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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기간 3개월 회고: 시나리오 라이터와 내러티브 디자이너 사이에서


수습 기간 3개월 회고: 시나리오 라이터와 내러티브 디자이너 사이에서
@upsplash, Luca Bravo

들어가는 글

최근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회사를 나오게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입사 첫 날부터 이제는 절대 내 손으로 이직이란 없을 거라는 다짐과 함께 첫 출근을 했다. 경력도 있고 나름대로 준비도 해왔으니, 새로운 회사에서도 맡은 일을 잘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필자와 회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달랐다. 그렇기에 결국 수습 기간 중에 서로 좋게 결별하기로 했다.

수습 기간 중에 결별하게 된 이 결과를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는 수습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게 내심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컸다.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서로 기대한 역할이 달랐다면 3개월 만에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이 필자와 회사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짧았던 수습 기간이 오히려 필자의 커리어를 다시 돌아보게 한 중요한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회사 정문을 나설 때, 필자는 이미 이 경험을 어떻게 갈무리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3개월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 글은 회사를 비롯해 누구를 탓하거나 비방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수습 기간 동안 무엇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판단이 달라졌는지를 복기하는 글에 가깝다.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필자의 기록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수습 기간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결과는 바꿀 수 없다. 대신 그 3개월을 다음 선택의 기준으로 바꿀 수는 있다.

직무명보다 그 안에 담긴 기대가 중요했다

사회초년생 때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초년생 때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은 단순했다.

“나는 시나리오가 좋은 게임을 좋아한다.”

“나도 스토리가 좋은 게임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그래서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 됐다.

게임 업계에서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을 부르는 직무명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퀘스트 기획자, 스토리 작가, 시나리오 라이터, 내러티브 디자이너처럼 회사마다 사용하는 이름이 달랐다. 실제 업무도 상당 부분 겹쳤다. 필자는 직무명 하나만 고집하기보다, 컨셉을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일이라면 폭넓게 경험해 왔다.

하지만 여러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면서 관심의 범위가 넓어졌다. 스토리를 쓰고 싶지 않아진 것이 아니다. 한 장면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쓰는 일’ 외에도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좋은 장면을 만드는 데에는 대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BGM과 연출이 더해져야 대사의 감정이 살아난다. 전투 방식이나 스킬명은 캐릭터의 성격과 인생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정 무기와의 인연은 캐릭터의 관계나 과거사와 얽혀 더 풍부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장치가 된다.

개발자가 되어 보니, 플레이어가 긴 대사를 읽지 않아도 “이 게임은 스토리가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게임 곳곳에 있었다.

필자가 게임 스토리 연출을 따로 공부하고 글로 정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문장을 쓰는 일만큼 캐릭터와 세계관, 콘텐츠와 연출을 연결하는 일이 즐거웠다. 이야기가 게임의 다른 요소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고민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을 버리고 내러티브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에서 출발해 게임 전체로 관심과 역할의 범위를 넓혀 온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시나리오 라이터보다 ‘내러티브 디자이너’로 소개한 이유다.

회사는 나를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번에 지원한 공고의 직무는 명확히 ‘시나리오 라이터’였다. 입사 첫날, 팀장님도 필자를 ‘새로 온 기획자’가 아니라 ‘새로 온 작가’로 소개했다.

스스로를 내러티브 디자이너로 소개해 온 필자에게는 다소 낯선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그 역할이 필자의 경험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 라이터와 내러티브 디자이너의 업무는 실제 현장에서 상당 부분 겹친다. 필자 역시 스토리와 캐릭터를 기획하고 글을 써 온 경험이 있었기에, 회사가 원하는 역할에 맞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습 기간을 보내며 더 선명해진 것은 ‘작가’라는 역할에 필요한 여러 역량 가운데 조직이 어디에 가장 큰 무게를 두느냐였다.

이 회사에서 말하는 시나리오 라이터이자 작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컨셉을 설계하고, 그 재미를 빠르게 전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가령 캐릭터 기획서를 써도 주요 질문은 그 캐릭터가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재미를 만드는가로 돌아왔다. 캐릭터의 외형과 설정이 납득되더라도 스토리 안에서의 쓰임이 충분히 보이지 않으면 기획을 다시 검토해야 했다.

반면 필자는 스토리를 쓴 뒤에도 그 이야기가 게임 안에서 어떻게 보일지, 아트와 시스템에 무엇을 요청해야 할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할지를 계속 고민하는 편이다. 스토리를 중심에 두되, 다른 직군과 요소를 연결해 플레이어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까지 필자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회사는 스토리 자체의 재미와 전달력에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 필자는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스토리가 게임의 여러 요소와 연결되어 작동하는 과정까지 함께 보려 했다.

