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의 Lilian Do Khac
들어가는 글
게임 회사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인적 자원이 사실상 전부인 회사이다.
게임 출시에 드는 가장 큰 비용은 인건비다. 회사에서 아무리 큰 매출을 내더라도 프로젝트 종사자가 50명일 때와 100명일 때는 순이익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종사자 수를 줄이면서 가능한 한 매출이 높은 구조’가 유리하다.
최근 AI 열풍이 불고 있다.
Stable Diffusion이 게임 업계 원화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이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이제는 Claude Code를 비롯해서 다양한 바이브 코딩 도구가 등장하면서 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는 게임 디자이너, PM, PD 등, 업계 전반의 일자리를 줄일 거라는 걸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행히(?) 아직 AI는 게임 디자인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같은 게임 내러티브 기획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AI 뉴노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야만 한다.
1, 2년 내로도 수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사라질 것인데, 그 중 어떤 일자리는 AI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 아무리 개인이 AI를 거부하거나 밀어내려고 해도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일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많은 회사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채용 우대사항으로 ChatGPT나 Claude 등 LLM의 사용 여부를 넣어둘 지도 모른다.
AI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글에서는 게임 내러티브 기획자로서 ‘AI 뉴노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AI 시대, 더 이상 인간은 필수가 아니다
게임업계는 인간이 전부인 산업이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는 오랫동안 있었지만, 게임 업계에서 그 압박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게임업계는 대표적인 인적 자원 집약적 산업(Labor-Intensive Industry)으로, 인건비가 전체 영업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게임 개발 및 운영에 핵심 개발 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AI가 게임 아트, 코딩을 비롯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나 사운드/영상 리소스 생산까지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업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수백 명의 개발자를 뽑아야 했던 상황이 AI의 등장과 함께 달라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강남의 한 게임 회사가 AI로 게임 디자이너를 대체하겠다고 천명하며 기획팀장과 기획자 다수를 내보냈다고 한다.
아직 게임 디자인 영역을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나는, 그 대표의 어리석은 판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런 촌극이 테헤란로를 넘어 구로디지털단지나 판교테크로밸리까지 퍼져나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내가 게임 회사를 이끄는 대표나 이사라고 상상해보자.
AI에 들어가는 지출은 최고 요금제를 사용해도 고작 수십 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 명의 고급 인력은 많게는 수 억의 연봉을 책정해야 한다.
이러한 비용의 교환비에서 AI는 압승을 거둘 수밖에 없다. 아마 그 대표가 사람을 내보낸 데는, 이러한 비용 교환비 생각이 분명히 들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인건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려면? = AI가 정답이다
- 기업 입장에서 보면, “10명이 1씩 내는 팀”보다 “6명이 2씩 내는 팀”이 인건비·관리 비용 면에서 더 매력적인 선택지다.
- 넥슨은 2025년부터 블루아카이브 번역에 AI 번역+인간 검수 파이프라인을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비소프트는 Ghostwriter라는 AI 도구로 NPC 대사 초안을 생성하고 작가가 수정하는 방식 사용한다.
- 내러티브 영역도 AI 생산성 논쟁의 예외가 아니다. “대사 초안 정도는 AI가 뽑게 하고, 작가는 검수만 하면 되지 않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했던 팀도 내러티브 영역 하나만 해도 10명이나 속한 큰 집단이었다.
이 팀을 운영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매 달 적어도 수 천만 원이었을 것이다.
대표 입장에서 이 정도의 팀을 운영한다면 적어도 그들이 그 몇 배는 되는 결과물을 창출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개개인의 퍼포먼스나 성장가능성을 보고 사람을 채용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회사에서 몇 인분을 할 것인가는 ‘?’의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무식했는데, 시니어를 더 갈아넣어서 주니어를 교육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초과근무(야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그냥 사람을 덜 뽑고 AI를 쓰거나(인간을 AI로 대체), AI를 잘 쓰는 사람만 소수로 채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산성을 AI로 증대) 어느 쪽이든 인간의 일자리는 AI라는 존재에 의해 줄어들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더 이상 인간은 게임 업계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어버린 것이다.
AI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발 현장
앞서 필자는 AI가 게임 디자인 영역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게임 디자이너의 업무가 다른 영역보다 우월하거나 복잡해서 대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아직 게임 디자인 개발 현장이 AI를 받아들이기에는 준비되지 않았기에 AI가 게임 디자인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렇다면 게임 디자인의 영역은 마치 성역과도 같아서 AI가 절대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없는 영역일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오늘도 많은 게임 디자인 실무자들이 AI를 보조수단으로 삼아서 게임 디자인의 어느 영역에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하면, 아직 그렇게 하기 까다로운 영역이 있다. 이 지점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면 AI가 대체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내러티브 영역을 예를 들어서 한번 구분해보고자 한다.
