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설명
- CCG는 Character Collecting Game의 약자다. 원래는 Collectible Card Game에 쓰이던 용어지만, 오늘날에는 캐릭터 수집형 게임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더 적합하다. 넓게는 ‘캐릭터 수집형 게임’을 가리키지만, 좁게는 미소녀·미소년 캐릭터를 뽑는 ‘가챠형 게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 전투 메타란, 게임에서 가장 효율적이라 여겨지는 전투 방식이나 캐릭터 조합을 뜻한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서는 보통 캐릭터 성능과 조합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특정 콘텐츠에 맞춰 특정 캐릭터를 사용하도록 개발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전투 메타에 맞춘 캐릭터 설계가 이루어진다.
이제 서브컬처 게임은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25년 지스타가 실패할 것이라는 말은, 지스타 개최 약 3개월 전 업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 국내 게임사인 스튜디오 비사이드를 비롯해, 그리프라인(명일방주:엔드필드)이나 아크시스템웍스 등 기타 일본의 내로라라는 게임사들도 지스타보다는 AGF(Anime X Game Festival 2025)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첫째, MMORPG 등 기존 게임 문화는 이제 완전히 팬덤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점. 둘째, 미소녀·미소년 게임 역시 더 이상 음지의 문화가 아니라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었다.
한때 지스타 현장에 가면 호요버스의 붕괴 3rd 부스가 눈에 띄게 크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당시엔 리니지라이크 등 MMORPG가 게임 산업을 압도적으로 주도했었다. 그러나 이젠 국내 게임 산업이 역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리니지라이크 계열의 개발 문화도 점점 쇠퇴하고 있다.
이제는 홍대 원신 PC방에 수백 명의 팬들, 판교 카운터사이드 카페에 몰린 팬덤, 각종 서브컬처 게임의 출시 소식이 업계 뉴스 1면을 장식한다. 트렌드는 분명히 ‘서브컬처풍 캐릭터 수집형 게임’으로 이동했고, 그만큼 이미 서브컬처 게임은 주류가 되었다.
우리가 서브컬처 게임이라고 부르는 게임은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사니양 연구실
서브컬처 게임의 본질, ‘애착’
지금 게임 개발에서 캐릭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매출은 곧 캐릭터의 힘에서 나온다.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개발사에 수백억, 때로는 수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서브컬처 게임의 핵심은 ‘애착’이다. 캐릭터에 대한 친밀감과 감정 이입이 곧 플레이어의 게임 지속성과 직결된다. 게임성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캐릭터의 매력이 약하면 애착 또한 쉽게 생기지 않는다.
캐릭터 수집, 각 캐릭터의 독자적 매력과 이야기, 그 자체가 게임의 정체성이며 수집 행위 자체가 가치로 이어진다.
그래서 개발사들은 요즘 ‘덕후’ 채용에 적극적이다. 잘 통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려면, 모에 속성 등 캐릭터의 매력을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캐릭터의 매력이 정성적이라는 점에 있다. 매력을 수치화하거나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캐릭터의 성공이 개발자의 감이나 운에 좌우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들여 만든 캐릭터가 겨우 1억의 매출을 내며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취향 편차와, 한 캐릭터에 쏟는 리소스의 위험성 때문에 개발사들은 ‘좀 더 확실한 정량 지표’를 원하게 된다. 특히 매출이 걸린 한여름 이벤트 캐릭터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개발사는 캐릭터 애착을 어떻게 수치로 예측하려 할까?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전투 메타’다.
전투 메타가 애착에 미치는 영향