두 방향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실제로 시나리오 라이터와 내러티브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은 상당 부분 겹쳤고, 필자가 해 온 일도 그 교집합 안에 있었다. 다만 이번 조직에서는 그중 스토리 자체의 재미를 빠르게 만들고 전달하는 역량을 우선해서 평가했다.

포트폴리오와 면접으로 서로의 역량과 기대를 확인하더라도, 일상적인 판단에서 무엇을 우선하는지는 함께 일해 보기 전까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직무명 안에서도 회사가 우선해서 평가하는 능력과 실무자가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의 비중은 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경험을 개인의 적합성만으로 정리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핵심은 여러 역량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서 사용하고 평가하느냐에 있었다.

직무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조직이 그 이름으로 무엇을 기대하는가였다.


조직이 원하는 재미와 필자가 설명하는 방식

웃음은 재미가 전달됐다는 신호였다

필자가 맡은 주된 업무는 새로운 컨셉을 기획하고, 그에 맞는 스토리와 전달 방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요구받은 능력 중 하나가 기획안을 ‘재미있게’ 발표하는 것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발표 도중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수록 통과에 가까워 보였다. 반대로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끝난 발표는 기획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피드백으로 이어지곤 했다.

여기서 말하는 웃음은 발표자가 농담을 잘했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핵심 키워드를 듣는 순간 사람들이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고, 그 장면에 각자의 아이디어를 덧붙일 만큼 재미가 전달됐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꽤 고생했다. 그동안 필자가 생각한 좋은 발표는 재미있는 발표라기보다, 그 자리에 앉은 모두가 같은 내용을 이해하고 떠날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발표’였기 때문이다.

기획서를 쓸 때는 한 페이지 제안서에서 시작했다. 딱딱한 문어체를 걷어내고, 마치 서로 대화하듯 구어체로 문장을 다듬었다. 긴 설명을 읽지 않아도 이미지만 보면 의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적절한 레퍼런스를 찾는 데에도 시간과 공을 들였다.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듣는 사람이 최대한 적은 노력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잘 정돈된 기획이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내용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발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원했다. 주요 키워드만 들어도 각자의 머릿속에 장면이 떠오르고, 거기서 새로운 재미 요소가 연달아 나오는 기획이었다. 한 사람의 설명으로 끝나는 대신, 참석자들이 각자 상상한 장면을 보태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까지 발표의 일부로 보았다.

한 번은 필자가 오랫동안 다듬은 기획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한 참석자가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옆에 있던 사람은 그 아이디어에 또 다른 장면을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재미있겠다”는 말과 함께 웃음이 이어졌다.

회의는 빠르게 활기를 띠었다. 필자가 준비한 안에서 출발했지만,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참석자 모두의 아이디어가 섞인 새로운 기획에 가까워져 있었다.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공적인 회의였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상상을 자극했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능성이 나왔다. 다만 당시의 필자는 무엇이 검토되었고 어떤 방향이 결정된 것인지 곧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준비한 기획안을 평가받는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참석자들은 그 기획안을 재료로 함께 발전시키는 자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필자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통과되고 아니고가 아니었다. 이 회의의 목적이 발표하는 기획안에 대한 평가 회의인지, 자유롭게 가능성을 넓히는 회의인지, 아니면 최종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인지 모호했다.

그래서 아이디에이션 자체는 활기를 띠었지만 이후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돈하고 후속 기획에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흐름이 이어졌다. 이 부분은 브레인스토밍 회의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해하기 쉽게’와 ‘재미있게’는 반대말이 아니었다

몇 번의 발표를 거치며 머릿속에는 이런 공식이 자리잡았다. ‘웃음이 터지면 발표는 성공. 발표가 조용하게 끝나면 발표는 실패’.

기획자가 아니라 개그맨을 데려다놓으면 더 발표 성공률이 높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 때는 속으로 이런 볼멘소리도 했다.

“그럴 거면 채용공고에 말을 웃기게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써놓지.”

하지만 조직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웃음에는 나름의 검증 기능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가장 잘 아는 내부 사람들에게도 재미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아직 핵심 장면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거나 전달 순서가 청자에게 맞지 않았을 수 있었다. 웃음 그 자체가 유일한 평가 기준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아이디어에 즉시 반응하는지는 분명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필자가 추구한 이해하기 쉬운 발표와 조직이 원한 재미있는 발표가 서로 반대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차이는 무엇을 설명하느냐보다 어떤 순서로 보여주느냐에 있었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상세 프로필과 배경 설정, 대사 예시부터 차례대로 읽기보다 가장 강렬한 이미지와 핵심 장면을 먼저 보여줄 수 있다. “다른 내용은 잊어도 이 장면만큼은 기억해 달라”고 말한 뒤, 왜 그 장면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세부 프로필과 참고 자료는 발표 뒤에 직접 읽거나 질문이 나왔을 때 확인할 수 있도록 남겨두면 된다.