1. AI가 잘하는 것들: 반복 작업과 프로토타이핑
혹시 AI에게 스토리를 써 보라고 지시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필자의 주장에 공감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2026년 2월 기준, AI는 인간 작가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질 좋은 어시스턴트 역할에 가깝다.
게임 디자인 중 ‘내러티브’ 영역은 아직 AI가 개척하지 못한 분야 중 하나이다.
제 아무리 ChatGPT나 Gemini 등의 성능이 높아진다 한들, 그들이 한 편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여 출판하는 건 아직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AI(LLM)의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AI는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용사 일행이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잔잔한 스토리’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AI는 용사나 마왕의 컨셉을 위한 기반자료를 추천하거나 제안해줄 수는 있어도, 자기 스스로 판단해서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고 끝맺음을 낼 것인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AI가 잘하는 영역은 따로 있다. 그런 영역에서는 인간보다 나은 모습도 당연히 보여줄 수 있다. 아래의 예시는 대표적인 AI가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이다.
레퍼런스 이미지 생성: 이미지를 학습한 경우
원하는 이미지가 없을 때, 1장의 예시 이미지와 적절한 프롬프트를 통해 원하는 레퍼런스에 근접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아티스트와 얘기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드는 게임의 세계관/설정과 유사한 장르의 게임/레퍼런스가 없거나 드문 경우, 이러한 레퍼런스는 시간을 상당히 절약해준다.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세계관/설정을 학습한 경우
이미 정해둔 세계관·캐릭터 설정을 프롬프트로 던져 놓고, 서브 퀘스트 아이디어, 에피소드 배리에이션을 여러 개 뽑도록 할 수 있다.
거기서 “건질 만한 것만 추려서 내 손으로 고치기” 식으로 접근하면 발상 단계의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논리 모순 체크: 설정과 행적 등 맥락을 학습한 경우
앞서 AI에게 학습시킨 캐릭터 정보(컨셉 기획서 등)을 바탕으로, 해당 캐릭터가 행동할 법한 행동양식, 발화할 법한 대사 톤 등을 뽑을 수 있다.
캐릭터 기획서나 행적을 까먹었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다 볼 필요 없이, AI가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연성/핍진성 오류를 점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토리 영역에서는 AI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아래는 대표적인 스토리 영역에서의 AI의 쓰임새이다.
시놉시스 구성
내가 생각해 둔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 활약상 등을 바탕으로 잘 정돈된 시놉시스를 완성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플롯 점검
내가 생각한 스토리 다이제스트를 바탕으로 3막 구조나 기승전결 구조에 맞는지 플롯을 점검받거나 대안을 제시받을 수 있다.
맞춤법/번역투 점검
내가 작성한 스토리 스크립트의 오탈자, 비문, 기타 낮은 품질의 대사를 고치거나 더 나은 문장으로 윤문할 수 있다.
이런 용도로 AI를 쓴다면 “내가 직접 쳐야 했던 글자 수”는 확실히 줄어든다. 대신 나는 더 중요한 판단을 하거나 퀄리티 작업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아직 AI는 시켜만 두면 알아서 척척 스토리를 뽑아오거나 레퍼런스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자동으로 스토리를 작성해주는 등의 ‘마법’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렇다. 인풋(인간의 개입: 아이디어나 맥락 제공)이 없으면 AI는 내가 원하는 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AI가 작가가 아닌 훌륭한 어시스턴트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2. AI가 여전히 못하는 것들: 비전, 맥락, 감성
AI에게 ‘너가 알아서 다 해줘’라고 하면 AI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인간이 AI에게 적절한 인풋을 제시한 경우, AI는 훌륭한 어시스턴트로서 내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거나 내가 쓴 초안이나 중간고를 꼼꼼하게 점검해줄 수 있다.
아직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필자는 그 부분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것이다. ‘비전’, ‘맥락’, 그리고 ‘감성’이다.
비전: 게임 IP의 방향성과 목표
게임의 비전을 결정하는 일은 사람의 영역이다. 게임을 만드는 ‘이유’와 ‘목표’, ‘방향성’, 그리고 ‘타깃 고객’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오고 환경을 거쳐왔는지 먼저 생각해볼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제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쓸 것이다.
