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글

후지모토 타츠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계기는 「룩백」 애니메이션부터였던 것 같다
이미 「체인소맨」의 작가이기에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당시 그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는 룩백과 체인소맨의 작가가 같은 사람임을 알고 난 뒤 크게 놀란 기억이 있다.
이번 실사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배두나 주연의 공기인형, 브로커 등의 감독이었으며 인물 간의 섬세한 감정 묘사에 탁월한 감독이다.
후지노 역은 데구치 나츠키, 쿄모토 역은 마키타 아쥬가 맡았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 만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지만, 이 글에서 필자가 비교하는 대상은 원작 만화가 아니라 먼저 봤던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판이다.
이미 애니메이션을 봤으니 대략적인 이야기를 기억하는 만큼, 이번 실사판에서는 같은 스토리를 얼마나 잘 전달할 것인가에 관심이 갔다.

애니메이션판을 먼저 접한 뒤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룩백」의 대표 스틸샷으로 보통 후지노가 자신의 방에서 만화를 뒷모습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후지노가 쿄모토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더 인상 깊게 기억한다. 그래서 이번 실사판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그 장면을 얼마나 잘 살릴지였다.
개봉 첫날인 10월 8일,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 시네마에서 관람했다. 돌비 포스터 굿즈도 선택에 한몫했지만, 이왕 극장에서 볼 영화라면 좋은 환경에서 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사판도 충분히 볼 만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고, 캐스팅과 배경, BGM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잔잔한 장면이 실사화되어 스크린에 입혀지는 느낌이 마치, 내 기억을 그대로 꺼내어 드라마로 만들어놓은 것만 같았다.
다만 아쉽게도, 애니메이션판을 봤을 때만큼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인물과 이야기를 충실하게 재현한 실사판인데도, 왜 애니메이션판만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2024년과 2026년의 「룩백」. 똑같은 원작의 두 영화에는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같은 관계가 쌓이고, 같은 상실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판이 더 인상깊었던 것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이 뛰어나서였을까 아니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묘사가 다소 아쉬워서였을까.
이번 글은 2026년 개봉한 「룩백」의 줄거리와, 그에 대한 감상평을 다룬다.
※아래에는 「룩백」 주요 사건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지노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온 쿄모토
혼자 그리던 두 사람이 ‘후지노 쿄’가 되기까지
「룩백」의 두 주인공은 모두 그림을 그리지만, 처음부터 친구였던 것은 아니다.
후지노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그리며 주변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런데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급생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그동안 자신을 칭찬했던 친구들이 후지노의 그림을 평범하다고 평한다. 이에 질세라 후지노는 놀러 갈 시간, TV볼 시간까지 줄여가며 교모토를 꺾기 위해 그림에 매진한다.
결국 후지노는 쿄모토의 그림에 꺾이고 만다. 그림을 때려친 후지노.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초등학교 졸업식에 쿄모토의 집에 가게 된다. 여기서 만난 쿄모토는 후지노의 만화를 좋아하고 있었다. 후지노가 쿄모토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동안, 오히려 쿄모토는 후지노의 성장하는 그림을 보며 ‘나의 소중한 후지노 선생님’이라는 동경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엇갈렸던 두 사람. 그러나 ‘그림’이라는 공통의 소재가 두 사람을 순식간에 절친으로 이끈다. 후지노는 다시 펜을 잡게 되고, 쿄모토는 동경하는 후지노의 집에 (연출상) 살다시피하며 공동작품 제작에 매진한다.

각자 혼자 집에서 스케치북과 씨름하던 소녀들은 이제 함께가 되었다.
창작(그림그리기)는 본래 고독한 작업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모니터는 두 개일 수 있어도 키보드는 하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한 명은 아이디어와 인체 담당. 한 명은 배경과 어시스트 담당.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하나로 겹쳐지고, 이는 이후 그들의 필명이 되는 ‘후지노 쿄’라는 이름으로 승화된다.