그러면 기획서를 논리적으로 가져가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도 발표의 속도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수십 페이지의 슬라이드를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설명하는 대신, 듣는 사람이 재미를 느낄 부분을 먼저 경험하게 한 뒤 필요할 때만 그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가 이후 기획 발표에서 듣는 사람에 따라 보여주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고 정리한 것도 이 경험 때문이었다. 모든 기획을 웃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재무나 일정, 리스크를 판단하는 자리에서는 정확성이 먼저일 수 있다. 다만 재미를 검토하는 자리라면 재미가 전달되는 순간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좋은 기획을 만드는 일과 그 기획의 장점을 상대가 알아볼 수 있게 전달하는 일은 별개의 능력이었다.

기획의 완성도가 중요한 만큼 그 내용을 어떤 순서로 전달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잘하려는 마음이 여유를 줄였다

시간을 더 쓰는 것만으로 불안은 줄지 않았다

수습 기간 동안 필자는 늘 긴장해 있었다.

당시에는 수습 통과 여부가 직장 하나를 계속 다니느냐의 문제보다 크게 느껴졌다. 26년 1월, 이전 회사를 떠난 뒤 오랫동안 간절히 염원했던 건 안정적인 직장 재취업과 삶의 안정이었다. 취업 빙하기에 새 회사에 들어온 만큼 자리를 잡고 오래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잘하고 싶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통근에는 약 1시간 10분이 걸렸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보통 오전 6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회사에 일찍 도착해 운동한 뒤 업무를 시작했다.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 결과물에 반영하기 위해 기획서를 계속 들여다보았고, 시간이 생기면 쉬기보다 고칠 부분을 더 찾았다.

노력한 시간만 놓고 보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컨디션은 계속 나빠졌다. 새벽에 자주 깼고, 아침에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작은 소리에도 눈을 뜰 만큼 예민해졌다. 늘 피곤했지만 마음 놓고 쉬지도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필자는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은 기획에 쓰는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더 일하는 게 곧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획에 투입하는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기획이 더 예리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로가 쌓이는 기간이 길어지자,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내부에서 소화할 여유도 함께 줄어들었던 것 같다.

피드백과 역제안은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다

물론 피드백은 기획을 더 예리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기획자가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한 허점을 찾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재미와 설득력을 검증할 수 있다.

다만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으려면 내용만큼 서로의 합도 중요했다. 같은 말을 들어도 기존 기획을 보완하자는 의견인지, 출발점부터 다른 방향을 검토하자는 제안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조직에서는 기존 기획의 약점을 보완하는 의견뿐 아니라, 전제와 방향이 다른 새로운 방안도 종종 제시됐다. 후자는 엄밀히 말하면 피드백이라기보다 역제안에 가까운 형태였다.

역제안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원안에 없던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더 나은 해법을 빠르게 찾을 수도 있다. 다만 필자는 이런 방식의 논의에 익숙하지 않았다. 기존 기획의 의도를 설명해야 하는지, 새로 나온 안과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는지, 아니면 원안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향을 검토해야 하는지 곧바로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길게 이어진 업무적 긴장까지 겹치면서 몇몇 순간에는 감정적으로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기획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

“기획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것으로 바꾸자는 걸까?”

최대한 감정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들으려 했지만, 논의가 원안의 전제와 논리에서 멀어질수록 어느 지점에 답해야 하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필자가 반론하기 전에 다른 팀원이 앞선 팀원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반론하는 게 연달아 이어지자, 이젠 반론을 할 타이밍을 잡는 것부터가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만약 그같은 상황을 다시 만난다면 의견에 바로 반론하기보다는 상대의 의도를 더 정확히 물어볼 것 같다. 이 의견이 기존 기획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원안의 핵심을 유지한 대안인지, 아니면 방향 자체를 바꾸자는 제안인지 묻는 것이다.

그 구분이 선 뒤에는 대응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기존 안을 보완하는 피드백이라면 반영 범위를 논의하고, 역제안이라면 두 안의 목표와 장단점을 같은 기준 위에서 비교할 수 있다.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어갈지도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피드백을 잘 받는다는 것은 모든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 논의가 가능성을 넓히는 탐색인지, 하나의 방향을 고르는 결정인지 서로 확인하고 같은 기준 위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었다.