그런데 AI에게 그러한 글감 재료를 단 하나도 주지 않고, 그냥 ‘자기소개서를 써 줘’라고 하면 AI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없다.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어떠한 목표와 방향성을 가져야하는지는 AI가 결정해주는 게 아니다. AI는 게임의 방향성, 목표, 타깃 고객 등을 인간이 판단한 것을 두고 적절한 개발 전략을 제시해주거나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게임의 방향성을 자신이 결정할 수는 없다.
게임 IP의 핵심 요소를 정의하고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어필할 것인가 등은 게임 개발의 목표를 정하는 일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맥락: 개발 환경과 판단
여기서 말하는 맥락이란, 바로 게임을 개발하는 전후 사정과 현실 맥락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GTA 5 같은 게임을 만들자’가 게임 디자이너의 목표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AI는 GTA 5라는 게임의 게임 디자인 요소, 그래픽 요소, 그 외 기타 성공 사례를 분석해서 개발자에게 제시해줄 것이다. 그리고 AI는 그 나름의 논리와 근거로 어떠한 제안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AI는 게임 디자인 기둥을 설정할 수 없다. 버티컬 슬라이스 등의 개발 방식을 통해 적절히 빠른 시기 내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갖다바칠 수 없다.
GTA 5를 만들기 위해서 수백 명의 사람을 뽑는 대신 자신이 일당백을 할 수 없다. 게임 개발을 위해 어떤 엔진을 채택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엔진을 사용하며 어떤 유지보수 전략을 취하고 라이브 업데이트 구조를 정립해야하는지 제시할 수 없다.
만약 버그가 발생하거나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거나, 아트 방향성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게임 디자인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방향성 변경으로 인해 개발 포기 또는 개발 기간 추가 소요 등의 이슈가 발생한다면, 그 때마다 AI가 적확한 판단을 통해 개발을 안정화시킬 수 없다.
제작 일정을 제시해줄 수도, 언제 출시해서 어떤 경쟁사 게임과 경쟁할 지도, 어떤 인게임 요소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리소스가 얼마나 필요하며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n년차의 전문가가 몇 명 필요한지도 알 수 없다.한 마디로, AI는 ‘어디까지 욕심낼 것인가’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건 인간의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영역이다.
감성: 개인의 욕망과 다수의 공감대
게임의 타깃 고객을 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AI는 20~30대 남성이 욕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는 어떤 것을 만들어야할지 인간만큼 정확한 촉으로 짚어낼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해 가장 잘 아는게 인간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어떠한 판단을 내린 근거 자료를 그 어떤 인간보다도 많이 갖고 있다.하지만 AI는 태어난 적도, 학교를 간 적도 없다.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학비를 내거나, 군대를 다녀오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해본 적도 없다. 마트나 백화점을 걸으며 물건을 샀다가 내려놓은 적도, 사랑을 해본 적도,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여본 적도 없다.
AI는 인간과 다르다. 그들은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맥락을 짚어낼 수 없다. 어떠한 욕망과 공감대가 모여 밈을 생성하거나 소멸시키는 걸 자기 스스로 이뤄낼 수 없다.
한 마디로, 게임 디자이너가 어떠한 욕망을 갖고 게임을 개발하며 누구의 욕망을 건드릴지, 그리고 어떤 스토리와 맥락으로 누구의 공감대를 건드리고 감성을 자극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의 일자리 일부를 대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목표, 판단력, 책임감, 욕망, 공감대 등을 대체할 수 없다.
그렇기에 AI는 아직 인간만이 활약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영역은 대체할 수 없다.
내러티브 기획자의 역할을 재정의하다
좋든 싫든 AI가 우리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그 일부를 보조하는 뉴노멀 시대에서, 우리같은 게임 내러티브 기획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필자 생각에는, 내러티브 기획자는 이제 단순히 ‘글을 기깔나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의 방향성을 정하고, 글의 기준을 세우고, 글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역할을 재정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여기서는 ‘글’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컨셉’이나 ‘세계관’, ‘설정’, ‘서브텍스트’ 등, 글 대신에 들어갈 수 있는 용어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아이템을 기획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의 내러티브 기획자는 아이템을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했다.
아이템의 이름을 정하고, 디스크립션을 쓰고, 리소스명을 적었으며, 레퍼런스 이미지를 핀터레스트나 구글 이미지 등에서 찾아와 구글 스프레드시트나 노션 등에 붙여넣으면서 발주서를 썼다.
앞으로의 내러티브 기획자는 이렇게 일할 것이다. 아이템의 방향성을 정하고, 각 아이템의 공통점과 차별점 등에 대한 기준점을 세우며, 그 아이템 각각의 존재의의나 기타 확장성 등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러한 ‘인풋 재료’를 잔뜩 준비해서 AI에게 ‘생성’을 의뢰하면, AI는 순식간에 디자이너의 의뢰서를 바탕으로 나름의 결과물을 돌려줄 것이다.