후지노의 손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밖으로 나가자는 후지노와 달리 히키코모리 쿄모토는 외출을 꺼린다. 애초에 등교거부를 할 정도로 심각한 대인기피증이 있던 쿄모토. 하지만 쿄모토의 그런 사정을 봐줄 생각 없는 후지노는 쿄모토를 거의 잡아끌다시피하면서 번화가로 나간다.
출판사에서 소정의 돈을 벌었으니 같이 플렉스하러 가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은 쿄모토에게는 어쩌면 인생을 바꾼 가장 소중한 장면이었을 것 같다.
학교에 가지도 않고 주로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쿄모토.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학교에 가지 않아 심심해서’였다. 정확히는,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시간때우기가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은 쿄모토가 후지노와 만나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쿄모토가 다른 인간과의 교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그림으로 ‘친구’와 ‘돈’을 얻었다. 하지만 바로 그 그림은 자신의 고독한 도피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지노는 쿄모토의 그런 도피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스케치북이 산처럼 쌓인 집에서 나와, 그 스케치북만큼 산더미같은 인파 속으로 쿄모토를 잡아 이끈다.
물론 이 한 번의 외출이 쿄모토가 가진 히키코모리 기질을 낫게 해준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바깥세상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제한되어 있던 쿄모토에게, 후지노와의 만남, 그리고 이 외출 사건은 새로운 장소와 관계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따라가던 쿄모토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다
이 장면은 이후 쿄모토가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과도 이어진다. 처음에는 후지노가 가자고 하고 쿄모토는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작품활동도 그랬다. 후지노의 아이디어를 쿄모토는 지지하고, 보조하고, 후지노의 지시대로 수정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후지노의 앞에서 ‘다른 길’을 택했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그런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잘 해왔다. 나와 함께하면 평탄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쿄모토를 설득한다. 하지만 쿄모토가 끝까지 굽히지 않자, 후지노는 마지못해 쿄모토 앞에서 ‘어차피 네가 맡은 영역은 어시스트에게 시키면 돼’라며 쿄모토와 결별을 선택한다.
어찌보면 급격하게 친해진 두 사람이, 그 결별조차도 급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 미성년자라서 이해가 됐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마음 편하게 결별할 수 있는지 몰랐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이별은 갑작스러웠고, 그래서 이후의 스토리가 더 비극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조금 더 어른스럽게 보였던 건, 그동안 시종일관 쿄모토를 이끌었던 후지노가 아니라 쿄모토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이끌려 번화가에 가게 될 정도로 소극적인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후지노만을 바라보던 렌즈를, 이제는 미대 진학을 포함해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로 확장한 것도 쿄모토였다. 그래서 후지노의 손을 잡고 이끌리던 그녀가, 안정적이고 어찌보면 성공이 보장되었을 수도 있는 길을 뿌리치고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더 멋있었던 것 같다.
쿄모토는 말했다. 후지노는 왜 그림을 그리냐고.
쿄모토 없이도 후지노는 성공했다
쿄모토와 결별한 뒤 후지노의 만화 연재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작은 방에서 샤프와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던 후지노는 이제 액정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옆에는 몇 권의 단행본이 쌓여 간다.
어쩌면 후지노가 쿄모토 앞에서 내뱉었던것처럼, 쿄모토는 ‘후지노 쿄’의 성공에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쿄모토 없이도 후지노는 잘 해냈기 때문이다.
후지노의 작업실. 그 앞의 뻥 뚫린 창 앞에는 기차가 지나간다. 후지노는 그 기차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상상을 했을까? 아마도 이제는 도쿄 등 대도시에서 활약하는 그녀는, 아키타현에서 쿄모토와 지내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두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빈 자리는 ‘대외적인 성공’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찝찝함을 남긴다. 다른 어시스턴트가 모두 퇴근한 시각. 중학교 때부터 같이해온 편집자는 후지노를 보며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어쩌면 쿄모토의 빈자리를 그도 함께 느끼고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만약 후지노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룩백」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를 꼽자면, 필자는 쿄모토의 방 앞에 서 있던 후지노의 4컷 만화 장면을 꼽고 싶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지노. 미지의 인물인 쿄모토에 대해 아는 건 등교를 거부한다는 것과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뿐이었다. 그런 쿄모토의 방 앞에서, 마치 저주라도 퍼부으려는 듯 4컷 만화에 ‘해골이 된 쿄모토’를 그린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 앞에 선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만화를 보며 결국 감정이 북받치고 만다.