항상 젠틀한 태도로 피드백을 듣는 건 최소한 이런 회의에서 정답은 아니었다. 일부 피드백은 논점에서 많이 벗어날 때가 있었고 그럴 땐 상대의 의견을 끊고 다시 원점에서 상대의 피드백과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AI를 많이 쓰며 맡기지 말아야 할 일을 배웠다

시간을 더 쓰고 기획을 여러 번 고쳐도 불안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난 기획을 더 엄밀하고 선명하게 깎고자 AI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

AI가 정돈한 문장이 항상 정답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ChatGPT, Claude, Gemini를 모두 지원해 주었다. 필자는 세 가지 LLM을 업무에 활용해 본 뒤, 작업 방식과 가장 잘 맞는 ChatGPT를 주로 사용했다.

기획안을 쓰다 막히면 AI에 물었고, 논리에 빈틈이 있는 것 같으면 검토를 맡겼다. 피드백을 받은 뒤에는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다시 물었다. 업무 중 잠깐 여유가 생겨도 AI를 붙잡고 기획안을 계속 고쳤다.

처음에는 기획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AI는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하고, 빠진 조건을 찾고, 문장을 정확하게 다듬는 데 유용했다. 필자가 놓친 반론을 먼저 제시해 줄 때도 있었다.

수정을 반복할수록 문서는 빈틈없이 정돈되어 보였다. 문장의 앞뒤가 맞았고, 주장에는 근거가 붙었으며, 예상되는 예외에도 답할 수 있었다. 적어도 문서만 놓고 보면 처음보다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발표 자료에 AI가 다듬은 표현이 쌓일수록 묘한 문제가 생겼다.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내용에 전제와 부연 설명이 붙었다. 혹시 생길지 모르는 반론을 막기 위해 조건과 예외도 늘어났다. 문장 하나하나는 정확했지만, 정작 듣는 사람은 핵심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문서로 천천히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발표 자리에서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은 달랐다. 필자는 후자를 원했지만, AI와 반복해서 문장을 고치는 동안 결과물은 전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확성을 더할수록 필자의 말투와 발표의 재미도 조금씩 흐려졌다.

AI가 원래 어려운 문장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가 AI에 ‘더 정확하게’, ‘빈틈이 없게’ 고쳐 달라고 반복해서 요구한 결과에 가까웠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문장인지보다 논리적인 결함이 없는지를 우선해서 검토시킨 셈이다.

AI가 정돈한 문장은 얼핏 완성된 정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밀하고 정확한 문장이 항상 이해하기 쉽고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AI가 먼저 만든 초안은 생각의 범위까지 정했다

필자가 AI를 사용하며 가장 크게 착각한 것은, 더 많은 일을 맡길수록 결과도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처음에는 필자가 만든 기획을 AI가 검토했다. 그러나 AI가 빠르고 정돈된 답을 내놓을수록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조금씩 커졌다. 직접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 물어보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안전해 보였다.

나중에는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AI 채팅창부터 열었다. 질문을 입력하고 답변을 기다린 뒤, 이미 완성된 초안을 읽으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였다. 내가 초안을 쓰고 AI가 살을 덧붙이는 방식에서, AI가 초안을 쓰고 내가 디테일업을 하는 식으로 순서가 바뀌게 된 셈이다.

빈 문서 앞에서 AI의 초안은 훌륭한 마중물이었다. 문제는 그 초안이 생각의 출발점뿐 아니라 범위까지 정한다는 데 있었다.

한 번 그럴듯한 구조와 결론이 제시되면, 그 바깥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답 안에서 문장을 고치게 됐다. AI가 세운 전제는 그대로 둔 채 표현을 다듬고 예외를 추가했다. 필자가 만든 기획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AI가 먼저 그어 놓은 범위 안에서 선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자 필자가 검토하고 수정한 문서인데도 내용에 대한 이해도는 오히려 낮아진 듯했다. 다시 손보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애매했다. 구조와 논리가 필자의 사고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부분을 바꿨을 때 다른 부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곧바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많이 수정했다고 해서 필자의 이해까지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gpt에 묻기 전에 세 가지를 필자의 언어로 적기 시작했다. 왜 이 기획을 만들고 싶은지, 무엇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만큼은 지키고 싶은지였다. 완성된 문장일 필요는 없었다. 기획의 출발점과 판단 기준만큼은 필자가 직접 세워야 했다.

