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자는 노력이었다.

분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스토리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하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었을까. 김혜진 팀장은 다듬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텍스트 없이도 경험으로 만들어낼지 세 가지 축을 들어 설명했다.

첫째는 서사 연출이다. 짧은 만남에도 캐릭터가 각인되도록 설계하기 위함이다. 팔라딘 챕터를 예로 들면, 기사단 동료들이 본격 합류하기 전 플레이어와 짧게 마주쳐 호감을 미리 쌓는 장면을 추가하고, 함께 잔을 나누며 결의를 다지는 ‘서약의 잔’ 시퀀스를 배치했다. 대사로만 언급되던 도플갱어는 플레이어가 직접 쫓는 추적 임무로 바꿨다. 서사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짧더라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방향이었다. 텍스트를 읽어 내용을 ‘독해’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듯한 연출로 승화함으로써 ‘플레이’가 곧 내러티브가 되도록 연출을 설계한 것이다.

둘째는 플레이 템포다.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반복되면 플레이어는 금방 패턴을 학습하고 기대감도 줄어든다. 그래서 같은 선택지 형식이더라도 단서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선택과 직관적으로 맞히는 선택은 전혀 다른 경험으로 느껴지도록 ‘플레이 변주’를 설계했다. 다만 이 시도가 항상 의도대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김혜진 팀장이 솔직하게 공유한 교훈은 이것이었다. “왜 지금 이 플레이가 들어오는지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면, 환기가 아니라 맥락 단절로 읽힌다.” 이는 단순히 ‘변주’라는 임의성을 부여하는 게 재미를 보장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셋째는 플레이 테마다. 챕터마다 핵심 플레이 키워드를 정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관통시켰다. 3장은 ‘선택’, 4장은 ‘추적’, 4장 외전은 ‘정화’였는데, 가령 3장의 선택 테마에서는 정답이 없는 딜레마 선택지를 제시해 플레이어가 자신의 가치관으로 실제로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들은 퀘스트가 끝난 뒤 자신의 선택에 관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고,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발적 토론과 재플레이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해결책 3: 스킵하고 싶지 않게 만들려면, 먼저 스킵을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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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설빈, 김혜진, NDC 2026,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 스킵해 버렸네 – 숏폼 시대의 <마비노기 모바일> 메인 퀘스트 제작기’ 중에서. 사진은 ⓒ게임동아

스킵을 하지 않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데브캣이 택한 방법은 언제나 스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김혜진 팀장은 “스킵하고 싶지 않게 만들려면 오히려 먼저 스킵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언제든 스킵할 수 있게 하되, 스토리를 다시 볼 수 있는 ‘다시 보기’ 기능을 지원하여 기본 편의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라이브 서비스는 업데이트가 쌓일수록 콘텐츠 부담도 함께 쌓인다. 업데이트가 쌓인 만큼 신규 유저는 선행 주자들을 따라갈 심리적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런 부담을 내려놓게 하여 빠르게 메인 퀘스트를 따라갈 수 있게 함으로써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다시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은 PC나 콘솔과 달리 플레이어가 게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부득이하게 게임에 집중할 수 없는 순간이 있을 때, 스킵을 막아버리면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틀어놓기는 했어도 전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플레이어가 온전히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스토리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스킵이 오히려 스토리를 ‘정주행’할 수 있는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게 도울 것 같다.

인사이트: 스킵하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만들자

데브캣은 스킵 버튼을 없애버린다고 해서 스킵을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조설빈 팀장의 말처럼, “‘스킵 역시 이제는 자연스러운 플레이 방식’이며, 개발자는 스킵을 무조건 막기보다는 그렇게 스킵하는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식마저도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한 명의 내러티브 디자이너로서, 플레이어의 스킵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건 정말 공감이 갔다. 그러나 스킵 버튼을 없애거나 제한하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스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만들고 있는지 나 스스로 고민과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

플레이어의 집중력이 짧아진 ‘숏폼의 시대’가 열렸다. 내러티브 디자이너의 생존 전략은 이제 AI 툴을 어떻게 쓸지를 넘어, 숏폼 시대에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지도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세션명: 내가 플레이하고 싶었던 게임을 만든다 — 한국 작가주의 PD의 라이브 서비스 운영기

강연자: 김용하(넥슨게임즈), 김지훈(프로젝트문), 정우철(디스이즈게임)

연관태그: #게임기획, #IP, #작가주의

권장대상: 게임의 모습과 방향을 설정하는 개발자

이번 세션은 블루 아카이브의 김용하 넥슨게임즈 IO본부 본부장과 림버스 컴퍼니의 김지훈 프로젝트문 대표, 그리고 진행은 정우철 디스이즈게임 편집장이 맡았다. 이번 세션은 세 명의 강연자가 서로 대담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용하 본부장과 김지훈 대표는 서로 청춘 학원물과 디스토피아 누아르를 대표하는 개발자다. 정반대의 색깔을 가진 두 개발자가 무대에 나란히 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공감: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

“내가 플레이하고 싶었던 게임을 만든다.”