만약 후지노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쿄모토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림 대신 가라테를 배웠다면. 그랬다면 쿄모토와의 이별은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한 가정법은 이미 차가워진 방 앞에서 그저 하나의 만화적 상상력의 일부처럼 가벼이 흩어져버린다.
후지노의 대답은
차가워진 쿄모토의 방 안에는 그동안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그리고 미대에 들어간 뒤에 그렸을 쿄모토의 한층 성숙해진 그림이 걸려 있었다. 후지노가 이만큼이나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쿄모토의 그림 또한 비슷하지만 다른 궤적을 그리며 위로 위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묻는다. 후지노는 왜 그림을 그리냐고.
후지노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쿄모토에게 답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후지노는 마치 자신의 답은 그림에 있다는 것처럼, 그 물음에 답을 하기보다는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후지노는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의 답이 있다는 것처럼. 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그림에서 답을 찾으려는 듯이.
「룩백」실사판의 재현과 한계에 관하여
실사판을 보면서 느낀 건, 그냥 내가 기억하는 그 작품을 곧이곧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감상이었다.
개인적으로 2025년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판을 곧이곧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완성도는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앞서 말했듯 인물 사이의 섬세한 감정을 다루는 데 강점이 있는 감독이다. 영화 내내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도 좋았고, 무엇보다 실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처럼 생활감이 느껴지는 배경은 오히려 애니메이션판보다 인상적인 부분도 있었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화면을 실사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실제로 이곳에서 살고 그림을 그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실사판을 허술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원작과 애니메이션판을 상당히 존중하면서, 실사라는 매체에 맞게 공들여 옮긴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충실하게 옮겨진 인물들의 감정은 애니메이션판만큼 가까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출적으로 어색했던 아역과 어른 배우의 교체 타이밍

개인적으로는 아역 배우와 어른 배우 모두 연기력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굳이 꼽자면 쿄모토의 어린 시절 연기, 특히 후지노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뻣뻣한 연기가 어색해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히키코모리 생활을 오래 한 애가 사람을 만난다면 저런 식으로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갑자기 어른 배우가 되는 과정이 나는 타이밍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중학교에 들어간 시기이다. 1년 동안 공동작업을 했다고 해도 고작 중1~중2 정도의 나이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갑자기 배우가 아역에서 성인으로 교체되는데, 아직 어떠한 인물의 성장 서사나 작중 시간의 경과가 크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배우 전환이 이루어진 게 몰입감을 해쳤다.
특히, 후지노 역의 데구치 나츠키는 입술 주위에 인상적인 점이 2개가 있는데, 아역 배우에는 없다. 이 부분도 불필요하게 배우의 얼굴을 대조하느라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 감점 요인이다.
감정적으로 폭발시키지 못하고 절제된 감정과 감성
후지노가 쿄모토의 방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분명 슬펐어야 하고 눈물이 났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눈시울은 촉촉할지언정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았다. 왜일까?
이 영화의 시점은 상당 부분 3인칭 시점을 택했다. 3인칭은 인물의 눈으로 보는 시각이라기보다는, 관찰자나 절대자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내가 느낄 감정 또한 후지노나 쿄모토의 시각이라기보다는, 그걸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내가 상주가 아닌데 굳이 눈물을 흘려야하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화의 흐름이 잔잔한 것도 한몫했다. 영화 줄거리 내내 뭔가 커다란 갈등이나 작중 전환이 없기에(그나마 쿄모토와의 이별과 후지노가 TV 속보를 보고 놀라는 정도), 배경음악이나 카메라 연출 또한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애니메이션판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실사판에서 느낀 감상은 슬프고 감정이입하는 느낌을 한번 절제하는 느낌을 받았다. 절제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감정적으로 흔들려야 할 것 같은 순간까지 뭔가 절제된 느낌을 받아 그 부분이 아쉬웠던 듯하다.