전투 메타란, 한 마디로 ‘캐릭터의 성능’이다.
최근 서브컬처 게임에서는 남자 캐릭터의 성능을 일부러 높여 출시한다는 농담(?)이 있다.
남자 캐릭터는 일반적인 남성 게이머에게 매력이 낮으니, 일부러 성능을 높여 뽑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원래라면 걸러질 캐릭터가, ‘전투 메타’라는 요인이 하나 추가된 것만으로도 뽑아야만 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전투 메타는 ‘성능이 최고야’, ‘경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해’ 같은 생각을 가진 플레이어에게 어필한다.
이들에겐 캐릭터가 가진 외모, 말투, 성격, 성향 등은 캐릭터의 ‘성급(밸류에이션)’ 보다 가치가 낮다.
물론 강한 캐릭터의 성능을 앞세워 게임을 즐기겠다는 건 전혀 나쁜 게 아니다. 전투 등 인게임 플레이가 더 즐거워질수도 있고, 만약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성능까지 좋다면 캐릭터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발사가 이러한 메타 요소를 이용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메타-경쟁 중심의 구조가 애착 중심 게임성의 본질을 점점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은 ‘취향’보다 ‘강함’에 집중하게 되고, 전투가 게임의 비중을 차지할수록 애착 중심의 설계가 약해진다.
서브컬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선택: 캐릭터 전투 메타 vs 캐릭터 내러티브
선택의 문제다.
캐릭터의 매출을 예측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매력이 떨어져 보이는(매출이 불확실한) 캐릭터의 매출을 부스팅하기 위해 ‘전투 메타’를 우선할 것인가.
반대로, 캐릭터의 매출을 예측할 수 없고, 캐릭터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 수 매의 컷인과 추가 리소스를 투입하면서까지 캐릭터 ‘내러티브’ 힘을 쏟을 것인가.
만약 당신이 프로젝트의 헤드이거나 프로젝트의 대표라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성찰: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약 20~30년 전.
‘레벨 디자인’이나 ‘밸런스 디자인’이라는 말이 아직 플레이어들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감성의 시대’, ‘낭만의 시대’라고 불리던 시기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게임이 불친절하고 불평등했다.
특정 직업군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태생적으로 불리했다. 특정 스탯을 잘못 찍기만 해도 소위 ‘망캐’라고 불리며 버림패 취급받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게임이 고도화되자 그런 게임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고, 이제는 그런 불공평과 불평등이 없게 하고자 병적으로 집착하는 시대가 왔다.

그때 그 시절에는 내가 언더독(불리한 포지션)을 취해도 재미가 있었다.
남들보다 앞서는 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플레이를 한다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애초에 게임을 할 때 남들보다 앞서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나는 점수와 경쟁을 싫어하고, 나만의 여유와 낭만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커뮤니티 활동을 좋아했다. ‘마비노기’라는 게임은 그런 내게 꽤 오랫동안 최고의 게임이 되어주었다.
비록 세계관-설정이 부실하고 인게임 플레이에서 부당함(?)도 많았지만, 서브컬처 게임의 레퍼런스로써 필자에게 훌륭한 표본이 되어주었다.
지금의 필자는 CCG를 만들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전투 메타’라는 게 필자의 고민에 같이 들어왔다. 콘텐츠 업데이트 스케줄이나 스펙에 맞춰, 캐릭터의 성능이나 스킬을 미리 고민해야 한다.
분명, 콘텐츠가 추가되거나 업데이트 되면 플레이어들은 그 콘텐츠를 가장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접대 캐릭터’를 픽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대 캐릭터를 뽑지 않은 사람들은 불리한 전투 메타를 가진 캐릭터로 공략을 해야할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밀리거나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 게임 플레이를 강제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런 미래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다가오게 될테다.
이는 필자가 좋아하는 게임과는 거리가 꽤 멀 것 같다.
BM(비즈니스 모델)과 라이브 서비스의 딜레마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더라도, 실제 게임 운영에선 전투 메타를 무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투 메타에 기반한 캐릭터/콘텐츠 업데이트는 합리적이다.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되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린다.
사람들이 몰리면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은 남들보다 앞서거나 본인의 과거 스코어를 뛰어넘기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투 메타 중심의 캐릭터 업데이트는 라이브 서비스와 우리 게임의 BM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높은 상관관계로 매출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전투 메타를 최우선에 두지 않는 개발은 상당히 큰 도전이자 위험 요소다.
결론: 서브컬처라고 포장된 서브컬처가 아닌 게임을 만든다는 것

내가 정말로 캐릭터가 좋아서 비주류 캐릭터를 키우는 건 서브컬처 게임에서도 점점 더 쉽지 않아지고 있다.
ⓒ파루잔, ‘원신’
서브컬처 게임 본연의 매력을 지키면서, 시장에서 통할 만한 캐릭터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진짜 서브컬처 게임이다. 매력 있는 캐릭터가 제각기 개성과 스토리로 사랑받고, 그저 강함만으로 평가받지 않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합리와 효율, 경쟁과 매출 논리가 더 크게 적용된다.
비효율·비논리같이 보이는 시도를 추진하려면, 결국 개발 리더의 결단과 철학이 필요하다.
우마무스메의 ‘하루 우라라’처럼, 약할지라도 특유의 매력과 스토리로 사랑받은 캐릭터 사례도 있다.
성능을 앞세우면 언제나 효과적으로 매출을 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점점 내가 꿈꾸던 서브컬처 게임 본질에서는 멀어지는 것만 같다.
—이 불안과 고민이, 나만의 기우로 그치길 바란다.



dynamis one
dynamis one?
dynamis one?
I’m don’t have any connection with dynamis one. Thank you.