청춘물과 디스토피아. 그 종착지는 서로 정 반대를 가리키는 듯했지만, 두 개발자의 창작 철학은 같았다.

김용하 본부장은 작가주의를 의도해서 게임을 개발한 건 아니라고 한다. 시장을 의식하며 만들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임만 나온다는 걸 실패를 겪으면서 깨달았고, 큐라레: 마법도서관을 만들며 자신이 좋아하는 걸 보여줬을 때 자신과 같은 걸 좋아하는 플레이어가 반응한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고 했다.

블루 아카이브의 방향성은 이전에 개발했던 VR 게임 포커스 온 유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VR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플레이어가 정말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감각”이다. 그 감각을 모바일로 가져오면서, 스마트폰 화면 자체를 선생이 사용하는 기기처럼 설계하고 플레이어의 현실과 게임 설정을 연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드백: 받아들일 것과 흘려보낼 것

라이브 서비스는 끊임없이 플레이어 피드백과 시장의 요구를 마주하는 환경이다.

김지훈 대표는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개발을 회상하며, 실제로 피드백에 따라 게임을 수정해본 기억이 있다고 한다. 당시 욕심을 냈던 콘텐츠가 설정 오류를 일으켰고, 결국 김지훈 대표는 이를 인정하고 콘텐츠를 새롭게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피드백을 그런 식으로 ‘수정 대응’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바꿀 수 없는 뼈대는 존재한다”. 설정 오류나 기타 보완할 점은 수정할 수 있지만 작품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쉽게 건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용하 본부장은 버튜버 콘텐츠 당시 곤혹을 치렀던 상황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버튜버를 좋아하기도 했고 블루 아카이브와 연관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에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용하 본부장은 ‘결과적으로 저희의 판단이 틀렸습니다’라며 선생님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저희가 틀린 것이다라고 판단 미스를 인정했다. 결국 김용하 본부장은 빠르게 버튜버 콘텐츠를 철회하고야 만다.

모든 피드백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게임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지키면 게임이 굳어버리고, 모든 것을 바꾸면 게임이 사라진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김지훈 대표의 말처럼, 모든 것을 수정 대응하기보다는 게임의 근간은 지키되 오류는 보완해가는 피드백을 취사선택할 안목을 기르는 게 필요해 보인다.

성찰: 자기만의 것

세션 후반부에는 AI 이야기가 나왔다. 김용하 본부장은 AI 시대일수록 “테이스트(Taste)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과물을 만드는 허들은 낮아졌지만 선택받는 허들은 더 높아졌고,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보다 자신만의 것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AI가 게임을 만드는 진입장벽을 낮춘 건 사실이지만, 접근성이 더 좋아진만큼 이제 창작자들은 무엇을 왜 만드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테이스트—취향, 판단, 세계관—가 선명한 차별점을 낳는다는 의미이다.

김지훈 대표도 같은 방향에서 ‘운과 체력’의 중요성을 덧붙였다. “인생은 결국 가챠와 같습니다. 많은 시도를 이어가며 성공 확률을 조금씩 높여야 언젠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운이 찾아올 때까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체력을 길러두어야 합니다.”

인사이트: 플레이어나 AI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만의 기준을 잡자

라이브 서비스에서 개발자가 가져야하는 태도는 휘둘리지 않는 명확한 기준이다. 플레이어이든 AI이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좋지만, 그들의 말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수용하기보다는 ‘절대 바꾸지 않을 것’과 ‘피드백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해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AI는 분명 유용한 도구이다. 빠르게 초안을 써주고 내용을 정리해주면서 생산성을 증대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AI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리면 결국 나만의 방향성과 색깔, 즉 테이스트를 잃어버릴 수 있다.

모든 것은 다 바꿀 수 있더라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찾아보자.


글을 마치며

NDC 2026에서 내러티브 기획자들이 꺼낸 말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AI는 맥락이 있어야 작동하고, 재미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기획자다. 스킵 버튼이 있어도 누르지 않게 만드는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설계자의 감각이다. 결과물을 만드는 허들은 낮아졌지만, 선택받는 허들은 더 높아졌다.

맥락을 쌓는 것, 스킵하지 않을 순간을 만드는 것, 바꾸지 않을 뼈대를 아는 것. 이 세 가지는 모두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기획자의 일이다.

누구나 AI를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NDC 2026 연사들의 시선은 오히려 AI가 아니라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의 기획서는 과연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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