잘 재현했지만, 실사판의 플러스는 어디에?
물론 실사판은 애니메이션판을 본 필자 입장에서는 훌륭한 재현이기는 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입장에서, 이 영화는 실사화만의 새로운 가치와 감동을 만들어냈는가? 그런 물음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쉽게도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과 실사는 같은 이야기를 전해도 서로 다른 표현을 쓸 수 있다. 실제 배우가 인물을 연기하고 실제 공간에서 움직인다는 점이, 먼저 본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번 실사판에서 기대했던 것도 그런 새로운 경험이었다.
영화를 다 본 뒤 집에 와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봐도, 실사화되어 좋았다고 느낀 특별한 그런 장면이 없었다. 배우와 공간 선택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 원작 고증도 훌륭했다. 전체적인 영화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굳이 실사화한 작품만의 매력이 있는가에 관해서는 딱히 떠오르는 장점이 없었다.
그래서 두 영화 중 하나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애니메이션판을 고르겠다. 실사판도 한 번 볼 만한 영화지만, 두 번, 세 번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최소한 필자가 「룩백」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였던 관계와 감정은 애니메이션판에서 더 크게 와닿았다.
정리하는 글
쿄모토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만이라도 살렸어도

영화가 끝나고 느낀 두 작품의 결정적인 차이는, 필자가 특히 좋아했던 쿄모토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다루는 방식에서부터 갈렸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판에서 후지노는 수많은 사람 사이를 먼저 헤치고 나간다. 그리고 뒤를 돌아 쿄모토를 바라본다. 쿄모토는 그런 후지노의 손에 이끌려 자신이 좀처럼 나가지 못했던 바깥세상으로 들어간다. 그 뒤에는 조금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 오가던 번화가와 달리,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돌아가는 조용한 전철의 모습이 이어진다.
처음 애니메이션판을 봤을 때는 그저 두 사람이 즐겁게 놀러 나온 장면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룩백」을 다시 만나고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필자가 좋아했던 건 그 장면이 가진 의미에 더 가까웠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던 쿄모토는 후지노를 만나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으로 번 돈을 쓰기 위해, 이번에는 후지노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이 있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후지노가 언제까지나 쿄모토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후 쿄모토는 미대에 가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처음으로 후지노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후지노가 정해준 방향을 따라가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외출 장면이 아니었다.
후지노가 쿄모토를 자신의 세계 밖으로 끌어낸 순간이었고, 훗날 쿄모토가 자신의 힘으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되는 변화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실사판에서도 가장 기다렸던 장면 중 하나였다. 실제 배우와 실제 거리에서 이 장면을 다시 본다면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이상하게도 실사판의 이 장면은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실사판에도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시간을 보내는 과정은 있었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애니메이션판의 세 컷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강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로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 장면 하나를 더 잘 살렸다고 해서 영화 전체의 감상이 달라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역과 성인 배우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위화감도 있었고, 후반부에서 후지노의 감정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듯했던 감각도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실사라는 매체가 가진 생활감과 실제 공간의 힘을 그렇게 잘 보여준 영화라면, 후지노가 쿄모토의 손을 잡고 수많은 사람 사이로 데리고 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애니메이션보다 더 생생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잘 재현된 실사판을 보고 나서도 필자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룩백」은 결국 이 장면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먼저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는 후지노.
그 손을 잡고 따라가며 웃는 쿄모토.
그리고 모든 소란이 지나간 뒤, 전철에 나란히 앉아 돌아가는 두 사람.
「룩백」 실사판은 잘 재현된 영화였다. 하지만 필자가 애니메이션판에서 가장 좋아했던 이 장면만큼은, 조금 더 욕심내서 재현해줬으면 어땠을까.
덧붙임: 돌비 시네마로 볼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이번에 코엑스 돌비 시네마에서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돌비의 강한 사운드나 영상 표현이 반드시 필요한 작품은 아닌 듯했다.
돌비 포스터 같은 굿즈가 목적이라면 선택할 만하지만, 작품 감상만 생각하면 일반관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덧붙임: 그래서 볼만하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볼 만 하다.
하지만 n회차를 할 만큼 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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