더 나은 이름, 더 읽기 쉬운 윤문된 디스크립션, 깔끔하고 통일감 있게 생성된 레퍼런스 아트, 그리고 개발자 친화적인 리소스 이름 등을 말이다.
이처럼 내러티브 기획자는 AI와 공존하게 될 것이다.
내러티브 기획자는 자신의 역할을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조련사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미래에서 자신의 핵심 역할(Core Role)을 재정의 해야하며, 그것이 우리의 미래의 일자리 유무를 결정지을 것이다.
아래의 예시는 내가 생각하는, AI와 공존하는 시대의 내러티브 디자이너가 맡아야 할 코어 역할이다.
AI는 그 과정에서 코어 역할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다.
1. 내러티브 목표와 플레이어 경험 설계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게임의 핵심 스토리라인을 정의하고 게임의 컨셉을 결정하며 핵심 감정, 테마, 메시지 등을 결정한다.
이러한 게임 세계관/설정 맥락을 플레이 경험 전체에 어떻게 녹일지 설계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처음 게임을 켰을 때부터 반복 플레이 루틴 구간에 진입할 때까지의 텍스트 경험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협업 파트너 친화적 기획서 작성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자신이 협업하는 컨셉 아티스트, 레벨 디자이너,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등에게 자신이 생각한 컨셉의 맥락을 잘 정돈한 문서로 풀어낸다.
분기형 스토리, 상태에 따른 변수 정의, PC 이동 시간에 따른 트리거 다이얼로그 정의 등을 내러티브 안에 녹여 경험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유관부서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획서 슬라이드를 쓰거나, 1페이지 기획서/제안서를 써서 빠르게 소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3. 톤앤매너 정의와 텍스트 경험 설정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게임의 전반적인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경험 중 어떤 것을 우선할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가령 게임의 폰트 모양새, 사이즈와 규격, 비속어 사용 여부 및 대체어 표현 방식, 문화적 민감성 등을 체크해야 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1차 가드로서 기획자가 판단한 요소가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었을 때 부정동향을 일으키거나 게임의 전반적인 톤과 일치/불일치하는지 점검해줄 수 있다.
4. 조직 운영과 개발 파이프라인 설계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하나의 마스터 일감을 완료하기 위해 적절한 시점에 자신의 일감을 완료하고 유관 부서에 전달해야 한다.
기획서 초안 작성부터 유관부서 전달 및 논의, 회의, 이후의 개발 진행에 대한 파이프라인 정의와 예상 소요 일정 등을 확인해야 한다.
AI는 개발 전 과정에서 개발에 리스크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업무 방식을 정의하고 제안해줄 수 있으며, 개발 조직의 개발 방식(애자일, 워터폴 등)에 맞게 적절한 조언을 PM 및 디자이너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
5. 품질 관리 기준 및 라이브 업데이트 목표 설정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AI와 합동 생산한 결과물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점(텍스트 품질, 대화 대사 패턴, 텍스트 분량 기준 등)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한다.
게임 출시 빌드(1.0) 및 이후 라이브 업데이트 빌드마다 플레이어의 피드백 및 기타 경쟁 게임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프로젝트에 적용 가능한 기준으로 정립해야 한다.
AI는 트렌드 파악이나 기타 플레이어 동향을 정해진 기준일(매 주, 매 달 등)마다 요약해서 전달해줄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 방법 등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해줄 수 있다.
게임 개발은 시간과 인력이 무한대가 아니다. 개발 마감이 정해져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기 기획은 점차 낡고 레거시한 것으로 변해갈 것이다. 회사의 자본이 고갈되어갈수록 정규직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도 시한부처럼 위태로워질 것이다.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AI가 잘하는 영역은 과감하게 AI에게 맡기고 자신은 좀 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일, 책임감과 판단력이 필요한 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뉴노멀 AI 시대에 적절한 내러티브 디자이너야말로,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로 선별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AI를 멀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가 아니라, “AI를 인정하고 우리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에 가깝다.
기업은 계속해서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팀”을 원할 것이고, AI는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내러티브 기획자인 우리는, AI와 경쟁하기보다 AI를 잘 다루는 강팀의 설계자가 되는 쪽을 택하는 편이 낫다.
AI는 우리의 우수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원흉이 될 수도 있다.
AI가 어느 쪽 역할에 설 지는, 바로 오늘 내가 AI를 어떤 존재로 다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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