그다음 AI에게 반대 근거와 빠진 조건, 다른 대안을 물었다. AI의 첫 답을 기준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놓고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그대로 수용할지, 일부만 반영할지, 기각할지를 직접 결정했다.

이 방식은 필자가 이전에 정리한 LLM 교차검증 워크플로우와도 연결된다. 여러 모델을 사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성자와 검토자의 역할을 분리하고, 최종 판단권을 사람이 갖는 일이었다.

AI를 가장 치열하게 사용했던 3개월 동안, 오히려 AI에게 맡기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배웠다.


다음 자리를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다시 원점에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다

회사를 나오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필자는 이야기를 쓰는 일에 자신이 있다. 다만 이번 경험을 통해 필자의 강점이 글쓰기 하나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은 뜻밖에도 이번 회사에서 다시 만난 전 직장 동료였다.

그 동료는 몇 년 전 필자가 『창세기전 모바일』 개발에 참여했을 때 함께 일했던 아티스트였다. 당시 필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트팀을 찾아갔다. 기획 의도를 설명하면서도 아티스트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리더와 실무자 옆에 쪼그려 앉아 몸짓과 손짓을 섞어가며 의견을 맞췄다.

그 동료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때의 필자는 ‘회사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문서를 많이 써서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전달하며 작업을 앞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필자는 조율자에 가까웠다. 기획 의도를 아트팀이 작업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아티스트의 요구를 다시 기획팀에 전달했다. 그 결과물이 기획서일 때도 있었고, 발주서나 수정 요청일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획서나 결과물 하나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팀을 중간에서 연결해 다음 작업이 시작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번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PC 앞에서 글과 기획안을 다듬으며 보냈다. 그것 역시 필자가 바라던 업무 중 하나였다. 다만 전 직장 동료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필자가 가장 큰 강점을 발휘했던 순간은 혼자 문서를 완성할 때보다 여러 사람의 요구를 연결할 때였다는 사실이 다시 보였다.

필자는 이야기를 쓰는 일에서 출발하지만, 그 이야기가 게임 안에서 작동하도록 기획과 아트, 연출을 연결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직책이나 직함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회사의 경험은 필자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때 가장 강점을 발휘하는지 다시 확인한 계기였다.

면접에서 서로의 기대를 더 솔직하게 확인할 것

필자가 이전에 게임 기획자의 면접 전략을 정리할 때까지만 해도, 면접은 지원자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이번 경험을 거치고 나니 면접은 그와 동시에 회사와 지원자가 서로 기대하는 역할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회사의 면접에 비장한 마음으로 임했다. 이력에서 설명이 필요했던 잦은 이직을 피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과 판단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긴장됐던 면접을 통과해 원하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필자가 원하는 일의 방식을 충분히 구체화해서 설명하지 못했다. 필자가 원한 것은 글을 쓰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게임 안에서 작동하도록 다른 직군과 조율하는 과정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방식을 ‘작가’라는 직무명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핏 비슷해 보이는 시나리오 라이터와 내러티브 디자이너 공고도 조직이 우선해서 평가하는 역량과 기대하는 협업 범위는 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의 차이가 바로 회사와 내가 서로 바라는 ‘핏’에서 어긋났던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아무리 구직이 급하다고 해도 내가 정말로 그 회사를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더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선별해서 지원하고자 한다.

입사하기 전까지 내부의 세부적인 조직문화를 알기엔 어렵겠지만, 최소한 그 회사와 조직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며 채용하는지는 면접 자리에서 물어볼 수 있을 듯하다. 그 소중한 기회를 더 알차게 사용해서 나와 회사가 더 핏이 맞는지를 더 확실하게 챙겨볼 생각이다.

말 그대로, 취업은 회사가 지원자를 고르는 일인 동시에, 지원자 또한 자신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하는 과정임을 경험적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글을 마치며

이번 수습 기간의 결과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수습 기간 동안 회사가 기대하는 바를 이해하고, 받은 피드백을 결과물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수습 기간을 통과하지 못했다.

다만 이 결과를 어느 한쪽의 잘못이나 개인의 적합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은 직무명 안에서도 조직이 우선해서 평가하는 역량과 기대하는 업무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 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것도 있었다. 피드백과 역제안을 구분하는 방법, AI에 맡겨야 할 일과 직접 판단해야 할 일, 그리고 필자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가장 즐겁고 강점을 발휘하는지가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앞으로도 필자는 이야기를 쓸 것이다.

좋은 이야기를 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야기가 게임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사람과 요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는 필자의 강점을 필요로 하는 조직을 만나, 서로의 기대를 실제 업무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3개월의 의미를 수습 결과 하나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다음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은지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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